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진정한 애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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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274회 이달의 PD상 수상작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멘터리’ 김혜민 YTN라디오 PD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멘터리'로 이달의 PD상과 한국PD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김혜민 YTN라디오 PD.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멘터리'로 이달의 PD상과 한국PD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김혜민 YTN라디오 PD.

[PD저널=이영광 객원기자] 지난해 12월 YTN 라디오에서 방송된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멘터리’ 2부작이 제274회 이달의 PD상과 35회 한국PD대상 라디오 시사·교양·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멘터리’는 2018년 환자의 피습으로 사망한 임세원 교수의 삶을 되돌아 보고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 어떤 것인지 담았다.

수상 소감과 함께 제작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2일 서울 상암 YTN 사옥에서 다큐를 연출한 김혜민 PD를 만났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멘터리' 2부작으로 PD연합회 제274회 ‘이달의 PD상’과 35회 한국PD대상 작품상을 수상하셨는데 먼저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너무 감사하죠. 사실은 한국PD대상은 기대를 못 했거든요. 생각도 안 했어요. 이달의 프로그램상 뽑힌 작품들이 너무 대단한 작품들이고 그중에서 뽑는 거잖아요. 그럼, 그 해에 최고의 작품이라고 동료 PD들이 뽑아주시는 건데 생각도 못 했고요. 또 추모 다큐멘터리라는 게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내용이라 뽑힐까 싶었는데 뽑혀서 너무 기쁘죠.”

-처음 수상 소식 들었을 땐 기분이 어땠나요?

“이달의 PD상을 받아보긴 했지만, 사실 작품이 좋다고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그 타이밍에 움직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다큐의 메시지가 이 시대가 원하는 담론 메시지와 결이 비슷한 거 같아요.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PD로서의 정체성을 정했는데 그 정체성에 맞는 삶을 살았나 보다고 보상받는 느낌이었어요.”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멘터리는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세요.

“임세원 교수는 정신과 의사예요. ’보고 듣고 말하기‘라는 한국형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셨고 평소 우울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2018년 12월 31일 본인이 치료하던 조현병 환자가 거의 2~3년 만에 예약도 없이 찾아온 거예요. 사실 예약 없이 찾아왔기 때문에 치료를 안 해줘도 되는데 그다음 날 신정 연휴라 환자가 또 힘들어할까봐 받아줘서 상담한 거죠. 근데 그 환자가 처음부터 교수님 죽일 생각으로 장칼을 숨겨서 왔어요. 교수님은 그때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간호사들에게 대피하라고 이야기하고 자신은 못피하셨어요. 때문에 나라에서 의사자로 지정이 되기도 해요. 

저는 임 교수님을 만난 적은 없었어요. 2018년도에 제가 자살 예방 다큐멘터리를 했었어요. 그때 교수님 성함을 들었었는데 워낙 다른 사람들 취재를 많이 해서 임 교수님은 안 했거든요. 이후 임 교수님하고 아주 친한 백종우 교수님이라고, 제가 다큐 만들 때 도움을 많이 줬던 교수님이었어요. 교수님과 점심을 먹었는데 교수님이 너무너무 표정이 어둡고 힘들어하길래 교수님 무슨 일 있냐고 그랬더니 연말에 죽은 임세원 교수가 내 친한 친구라고 얘기 해서 제가 그때 교수님의 삶을 더 알게 됐어요. 그래서 교수님 관련한 추모 콘서트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2019년, 2020년, 2021년 추모 콘서트를 했고요. 그런데 2022년은 3주기가 지났으니까 콘서트 말고 다른 형식으로 교수님을 추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구성은 어떻게 하셨어요?

“1부는 임세원 교수가 의사와 사회인으로서 어떤 사람인지를 담은 다큐고요. 2부는 ‘임세원이 바랐던 세상’이란 제목이에요. 임세원 교수가 그렇게 비극적으로 죽고 3일 만에 가족들이 ‘이 일로 인해서 마음 아픈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성명을 냈어요. 굉장히 대단한 거죠. 그래서 2부에는 정말 임 교수님이 어떤 세상을 꿈꿨는지에 대한 다큐를 담았어요.”

YTN 라디오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 공동 연출자로 참여한 임세원 교수의 아들 임정섭씨.
YTN 라디오 '의사자 임세원 추모 다큐' 공동 연출자로 참여한 임세원 교수의 아들 임정섭씨.

-임 교수님 큰 아들인 임정섭 씨와 공동 연출이던데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사실 추모 다큐 구성이 뻔해서 고민 중이었어요 그때 교수님이 의사자로 지정되어 현충원으로 이장을 했는데요. 이장식에서 정섭 씨를 만났어요. 정섭 씨는 교수님 사고가 났었을 때 고2에서 고3으로 올라갔을 때였어요. 이번에 만났더니 정섭 씨가 재수하고 미디어학과에 들어갔더라고요. 얘기하던 중에 자기 아빠가 사이코 드라마를 되게 잘 만들었고 영상이나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기도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돌아왔는데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는 아들이 자신의 첫 작품으로 아버지를 추모하는 다큐를 만들면 어떨까 했어요. 그래서 제가 정신과 교수들에게 괜찮을지 물어봤어요. 그때 선생님들이 하는 말이 이 과정을 거치면 정섭 씨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임정섭 씨에게 제안했을 때 반응이 어땠나요?

“처음에 조금 망설였지만, 하고 싶어 했어요. 왜냐면 이 친구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례 기간에 대한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 충격이 너무 컸고 아버지 임종을 못 지켜봤잖아요. 장남이 아빠의 임종을 못 지켰다는 게 계속 마음이 있는 친구였는데 본인도 뭔가의 기점이 필요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아빠를 보내드려야겠다면서 기꺼이 하겠다고 했어요.”

-라디오 다큐멘터리는 소리로만 전달해야 하니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소리가 주는 엄청난 힘을 믿거든요. 소리로 표현 못 하는 건 없다는 거죠. 라디오 PD니까 당연히 영상이 없어도 충분히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죠. 예를 들면  사고 당시 CCTV를 보고 정섭 씨가 정말 분노하는데, 분노의 표정을 담을 수 없어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출자로서 음악감독한테도 이 부분을 좀 많이 신경 써달라고 해서 음악으로 긴장감을 주고요. 공동 연출자로 참여한 정섭 씨가 현장에서 저한테 ‘저 욕해도 돼요?’라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방송 녹음하고 있는 걸 아니까요. 그래서 하라고 하고 제가 편집할 때 '삐 처리를 했어요. 아마 카메라가 있었다면 정섭 씨가 더 표현을 잘 못했을 거로 생각해요. 제가 ‘세월호 엄마들’ 다큐를 만들 때 그 당시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언론에 대한 굉장히 불신이 있었어요.  자식 잃은 사람한테 큰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저는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녹음기도 안 가져가고 전화기로 녹음했어요.”

-그럼, 처음에 뭐부터 취재를 했나요?

“취재는 일단 있는 자료들을 다시 한번 들어봤고요. 교수님 육성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왜요?

“고인의 육성만큼 힘이 있는 건 없거든요. 목소리는 변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모습은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지만,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목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인의 육성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정섭 씨에게도 ’네 휴대폰에 아빠 동영상 있으면 좀 보내달라’고 했어요. 의사 임세원이나 의사자 임세원만이 아닌 아빠 임세원도 담고 싶었어요. 그리고 교수님 일상의 모습들을 찾으려고 했어요.”

지난 18일 열린 한국PD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혜민 PD.©김성헌
지난 18일 열린 한국PD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혜민 PD.©김성헌

-이 다큐에서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섭 씨와 다큐를 함께 만들면서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알아가길 바랐어요. 특히 아빠가 마지막에 살려면 살 수 있었지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 그 선택을 받아들이고 가치를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게 정섭 씨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만들다보니 임세원이 아닌 임정섭에 더 중점을 더 두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아버지 임세원이 아닌 아들 임정섭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은 남은 자가 어떻게 떠난 자를 애도하고 보내줘야 하는지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어요. 

각종 참사로 갑작스럽게 가족과 친구를 떠나보내는 일이 너무 많은 세상이잖아요. 그리고 피해자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일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세상이기도 하고요. 이 다큐멘터리가 비정상적인 세상을 조금은 돌아보게 할 수 있다면, 임세원 교수도 기뻐할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정섭 씨가 CCTV를 봤던 게 제일 기억에 남죠. 강북삼성병원에 같이 갔어요. 근데 그 진료실이 임 교수님 돌아가시고 리모델링해서 싹 바꿨어요. 예전에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는데 의사들 방에 비상구도 만들고 비상벨도 만들고요. 정섭 씨 입장에서는 속상하죠. 이게 처음부터 있었으면 아버지가 안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을 거니까요. 그 방을 돌아보고 CCTV를 보기로 했어요. 정섭 씨가 처음에 갈 때는 볼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취재 들어가기 전에 미리 한 1시간 정도  저와 만나서 수다 떨고요. 근데 막상 영상을 보려니까 굉장히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정신과 선생님하고 저도 ‘정섭아 오늘 안 봐도 돼. 네가 준비되면 봐도 돼’라고 그랬는데 본인이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해서 나갔다 들어오더니 ‘보겠다. 내가 이번에도 안 보면 내가 진짜 아빠의 죽음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아빠를 못 보내줄 것 같다’라고 해서 봤죠. 

20초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에요. 영상을 그 친구가 보는 그 장면이 아직도 마음에 와닿아요. 저는 그걸 보면 이 친구가 울고불고할 줄 알았는데  분노만 표출되더라고요. 근데 곧 괜찮아졌어요. 그리고 옆 식당에서 아버지의 동료들이 정섭 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것도 너무너무 마음에 와닿았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친구들이 정섭 씨에게 또 다른 아버지의 역할을 해준 거죠. 그래서 같이 술 한잔하고 아버지 친구들이 너무 잘했다고 다독이더라고요. 그게 참 기억에 남아요.”

-제작하시면서 느낀 점은 무엇일까요?

“애도가 중요하다는 거죠. 현대사회에서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특히 세월호 참사, 10·29 참사 이후에는 정말 내가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유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저는 우리나라 특히 동양권 문화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접근이 조금 수동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애도를 하려면 그 죽음에 대해 적극적인 해석과 추모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보낸 사람이 온전히 그 사람을 보내고 미래로 나가게 하기 위해 진정한 애도가 너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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