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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방송 장르 결산] ① 예능

쿡방·생활·음악, 예능의 영토 확장 본격화하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5.12.21 07: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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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방송장르 결산]

① 예능
② 드라마
③ 시사·교양

2015년 예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군웅할거 시대의 영토 확장이라 할 수 있다. 방송 콘텐츠의 최정예부대가 된 예능은 깃발을 드높게 나부끼며 편성표를 장악했다. CJ가 발표한 지난해 CPI(콘텐츠파워지수) 1위부터 10위에 랭크된 예능이 <무한도전> 단 한편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는 4개 프로그램이 이름을 올렸다. 기존의 <무한도전><1박2일> 등의 대표 장수 예능들은 위기설 속에서도 시청률을 통해 ‘국민예능’으로서 건재함을 과시했고, 2~3년 전부터 나영석 사단을 대표로 하는 관찰형 예능의 패러다임은 역시나 굳건했다. JTBC예능의 침공 이래 타깃 시청자를 세분화한 새로운 형태와 소재의 토크쇼도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존 예능을 잊도록 만든 거센 트렌드가 있었다. 바로 JTBC<냉장고를 부탁해>부터 MBC<복면가왕>을 거쳐 <마이 리틀 텔레비전>으로 이어진 이른바 ‘콘텐츠 예능’이다. 스타셰프를 앞세운 요리 콘텐츠와 그 뒤를 따른 ‘음악 경연’은 기존 예능의 영토가 아닌 신대륙으로 시청자를 인도해 즐거움을 주었다. 이에 너도나도 골드러시에 동참했고, 그 결과 2015년의 예능 키워드로 쿡방이 꼽히게 되었다. 따라서 올해를 정리하면서 단순히 쿡방의 인기원인을 재조명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 예능이란 새로운 흐름이 어떤 식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MBC

지금까지 예능의 변화와 발전을 이끈 운동법칙은 일상으로 더 가까이, 그리고 재미라는 개념의 외연 확대다. 올해는 이 경향이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쿡방으로 시작된 콘텐츠 예능의 재미는 웃음이나 일상과의 교감이란 정서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란 더욱 복잡한 단계로 넘어갔다. 먹방이 단순히 잘 먹고 맛깔난 표현로 맛집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이 왜 맛있는지를 분석해서 이야기하는 구르메 콘텐츠로 진화하고, 요리가 살림이 아닌 즐거움과 취향이 반영된 문화 행위로 인식을 바꾸게 한 것이 그 증거다. 즉 시청자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생활에 도움이 된다거나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는 패션잡지의 기능, 즉 취향의 제안, 생활의 큐레이션 역할이 가미된 것이다.

이제 포맷과 장르만을 빌려와서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성공 사례를 만들 확률이 더욱 더 낮아졌다. 예능 제작진의 중요한 덕목은 웃음의 생산에서 콘텐츠를 가진 신선한 인물의 섭외와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안목이 됐다. 예능인들 또한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험난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2015년 예능에서 가장 뜬 남성 출연자들은 대부분 셰프이고, 혜성처럼 나타나 주목을 받은 여성 출연자들은 대부분 머슬매니아 등에서 이름을 남긴 글래머 몸짱이란 점이 시사하는 바다. 이제 예능인의 필수 항목이었던 에너지와 개인기, 리액션만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줄면서 진행 능력을 갖추거나 최소한 노래라도 잘 해야지 <복면가왕>에라도 출연을 알아볼 수 있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2015년 예능은 리얼버라이어티로 접어들면서 정서를 함유하기 시작하고, 관찰형예능에 접어들어 일상을 공유했던 수준의 변화만큼이나 다음 단계로 예능의 영토를 확장했다. 이제 시청자들의 일상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콘텐츠를 예능화해야 한다는 새로운 숙제를 받아들이게 됐다. 콘텐츠 예능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분류상으로 교양(정보, 문화적 소양, 정치)에 속하는 아이템부터 섭외 레이더망을 방송국 너머로 가동해야 한다. 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융합된 장르 등 제작방식에 있어서까지 모든 것을 재점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중파 방송사들도 파일럿 제도를 활발히 활용했던 것처럼 내년에는 더욱 빨라지는 트렌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런칭과 폐지라는 기존 문법을 떠나 보다 짧은 호흡의 편성과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에 질리는 데까지 걸리는 짧은 호흡을 감안하면 케이블 예능이 이미 도입한 시즌제 등 편성 차원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예능이 등장하고 기존 예능이 가진 재미의 함의가 복잡해지면서 웃음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줄었다. 그 직격탄은 많은 가정에서 일요일 밤을 보내는 의식이었던 KBS <개그콘서트>가 맞았다. 서서히 내리막을 걷긴 했지만 두 자릿수 시청률이 무너진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공개 코미디라는 형식이 예능에서 마이너 장르이긴 하지만 확실한 타깃을 노린 tvN <코미디 빅리그>나 시청률을 어느 정도 회복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개콘>의 추락을 단순히 공개코미디의 위기로 짚고 넘어가긴 힘들다. 이제 웃음만으로 예능에서 살아남기는 힘든 시기다. 그런데 웃음을 주무기로 하는 공개코미디가 웃음과 함께할 무엇을 찾지 않는다면 어려움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 KBS '개그콘서트' ⓒKBS

등장인물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틀 속에서 합을 맞춰 나오는 코미디, 우리가 익숙히 봐온 웃음을 만드는 공식, 일상의 은유가 가미되지 않은 채 에너지와 끼를 발산해서 웃음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코너의 교체, 스타의 탄생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온가족 콘텐츠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지향점을 새로이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면적인 재점검과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다.

2016년의 예능은 올해보다 한층 더 라이프스타일과 큐레이션이란 새로운 모색을 하면서 트렌드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방향성이 잡힌 라이프 스타일과의 접목은 계속해서 시도될 것이다. 요리에서 셀프인테리어로 넘어가는 영토 확장 시대에 예능 개척자들의 도전이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 방향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올해의 경향을 영토의 확장이라 했다. 기존 예능은 새로운 예능에 지친 시청자들을 위해 올드스쿨한 방식을 고수하며 자신들의 길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리얼 버라이어티로 시작된 JTBC <아는 형님들>이나 음악경연 쇼들의 진화가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2013년부터 새롭고 신선한 예능이란 목표를 갖고 달렸기 때문에 오히려 함께했던 시간과 맥락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추억, 복고 콘텐츠가 변주된 버전으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기대를 해볼 수 있는 것이 여성 예능(여성 예능인)의 도래다. 미국의 경우 코미디 시장의 패권은 현재 여성들이 쥐고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너드, 긱 등 덜 성장한 백인 남성 코미디가 먹혔다면, 이제 티나 페이, 에이미 슈머, 멜리사 맥카시 등이 주인공이 되어 여성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는 코미디를 펼친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인터넷 상에서 가장 화제중 하나가 페미니즘 관련 논쟁이기도 했고, 이국주, 박나래, 장도연, 홍윤화 등 새로운 여성 예능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예쁜 여자의 털털한 반전(<진짜사나이>), 망가지는 슬랩스틱(박나래, 장도연), 진행 보조나 콩트에서 뚱뚱하고 못생긴 역 등 정해진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나 여성이 주체가 되는 코미디, 예능을 위한 판이 깔리고 있다.

방송인 김정민은 향후 몇 년 간 여성 예능인들은 힘이 들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나도 지금은 당장 뭘 해보자가 아니라 흐름이 올 때까지 버티고 있자는 생각이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버티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아질 수도 있어 보인다. 더 넓어진 예능의 영토를 개척하는 덕목은, 금기 혹은 신대륙을 탐험하는 도전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까지 늘 실패해왔던 여성 예능이 새로운 동력을 얻을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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