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인 듯 추모 같지 않은 세월호 9주기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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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에 머문 언론의 ‘세월호 평행세계’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은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노란 리본 조형물이 녹슬어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은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노란 리본 조형물이 녹슬어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세월호 참사가 9주기를 맞은 우리 언론의 분위기는 추모인 듯 추모 같지 않았다. 보도량은 해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고, 추모식과 기억식 스케치 보도나 유가족과 정치권을 포함한 각계의 반응을 전하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참사의 교훈과 과제,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톺아보는 보도를 찾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있어 진상조사 및 후속대책 마련의 마지막 공식 기구라 할 수 있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관련 보도는 종적을 감췄다.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세월호’ 언급 전체 보도 390건 중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를 동시 언급한 사례는 29건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대부분 정치권 발언 중 등장한 단어가 기술된 보도들에 불과하다. 

일부 보도는 시간이 9년 전에 멈춘 것 같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와 유가족을 지원하며 진정한 추모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사회의 의무를 지우면서 참사 피해자를 탓한다. 9년 전 ‘보도참사’의 재생산은 최근의 참사를 덧붙여 지금의 참사와 9년 전 참사를 기묘하게 연결하기도 했다. 퇴행적 인식이 만드는 평행세계다.

대표적 사례는 <조선일보>가 지난 13일 보도한 <안전 대책은 없고, 분노와 정치만 남았다>이다. 이 기사는 더불어민주당의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발의 선언을 “초점이 맞춰져야 할 안전 대책보다는 총선을 1년 앞둔 야당의 정치적 소재로만 참사가 활용되는 것”이라 깎아내리며, “2014년 발생 이후 8년간 정치적 고비마다 진상 조사와 수사를 반복했던 세월호 참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았다.

9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갔던 유가족을 향해 “조급증과 압박”으로 민간잠수사가 사망했다고 묘사하고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인의)놀라울 정도의 평정심”을 요구했던 보도,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 낭비’로 매도했던 보도들, 유가족을 ‘정치세력’으로 규정했던 보도들을 참 짧게도 요약해 되풀이하고 있다.

‘정치적 활용’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 외에 무슨 말인지 설명도 없는 ‘세월호 참사의 전철’이라는 용어는 10·29 참사 유가족을 향하고 있다. 이 용어는 정치권에서나 언론에서나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과 추모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흉기가 됐다. 10·29참사 직후 여당 지도부에서 공공연히 “세월호 참사의 전철을 밟지 마시라”는 ‘충고’가 나온 바 있다.

‘세월호 전철’을 자주 입에 담는 언론이나 정치인은 사실 ‘세월호’는 물론, 스스로 평행세계로 연결한 10·29 참사의 진상이 뭔지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 특히 언론의 경우 세월호의 ‘진상조사’와 ‘수사’가 얼마나 이뤄졌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제대로 보도한 사례를 9년 간 찾기 어렵다.

조선일보 4월 13일자 3면 기사.
조선일보 4월 13일자 3면 기사.

<조선일보>는 ‘안전대책이 없다’고 제목에서 단언했는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가 정부에 권고한 수많은 안전대책 후속조치를 그동안 받아쓰기라도 했는지 의문이다. 뭐가 있는지 보도도 안 하고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이런 거짓말이 언론에서 넘쳐나는데 정작 뭐가 ‘있었는지’ 알려주는 보도가 극소수라는 현실은 9주기 기억식에서도 맞불집회를 하며 “세월호 너희가 1조를 받아먹었다”고 막말을 퍼붓는 자들을 양산하는 데 일조했다.  

‘안전대책이고 진상규명이고 아무 것도 없었다’는 만들어진 현실이 혹여 조금이라도 의문스럽다면, 독자는 열심히 진짜 현실을 찾아야 한다. 지난해 9월 활동을 종료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진상규명에 있어 당국의 구조 실패와 침몰의 구체적 원인 규명, 안전사회 구축을 목표로 뒀다.

구조 실패의 경우, ‘가만히 있으라’와 ‘육해공 구조 작전’ 오보 등을 비롯해 참사 직후 상당 부분 정황이 드러났으나 정작 법적 처벌을 받은 공무원은 해경 123정장 단 1명이다.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 등은 참사 5년 후인 2019년에야 검찰이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구조 실패를 다시 수사하면서 대부분의 증거가 사라져 2심까지 무죄를 받았다.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사참위는 이 과정에서 세월호 CCTV 복원·분석 등을 통해 기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침몰 원인 규명도 사참위의 ‘아픈 손가락’이다. 유가족의 여러 의문 제기에 따라 기존 급변침의 원인을 다각도로 검토하였으나 진전이 없었고 여러 언론의 반박 보도까지 나오며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해 한계를 드러냈다. 송구스럽다”고 밝혀야 했다. 3년 6개월의 활동 기간이 무색해졌으나 최소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부분에 국가 공식기구가 끝까지 노력했다는 선례를 남겼다. 

성과도 있었다. 국정원과 기무사의 피해자 및 유족, 시민단체를 향한 광범위한 사찰을 조사하여 소강원 전 기무사 610부대장 등 책임자가 실형을 받는 데 기여했다. TF까지 구성하여 악화된 여론을 돌리려 유족의 동향과 성향, ‘반정부활동 여부’를 파악해 청와대까지 보고한 정보기관의 만행은 유족의 호소와 더불어 이를 입증한 사참위 포함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드러났다. 

사참위의 또 다른 존재 이유였던 ‘안전사회’ 목표는 어떨까. 몇몇 언론이 10·29 참사와 엮어 별도의 조사기구가 필요 없다고 외치는 주된 논거가 바로 ‘안전대책도 만들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사참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조금만 찾아봐도 안전사회를 위한 후속조치가 넘쳐난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한 재난·참사 피해자 권리 보호 △피해자 및 피해지역 지원 확대 △피해자 알권리 보장 및 소통 개선을 위한 즉각적 정보 제공·열람·획득·전파 시스템 마련 △대통령 기록물과 국정원, 군의 관련 비공개 자료 투명한 공개 △정부의 공식사과 △피해자 사찰에 대한 관련 기관 감사 △해양재난 수색구조 체계 개선 △독립적 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 △재난 발생 시 부처 간 연락 체계 개선 등이다.

심지어 그중 다수는 10·29 참사에서도 개선이 되지 않은 채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됐다. 10·29 참사에서도 구조당국과 부처 간 핫라인이 작동하지 않아 대통령 지시사항을 부처가 언론 보도로 처음 접했다는 해명이 공식적으로 나오는 촌극이 벌어졌다. 피해자 지원과 알권리 보장, 소통은 10·29 참사 피해자 및 유족이 지금도 고통스럽게 요청하는 사안들이다. 소극적인 생존자 관리와 치료 지원은 청소년 생존자를 희생자로 만들기도 했다. 10·29 참사 당시 고인의 사망 시각과 사망 당시 상태, 시신이 옷이 벗겨진 채 유족에 인계된 경위 등 참사 직후 유족에게 알렸어야 할 정보들을 아직도 유족이 요구하고 있다.

특별조사기구가 아무 것도 안 해서 필요 없는 게 아니라, 필요하다고 한 걸 언론과 정부가 외면했기 때문에 참사가 반복된 것이다. 이를 전도시켜 ‘10·29 참사에서도 특별조사기구를 만들면 세월호 참사의 전철을 밟는다’고 말하는 건 현실 도피이거나 현실 왜곡이다. 

지난 14일 보도된 MBC '뉴스데스크' '알고보니' 코너
지난 14일 보도된 MBC '뉴스데스크' '알고보니' 코너

현실 왜곡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지난 14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알고보니] 세월호 피해자 의료지원 연장은 혈세낭비?>에 따르면 내년으로 다가온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 의료비 지원 기한을 연장하기 위한 법안에는 “과도한 지원” “이중 지원” “지원금으로 미용시술 다닐 거다”라는 반대 의견과 댓글이 지난 10일 입법예고 마지막 날에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정작 법안에 참사 트라우마로 인한 치료를 의사 진단서로 입증해야 하고 허위 청구의 경우 환수하는 조항이 있으며 이미 배보상금을 받은 피해자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법의 내용은 극소수 보도에만 있다. 세월호 피해자임을 드러내기 쉽지 않아 신청하는 피해자가 적으며 유가족과 생존자 대부분이 여전히 우울증 위험군이라는 현실도 없다. 

현실 도피는 눈에 보이기도 한다. 세월호 9주기 안산 기억식에 국무총리와 교육부장관이 안 왔다. 교육부가 시도교육청과 일선 학교에 보내는 ‘안전주간 공문’엔 ‘세월호’ 표현이 통째로 사라졌다. 자꾸 이런 장면에서 정권교체를 실감한다면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언론은 그 붕괴를 방관하거나 재촉해서는 안 된다. 교육부장관의 기억식 불참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보도가 그나마 눈에 띄는 건 다행스럽다. 조금만 더 인간적인 눈으로 과거 참사를 되짚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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