‘오디오 전성시대’, 라디오는 유물로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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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전성시대’, 라디오는 유물로 남을 것인가 
[라디오 큐시트] AI 기술 발전 등으로 ‘듣는 콘텐츠’ 시장 활기...막연한 낙관론은 경계해야 
 
  • 박재철 CBS PD
  • 승인 2019.10.11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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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라디오 부스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계엄군처럼 진군해오는 영상미디어의 공세를 라디오 콘텐츠에서 언급할 때마다 갈등하게 된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BGM으로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영국 듀오 밴드 더 버글스가 이 곡을 세상에 내놓은 게 1979년도다. 40년이나 지났고 그래서 클리셰가 됐지만, 이 노래만큼 오디오 업계의 공포감을 대변해 주는 노래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요즘 들어 배경 음악으로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를 찾아야 하나 싶다. ‘오디오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는 풍문이 풍선처럼 커지고 있어서다. 물론 힘껏 바람을 불어 넣고 있는 건 언론이다. 기사의 배경은 이러하다.

지난달 문을 연 티팟은 13개 방송사의 영상 프로그램을 오디오로 바꿔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SBS, JTBC, YTN 등의 방송사가 참여하고 있다. 보도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 종교, 교육 등 차츰 그 외연은 확대할 예정이다. 간단히 말해 SBS<그것이 알고 싶다>, JTBC <뉴스룸> 등 지상파 종편 정규 프로그램을 영상 없이 오디오로만 제공한다는 것이다.     

선발주자인 ‘스푼 라디오’와 후발주자 ‘팟프리카’는 ‘오디오계의 유튜브’로 불린다. 주로 젊은 세대들이 직접 제작한 오디오 콘텐츠를 사이트에 올려 유명세가 아닌 만듦새로 평가받는 장이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어도 청취 타깃팅을 잘 잡고 소구력이 있는 내용이면 오디오 자키로 사랑받는다. 국내외를 망라한다. 이곳에서는 ‘누가’ 만드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만드느냐가 본질이다.   

<나우>는 네이버가 개설한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다. 라디오와 거의 유사하다. 24시간 편성된 음악과 토크 프로그램을 네이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내보낸다. ‘네이버 라디오 방송사’인 셈이다. 여기에 네이버는 오디오북 콘텐츠를 제공하는 ‘오디오 클립’을 출시했다.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으로 책 소비의 패턴을 바꾸려 한다.    
    
구글, 아마존, 애플은 물론이고 SK텔레콤, KT, 카카오 등은 자율주행차와 AI 스피커의 상용화 시대를 오래전부터 예견했다. 음성으로 명령을 이해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각종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는 건 당연하다. 기술이 철로를 깔면 그 위로 자본의 열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모습은 이제 무심히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 만큼이나 평범해졌다.  

문자와 음성의 상호변환 기술과 히어러블(hear+wearable/귀에 착용할 수 있는 기기) 시장의 확대는 오디오 콘텐츠 생태계를 앞으로 보다 다종다기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춤한 오디오 제작물을 고민해야 할 명분이 더욱 커진 셈이다.  
 

네이버 '나우' 프로그램들. 네이버
네이버 '나우' 프로그램들. ⓒ네이버

여러 방향에서 감지되는 오디오의 이런 약진은 분명 청신호다. 시각이 미디어의 제국을 형성한 현실에서 청각 매체가 자신의 영토를 넓혀간다는 소식은 라디오업계 종사로서 고무되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은 좀 더 신중한 관망이 필요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티팟’의 출범이다. ‘티팟’의 등장은 ‘팟빵’의 시장 선점을 견제하겠다는 관점에서 보는 게 맞다. <나는 꼼수다>로 큰 재미를 봤지만, 이후 팟빵의 효자노릇을 하는 콘텐츠는 상당부분 지상파 제작물이다. 팟빵은 판을 깔아줬을 뿐이다. 

지상파 입장에서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 가냐?’는 심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티팟은 기존 영상 콘텐츠를 오디오화 해 재활용하는 셈이니 별도의 제작비용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해볼 만하다. 

텐트를 크게 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을 그 아래에 모으면 된다. 이런 움직임은 오디오 콘텐츠의 부흥을 시사한다기보다는, 기존 방송사들의 저작권이나 기득권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진단이 더 설득력 있다. 

다음으로 ‘스푼라디오’와 ‘팟프리카’의 등장이다. 미디어 수용자들의 직접적인 창작 욕구 발현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의 출현은 결코 새로울 게 없다. 영상보다 상대적으로 간편한 오디오 제작의 이점을 살려, 많은 이들이 낮아진 콘텐츠 제작 유통의 문턱을 넘어 세분화한 관심을 오디오로 표출했을 뿐이다. 자신의 취향과 지향을 드러내고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고픈 오디오 딜레탕트들의 출현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영상에서 오디오로 대중의 미디어 활용 물꼬가 터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상업적 기회를 넘어 오디오의 고유한 특성을 성숙시키는 제작의 기회로 업그레이드될지는 좀 더 두고 보는 게 좋겠다. 
  
네이버의 오디오 진출은 어떤가. 네이버의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은 재론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네이버는 다양한 콘텐츠를 폭넓게 현시하는 거대 백화점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나우’라는 오디오 매장이 하나 더 입점을 했다. 백화점에서는 흔히 고객들의 발길을 오래 붙들기 위해 다양한 컬렉션을 구비해 놓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건 네이버가 오디오의 가능성을 높이 봤다는 해석이 지나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
다. 대형 백화점은 창문과 시계의 배치를 최소화한다. 외부 노출을 막아 고객이 시간을 잊고 오랫동안 머물며 쇼핑을 하라는 의도에서다. 네이버라는 미디어 백화점이 다양한 콘텐츠를 확충하는 저변에는 이와 같은 머무름을 유인하려는 뜻이 숨어 있지 않을까? 물론 네이버 입장에서는 일정 정도의 수익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오디오 방송이나 오디오 북의 도입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림이 분명해 보인다.  

끝으로, 인공지능 스피커가 ‘듣는 콘텐츠’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은 자못 확실하다.  스마트폰만큼이나 자율주행차가 보편화 됐을 때 거기에서 파생될 AI 시장의 잠재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허나 이런 상황에서 오디오 제작물이 얼마나 선전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구체적인 명령어를 주지 않으면 AI의 답 역시 구체적일 수가 없다. “오늘의 주요 뉴스 들려줘”, “기분 좋은 음악 들려줘”, “액션 영화 보여줘” 정도의 명령어라면 AI가 이용자의 성향이나 취향, 현재의 감성과 선호도를 어느 선까지 계산해낼지 미지수다.  

새로운 콘텐츠의 제작보다는 기존의 것을 분류, 편집하는 정도에서 멈춘다면 AI는 오디오에 유리한 플랫폼을 하나 더 열어주었다는 만족감, 그 이상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막연한 낙관론에 기대지 말자.

라디오는 흔히 레거시 미디어로 불린다. 앞으로 ‘유산’이 될지 혹은 ‘유물’이 될지, 면면히 이어지는 ‘전통’이 될지 아니면 아무도 찾지 않는 ‘불통’이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레거시 미디어를 레전드(LEGEND) 미디어로 바꾸는 첫 출발은 단순하다. 제작자의 몫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기. 즉,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환경에 좌고우면하기보다 제작에 노심초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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