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언론탄압, 불구경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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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KBS 사장 취임하자마자 진행자 교체 등 제작 자율성 침해
언론,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에도 무관심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진행된 박민 KBS 신임 사장 대국민 기자회견장 앞에서 규탄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뉴시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진행된 박민 KBS 신임 사장 대국민 기자회견장 앞에서 규탄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이미 예견됐던 언론계 피바람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난 1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김만배 인터뷰’를 인용 보도했다는 이유로 KBS, JTBC, MBC, YTN에 총액 1억 4천만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최종 확정했다. 2008년 기관 설립 후 초유의 사태다.

같은 날 ‘대통령 낙하산’ 논란 속에 취임한 KBS 박민 사장은 첫 날부터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와 KBS 2TV 시사 프로그램 <더 라이브>를 방송 당일에 편성표에서 날려 버렸고 주요 뉴스 프로그램 앵커를 대거 교체했다. 주진우 기자와 ‘더 라이브’ 진행자, 메인뉴스 이소정 앵커 등은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조차 빼앗겼다. 

숙청의 칼날이 들이닥치기 전 먼저 퇴사한 KBS 최경영 기자도 이미 일갈했듯이 언론계에서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이 잇따르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태연하다. KBS 박민 사장 체제는 출범 2일 만에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이 담긴 ‘김만배 인터뷰’, 오세훈 시장 내곡동 땅 ‘셀프 보상’ 의혹 등 권력층 의혹을 다룬 동료 언론인의 보도를, 그 동료들의 얼굴을 띄워놓은 채 “불공정 편파 보도”라고 낙인찍고 사과까지하는 ‘메인뉴스’를 선보였다.

이에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KBS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 언론이 아닌 정권 응원단으로 공공성을 저버린 사례는 셀 수도 없다”고 맞장구치고 “공정성 회복을 위해 당연한 조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는 행태도 개혁해야 한다”며 노조 탓을 했다. 2017년 KBS 정상화 국면에서 세월호 참사 오보에 KBS가 사과를 할 때는 무관심했던 언론들이 오세훈 시장, 윤석열 대통령 의혹 보도에 사과를 하니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11월 15일자 사설.
조선일보 11월 15일자 사설.

실제로 KBS가 ‘불공정 보도’를 했다고 해도, ‘보도 내용’만을 이유로 ‘불공정’의 기준도 없이 하루만에 방송을 없애고 진행자와 앵커를 교체하는 건 유례가 없는 ‘제작 자율성‧독립성’ 파괴 행위다. 법적 근거도 없이 인터넷 언론의 ‘가짜뉴스’를 ‘통신심의’해서 ‘삭제 및 차단’ 조치하겠다는 정부의 ‘불법적 가짜뉴스 근절대책’과 닮은꼴이다.  

바로 그 ‘불법 심의’의 주인공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우 ‘가짜뉴스 심의센터’의 팀장급 11명부터 평직원 4명까지 일제히 ‘불법 심의를 할 수 없다’며 사실상 보이콧을 선언하며 ‘내부의 결기’를 보여줬다. 심지어 직원 150여명이 가짜뉴스 심의 반대 서명을 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언론은 관심이 없다. ‘김만배 인터뷰’가 허위라며 사태의 본류인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은 외면한 채 ‘윤석열 검사가 커피를 타지 않았다’는 보도를 쏟아냈던 언론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원들의 직을 건 저항엔 침묵했다.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인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으로 넘어오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도둑 잡으라고 소리친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는 수준이다. <힘으로 입법, 툭하면 탄핵… 의회민주주의 삼켜버린 ‘巨野 국회’>(문화일보 11.9) 등 이동관 위원장 탄핵을 ‘거야의 힘자랑’ ‘이재명 대표 방탄 정략’ 등으로 치부한 보도가 상당수다.

<국민일보>의 지난 8일자 사설 <습관적 탄핵 남발하는 민주당, 명분도 실리도 없다>처럼 이동관 위원장이 탄핵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보도도 많다. <국민일보>의 경우 “민주당은 이 위원장의 방송 장악 시도를 막겠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에게 탄핵 사유가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썼는데 이는 민주당이 제출한 탄핵소추안의 탄핵 사유조차 제대로 전하지 않은 왜곡에 가깝다.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기재한 탄핵 사유만 해도 △5명 합의제 기관인 방통위를 2명 만으로 운영하면서 방통위법 위반 △가짜뉴스 근절을 이유로 방송사에 ‘보도 경위 자료’ 등을 요구하고 법적 근거가 없는 ‘인터넷 언론 가짜뉴스 심의’를 지시하는 등 헌법상 ‘언론의 자유’ 침해 등 2가지다.

KBS 박민 사장을 내정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KBS 이사들이 박민 후보자에게 과반 득표가 이뤄지지 않자 재공모를 우려해 독단적으로 이사회를 종료해 버리자 여권 성향 김종민 이사가 사퇴한 바 있는데, 이때 방통위는 빠르게 5·18광주민주화운동 왜곡, 폄훼로 유명한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보궐이사로 임명해줬다. 방통위의 이 결정도 대통령이 추천하고 임명한 2명의 위원만으로 이뤄졌다. 이후에도 경쟁 후보가 갑자기 의문의 자진사퇴를 하는 등 미스터리한 과정을 거쳐 KBS 박민 사장이 탄생했는데, 이렇게 따지면 ‘공영방송 KBS 붕괴’의 연원은 이동관 위원장이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9일 국회에서 탄핵안 관련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뉴시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9일 국회에서 탄핵안 관련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뉴시스

 

권력이 언론을 탄압할 때 언론이 ‘나만 아니면 돼’ ‘우리 편이 아니니까 괜찮아’라는 식으로 침묵하거나 ‘칼잡이’를 자처하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런 언론은 스스로를 포함한 그 누구도 지킬 수 없고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상징적인 장면이 최근 나오기도 했다. 11월 6일, 주한이스라엘 대사가 한국 취재진을 모아놓고 ‘하마스의 이스라엘 국민 학살 영상’을 보여주며 “한국 언론도 이스라엘 공습 사망자는 '학살'(massacre)의 희생자라고 쓰면서 하마스 학살로 숨진 이들은 '살해'(killing) 희생자라고만 표현하는데, 이는 불공평하다”고 비판했다.

이례적으로 대사관이 타국 언론인들에게 여론전을 편 것인데 결례일뿐 아니라 사실과도 다르다. 우리 언론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있어 아예 ‘학살’이라는 표현 자체를 자제하고 있다. 그나마 ‘학살’을 쓴 기사들 중엔 이스라엘이 원하는대로 ‘하마스의 학살’로 쓴 기사들도 다수다.

이 무례한 사태를 보도한 국내 언론 자체가 소수일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해 우리 언론계가 항의했다는 소식이나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보도가 없다. 결례에 항의함과 동시에 ‘병원과 난민촌까지 하마스 궤멸을 핑계로 공격하는 이스라엘은 학살을 자행하는 것이 맞습니다’라고, ‘진실의 영역’에서도 항의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만약 우리 언론이 그렇게 항의했다면 국제적 이슈가 됐을 것이고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적 비판 여론에 힘을 실어 ‘인도주의적 휴전’을 압박했을 것이다.

우리 언론의 철저한 침묵은 국내 정파와 전혀 무관한 ‘글로벌 인도주의 이슈’에서도 스스로와 전쟁 피해자 모두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동료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에 침묵하는 언론이 과연 누굴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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