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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 기자, 작가가 입을 열었다…“도살장 닭 같았다”

[라운드 테이블] 제작거부 ‘PD수첩’ 김현기 PD‧이아미 작가, ‘시사매거진 2580’ 노경진 기자 이혜승 기자l승인2017.08.17 09: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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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이혜승 기자] 2012년 MBC 170일 파업 후 경영진이 자행한 일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MBC 내부 '블랙리스트' 실체가 점점 폭로되고 있는 가운데, 경영진이 일상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 모든 '범죄 행위'가 그들 스스로를 옥죄는 모양새다.

내부에서 이 모든 일을 감내해야만 했던 PD, 기자, 작가들도 입을 열고 있다. 이들은 수없이 많은 제작 자율성 침해 사례를 열거하고 "다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PD저널>은 최근 부당한 이유로 아이템이 거절당한 후 제작거부에 돌입한 <PD수첩>의 김현기 PD와 이아미 작가, 그리고 그동안의 제작 자율성 침해를 참아오다 울분이 터져 함께 제작거부에 동참한 <시사매거진 2580>의 노경진 기자를 만나 그간의 고통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의 지난 세월을 통해 자연스럽게 MBC ‘블랙리스트’ 체제 하에서 경영진에게 입바른 말을 했던 소위 '노조 조합원'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어떤 심정으로 그 기간을 버텼는지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 제작거부에 돌입한 의 김현기 PD와 이아미 작가, 그리고 그동안의 제작 자율성 침해를 참아오다 울분이 터져 함께 제작거부에 동참한 <시사매거진 2580>의 노경진 기자를 만나 그간의 세월에 대해 들어봤다. ⓒ김성헌

각자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에서 몇 년간 일해왔는지 궁금하다.

김현기 PD 2001년에 입사해서 2005년에 입봉을 <PD수첩>으로 했다. 그때 이아미 작가가 메인작가였고, 난 막내PD였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하고, 다른 프로그램도 하다가, 2015년에 다시 와서 지금 2년째 <PD수첩>을 하고 있다.

이아미 작가 1998년에 MBC에 와서, <PD수첩>은 12년째 하고 있다.

노경진 기자 2002년 12월에 입사했다. 계속 보도국에 있다가, <시사매거진 2580>은 2014년 말에 발령받았다. 중간에 육아휴직으로 9개월 쉬었다가 다시 복귀한 게 작년 12월이다.

2012년 파업 후 시사교양 PD와 작가, 기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김현기 파업 당시부터 최승호 선배가 파업 중 해고가 되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래서 시사교양국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던 차에, 파업 후 복귀해 올라오자마자 회사가 국을 두 개로 쪼개 시사교양국을 해체했다. 그때 <PD수첩>만 <시사매거진 2580> 등 기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관했다. 시사교양국 전체 PD 중 1/4 정도를 찍어냈다.

이후 시사교양국을 교양제작국으로 바꿨다. ‘시사교양’에서 ‘시사’를 떼어낸 거다. 1년 정도 지나고, 김현종 전 팀장이 교양 국장으로 왔는데, 그가 오자마자 한 말이 “이제 시사는 잊어라”. 교양국은 ‘교양콘텐츠’로 간다면서 다큐멘터리, 시사 관련 인물을 일절 섭외하지 못하게 했다. ‘시사교양’에서 ‘시사’를 떼어내더니, ‘교양’도 없애고 ‘콘텐츠제작국’으로 바꿨다. 주로 외주제작을 맡는 부서로, 지금도 시사와 교양 없이 콘텐츠제작국으로 있다.

얼마 전에 후배들을 경력직으로 뽑았는데 자막에 나오는 것도 교양PD가 아니라 콘텐츠PD다. 시사교양 조직을 파업 후 2년 만에 다 없애버린 거다. 개개인에 대한 공격을 떠나서, 회사가 우리에게 “너희는 시사교양PD도 아니”라고 한다.

▲ <시사매거진 2580> 노경진 기자 ⓒ김성헌

노경진 파업할 때 한창 그런 얘기가 있었다. 사측이 우리를 등급을 나눈다. A, B, C, D. 얘네는 도저히 가만히 둘 수 없는 괘씸한 애, 얘는 두고 봐도 될 애, 일 좀 시킬 애, 회유 가능한 애. 파업 후 인사발령이 났는데 정말 쫙 갈렸다. 절반은 신천 교육발령, 소위 ‘신천교육대’에 가고 절반은 보도국에서 일했다. 그 자체부터, 같이 파업을 했는데 왜 누구는 밖에 있는 엄한 부서에 가 있고, 왜 우리는 보도국에서 일을 하나...죄책감을 안고 시작해야 했다.

그때만 해도 MB정부 말기였고, 우리가 열심히 하면 바뀔 거란 희망이 있어서 어떻게든 버텼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저들이 굉장히 노골적으로 돼갔다. 기자 같은 경우는 변칙적인 채용을 계속하면서, 파업 대체인력인 소위 '시용기자'를 수시로 뽑아서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들어온 기자들과 우리의 갈등이 있는 상태에서 계속 위축됐다. 그럼 사측은 ‘너희들이 계속 저항하면 경력과 수시채용을 늘려서 언제나 대체할 수 있다’는 압력을 줬다. 그런 죄책감과 위축감 속에 굉장히 부당하고 말도 안 되는 아이템 지시를 내렸다.

김현기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처럼 제작거부에 뛰어들었다가는 정말로 다 없애버릴 기세였다. 당시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현 부사장), 김철진 본부장, 김현종 국장 전부 교양국 PD 출신 선배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오히려 시사교양 PD들을 훨씬 더 가혹하게 대했다. ‘난 너희들의 약점을 다 알고 있다. 너네가 뭐가 그렇게 잘나고 깨끗하냐' 그런 식으로 대했다. 대처할 틈도 없이 사람들을 밖으로 빼고, 인사발령을 내고, 이런 과정이 이어져서 정신없이 당하는 연속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황당하고 정신이 없어서 슬퍼하고 애잔할 틈도 없었다.

노경진 우린 도살장 컨베이어 벨트에 있는 닭 같다. ‘뚝’ 떨어지면 전기충격을 주는. 파업할 때 A등급은 이미 떨어졌다. 나는 B, C 그 사이였나 보다. 2년 동안 계속 밖으로 떨어트렸다. 내가 보도국을 나가게 됐을 때 그냥 ‘아, 이제 내 차례가 왔구나’ 했다. 예전에는 기자 경력 5~6년 차가 되면 <시사매거진 2580>으로 가고, 다시 보도국으로 돌아오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시사 프로그램을 시사제작국 안에 가두고 완전히 감시하고 있어서 이 인사가 아주 큰 인사다. 다시 보도국으로 돌아가려면, 예전에는 국장 선에서 도장만 찍으면 될 걸 이제는 부사장 결재를 받아야 하는 거다.

김현기 김현종 편성제작본부장 시절 그런 얘기를 했다. “조합원 수와 비조합원 수를 맞추겠다”. 실제로 그렇게 유지했다. <PD수첩> PD가 8명이면 조합원 4명, 비조합원 4명. 그 조합원 수를 맞추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심지어 남녀비율도 맞췄다. 8명 중 남자 6명, 여자는 2명. 무조건. 정상적인 인사면 PD의 능력과 커리어를 고려해서 이 사람은 이 프로그램에, 저 사람은 저 프로그램에 보내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인사였다.

노경진 아이템 발제를 하면 사사건건 간섭했다. 예를 들어 내가 교육부에 출입할 당시, 8종 교과서에 대해 ‘이건 왜 북한을 미화하냐’, ‘한국전쟁에서 왜 북한 책임을 이렇게 모호하게 했느냐’ 등등 편향된 시각으로 아이템을 시켰다. 그럼 난 그걸 다시 취재해서, 그들이 말한 아이템을 ‘킬’ 시키기 위해 죽어라 취재를 했다. 진보사학자들을 취재하는 이유가 기사를 내기 위한 게 아니라, 사측의 말도 안 되는 편향된 시각에서 MBC 뉴스를 구하기 위해서,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출입처에 1진과 2진이 있는데, 당시 2진이 소위 시용기자였다. 위에서 아이템을 시키면, 이걸 내가 그냥 할 것인가, 내 아래 시용기자에게 맡길 것이냐 하는 입장에 빠지게 된다. 시용기자한테 맡기면 난 편하다. 내가 안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기사가 나가게 될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편향되면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는 위험한 기사가 될 가능성이 너무 높은 아이템인데, 이걸 내가 잘 모르고 경력도 짧은, 믿음이 가지 않는 기자한테 맡길 수가 없다. 그럼 결국 내가 하겠다고 하게 된다.

근데 그러면 이게 결국 내 이름이 남는다. 내가 평상 안아야 하는 한이 될 수 있고, 후회가 될 줄 안다. 하지만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이다. 입사해서 처음 있던 프로그램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언론시민단체 간사들과 일도 많이 했는데, 이제 언론시민단체 홈페이지에 내 기사가 올라와있는 걸 보게 된다. 당연하다. 기사요건도 안되고 시각도 뻔하고 편향적이니까. 그런데 MBC 조직 자체가 편향적으로 돼있으니까, 이안에서는 내가 '중립'을 지키는 것조차 굉장히 무슨 ‘좌빨’처럼 얘기한다.

▲ 〈PD수첩〉 이아미 작가 ⓒ김성헌

이아미 2012년 파업 당시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아이를 낳게 됐다. 그러다 이영백 PD가 다시 <PD수첩>을 하자고 해서 2014년에 돌아왔다. 임신, 출산 등으로 밖에서 MBC를 볼 때는 '숨 쉴 공간이 저렇게까지 없을까' 싶었다. 왜 저렇게 밖에 못할까. 내가 알던 PD들도 저런 사람들이 아닌데...그러다 2014년에 돌아간 지 얼마 안 돼 세월호 참사가 났다. 그때 위에서 세월호 아이템을 전혀 못하게 했다. 자꾸 못하게 하니까, 그러면 외국에서 이런 재난이 났을 때 국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아이템이라도 하자고 했다. 위에서 해도 좋다고 했다. 단, <PD수첩>을 떼고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 <PD수첩>이 아닌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이영백 PD와 함께 ‘이명박 자원외교’ 아이템도 했다. 그런데 하자마자 이영백 PD가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때 그걸 보면서 ‘아, 이거구나’ 깨달았다. PD는 비제작부서로 발령을 내버리고,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시간은 흘러갔다. 왜 이렇게 숨도 못쉬고 살았는지 알겠더라. 언제든 경력 기자, 경력 PD를 뽑고 대체할 수 있는 일이니까.

시간이 흘러 팀장이 새로 오면서 세월호 아이템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최근 제작거부 돌입 후 시사제작국 명의 회사 성명을 보면, 마치 당시 세월호 아이템이 건강한 토론 속에 잘 마친 것처럼 말하더라.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라는 단어와 ‘청와대’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국가’와 ‘청와대’를 두고 취사선택하라고 했다. 결국 ‘국가’는 살고 ‘청와대’는 줄어들었다. 그런 일들이 일상이었다.

2012년 <PD수첩> 작가들을 향해 해고 사태가 있지 않았나. 정재홍 작가는 결국 복귀를 못했다. 내가 돌아온 뒤에도, 팀장이 와서 ‘(윗선에) 너네 착하다고 맨날 얘기해야 한다’고 하더라. 위에서 어떻게든 작가진도 갈아버리려고 하니까, 팀장이 너네(작가들) 착하다고 얘기를 하고 다녀야 한다는 거다.

세월호 아이템을 하고 난 후에 경력 PD들이 노조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그때 위에서는 ‘작가들이 배후’라고 말했다. 일단 노조에 가입하는 걸 ‘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배후’가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거다. 그걸 정말 말도 안되게 작가가 배후랍시고, “작가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줘야 하는 팀장도 참 어이없어 했다.

▲ 〈PD수첩〉 김현기 PD ⓒ김성헌

<PD수첩> PD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가고, 뒤이어 <PD수첩> 작가와 <시사매거진 2580>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가면서 각자 ‘제작 자율성 침해 사례’를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직접 겪었던 사례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또 당시 심정이 어땠나.

▷링크 <PD수첩> PD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
▷링크 <PD수첩> 작가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
▷링크 <시사매거진 2580> 기자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

김현기 ‘두산 인프라코어 희망퇴직’ 사태 아이템을 나와 후배 PD가 냈다. 당시 작가들에게 만약 해직자, 희망퇴직자로 교육발령 된 사람들이 섭외가 되면 아이템을 해보자고 했다. 연락을 취해보니 이분들이 상황이 너무 급박해 <PD수첩>이 제일 먼저 연락해줬다며 고마워했다. 그래서 12명이나 섭외가 됐다. 이건 단독이었다.

당시 팀장이 휴가여서 박용찬 전 국장에게 직접 들고 갔다. 일단 놓고 가라고 했다. 다음날 후배는 벌써 촬영을 나가 있었다. 이 사람들 상황이 너무 급박하니까, 후배는 일단 찍겠다고 나간 거다. 그런데 그날 국장이 “2주 후가 되면 아무도 관심 안 가진다”며 아이템을 불허했다. 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신입사원을 바로 희망퇴직에 포함시킨 예가 없다'고, '관련기사도 하루에 수십 개가 나온다'고 설득했다. 또 우리가 취재를 하면 사측이 압박을 느껴 퇴직자들을 풀어줄 수도 있다고, 그거까지 담아낸다면 우리 프로그램의 성과처럼 포장도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런데도 박용찬 국장은 아니라고, 2주 후가 되면 ‘이런 노동문제’ 아무도 관심 없다고 답했다. 심지어 “막말로 회사가 어려우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되게 자연스러운 경영의 한 방편인데 어떻게 문제 삼느냐”고 했다. 우리는 약자의 입장에 서야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꼭 해야 하는 이야기 아니냐고 했지만, 박용찬 국장이 “나는 얘기가 끝났다”며 “빨리 가서 다른 아이템을 알아보라”고 했다. 대화의 여지가 없었다.

섭외된 사람들에게 우리가 단독으로 붙겠다고 얘기했는데, 이틀 만에 취재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그들에게 정말 너무나 미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가서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템이 까였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그런데 그쪽에서, 회사가 이미 <PD수첩>에서 붙은 걸 알고 타협안 마련에 들어간 것 같으니 제발 방송하지 않는다는 걸 외부에 알리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하더라.

한편으로 우리는 하려던 아이템이 비어버렸으니 할 게 없지 않나. 당시 한 작가가 예전에 데이트 폭력 아이템을 했었는데 시간상 다루지 못한 사례자들이 있다고 해서, 그 아이템을 그 상황에서 하기는 정말 싫은데, 사례자를 나열하는 사건사고 아이템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박용찬 국장에게 들고 갔더니 ‘아이구 좋다’고, ‘이 아이템 얘기 되네’라고 했다. 꼭 그렇게 말한다. ‘이 아이템 얘기 되네’...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사실 이런 일이 너무 많았다. 나중에는 이런 류의 아이템을 한동안 꺼내지도 못했다. 아이템을 냈다가 까이면, 일주일 만에 다른 아이템으로 <PD수첩>을 만들어야 한다. 원래 4주 동안 제작하는 걸 일주일 만에 만들어야 하게 되면 완성도나 취재의 깊이 등에 있어 부족함은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나중에는 안 될 게 뻔하니까, 경영진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까기 시작하면 한이 없으니까, 이런 아이템은 한동안 내지도 못했다.

▲ <시사매거진 2580> 노경진 기자 ⓒ김성헌

노경진 <시사매거진 2580>에서도 황당한 케이스가 너무 많았다. 직접 경험한 건, 한 보도를 통해 강정마을 주민들이 30억 이상의 구상권을 해군으로부터 청구 받았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이미 해군기지가 다 지어지고 주민들이 벌금을 다 낸 상황인데, 해군이 직접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삼성물산이 해군더러 주민 시위 등으로 공사를 못해 손해를 봤다면서 해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을, 해군이 합의를 보면서 그중 30억 이상을 주민에게 청구한 거다. 님비 시설이 들어오면 주민들이 반대하기 마련이고, 그럼 주민들과 합의하고 의견을 들어주고 원활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나오는 비용은 필요한 행정비용 아닌가. 그걸 국가가 개인에게 청구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봤다. 당시 새누리당 출신 원희룡 제주도지사조차 이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템을 발제하기 전에 일단 사전취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부터 어느 순간 우리가 취재를 하면, 시민단체들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기자 시절 작업을 같이 하던 시민단체들도 그랬다. 개별 기자들이 여전히 열의가 있고 좋다는 걸 알아도, 위에서 ‘킬’ 되면 이 사람들도 사람인지라 너무 싫은 거다. 사실상 이들이 섭외도 다 해주는 건데 ‘킬’ 되면 싫지 않겠나. 그래서 당시 이 아이템이 정말 하고 싶어서 내 개인사까지 밝혔다. 남편이 노조집행부였는데 회사에 손배를 당해서 그 느낌이 뭔지 안다고. 그분들까지의 절박함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호소하면서 그분들의 마음을 샀다.

덕분에 꽤 진행을 해서 부장 선까지 아이템이 통과됐다. 예전 같으면 부장 통과되고 나면 그 아이템은 그냥 하는 거였다. 그런데 당시 박용찬 국장이 “해군 입장도 있지 않느냐”며 “일대일로 다뤄달라”고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군은 취재가 아예 안 된다. 카메라 접근이 안 된다. 물리적으로 취재를 할 수 없다.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일대일’을 해줄 수가 없었다. 설사 맞춘다 해도, 이 아이템과는 무관하게 강정마을 주민들이 바위에 엎어지는 등의 그림을 써야만 했다. 그럼 안하느니만 못하지 않나. 그분들의 상처를 헤집고, 흉기가 되는 아이템이 되는 거다. 그게 머릿속에 너무 뻔히 그려지니까 ‘그럼 말자’ 해서 접었다.

진실을 전하고 싶고, 이런 문제가 있으면 그냥 못 지나치고, 이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싶은데, 회사가 바뀌지 않으니 개인적 좌절을 하게 된다. 나 스스로와 타협하면 마음이 편한데 그게 안 된다.

아주 평이한 아이템도, 예를 들어 ‘아파트가 다 50층씩 올리니까 언제까지 아파트는 높이만 짓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경제 아이템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한 경제전문가가 “자본의 탐욕에 대해 견지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위에서 빼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 이런 말이 신문에서 정말 흔히 쓰는 말인데, 못쓰게 하는 거다. 사람이 이상하다. ‘감히 자본님이 어떻게 탐욕이 있어. 자본님은 신성한 것이지’ 이런 생각인가보다. 인터뷰에서 딱 그 멘트만 떼게 했다.

김현기 이렇게 자잘한 게 하루에 수십 개가 있었다. 멀쩡히 인터뷰를 잘 했는데, 자기가 보기에 소위 ‘좌파’면, <경향신문>에 칼럼을 썼던 사람이면, ‘좌파’라고 빼게 했다. 기가 막히게 안다 칼럼 쓴 사람들을. 그 뒤로 그 국장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갔다.(정연국 전 MBC 시사제작국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변인을 맡았다 -편집자주)

▲ 3일부로 제작중단에 돌입한 MBC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경제매거진M>, <생방송 오늘 아침>, <생방송 오늘 저녁> 등이 속한 시사제작국 PD·기자들이 3일 오전 서울 상암MBC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장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PD저널

제작거부에 들어갈 당시, 또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어떤 심정인가.

김현기 처음 제작거부에 들어갈 때 ‘이런 순간이 한번은 오겠구나’라는 건 누구나 아는 거였다. 너무 쌓여온 게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시점을 일부러 잡는 것도 불가능한 거니까. 이영백 선배 팀에서 그 아이템을 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이템 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지만 최순실 사태 이후, 마치 숙제하듯이 몇 년 만에 아이템들을 다루게 해줬었다. 탄핵도 다루고, 대선도 다루고, 세월호와 4대강도 다뤘다. 그래서 그 아이템도 공정하게, 팩트 위주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설득만 하면 다룰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저렇게 갑자기 “너네 수장을 감옥에서 빼내려고...”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나올지는 몰랐다. 우리도 당황했다. ‘뭐지 이건?’ 솔직히 <PD수첩>이 이제 세간의 주목을 받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한상균 아이템’을 다뤄도 그냥 보는 사람들만 보고 끝날 텐데 왜 저렇게 일을 키우나 싶었다. 저렇게 나오면 오히려 우리는 아이템이 ‘킬’ 됐으니까,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발언은 부당노동행위다. 왜 저렇게까지 나오나 싶었다.

그래서 몇 년 만인지도 모르겠는 PD총회를 소집했다. 다음날 대표로 나와 서정문 PD가 들어갔다. 그런데 국장이 마치 녹음기를 튼 것처럼 “노조 조합원 PD들이, 민주노총 위원장, 너네의 수장을 감옥에서 꺼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 “아이템이 편향되고 오도될 게 너무 보여서 방송법상 할 수 없다”라고 몇 번을 얘기하더라. 그건 우리가 편향되게 방송을 제작할 거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자체가 부적절하다. 불법행위다. 그 자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조창호 국장은 “이건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과 똑같은 입장”이라며 “난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협상의 여지없이 벽과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이미 결론이 정해졌다. 국장과 본부장이 입장변화가 없다고 다른 PD들에게 전했더니, 만장일치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너네 수장’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그냥 가는 건 양심의 문제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결정이 생각보다 빨랐다.

▲ 〈PD수첩〉 김현기 PD ⓒ김성헌

그럼에도 제작거부라는 건, PD 개인에게는 위험한 일이다. 신중해야 한다는 주변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국장, 본부장과 애기가 되면 바로 방송을 제작할 수 있게 모든 스태프들은 그대로 스탠바이 시켜놨었다. 예전에 총파업을 할 때도 경영진이 교양PD 출신이니까 프로그램 만드는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래서 조연출,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시용PD 등을 총동원해서 프로그램을 어떻게든 메웠다. 당장 이번 주 방송이더라도, 구성안을 보고 어떻게든 편집해서 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팀장도 우리 의견에 동의한다고 해서 보직 사퇴를 했다. 그랬더니 국장은 결방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바로 대체 편성을 지시했다. 이전처럼 어떻게든 방송을 내려고 작가들에게 물어보고, 이 작가가 안 하겠다고 하면 다른 작가에게 물어보는 과정을 전혀 한 적이 없다. ‘결방? 오케이’ 이런 식이었다.

총결정권자이자 총책임자인 국장이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을 모르니까. TV PD를 해본 적이 없다. 제작부서에 최근까지 있던 사람이 아니라서 할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었던 거다. ‘PD들이 안 한대? 그럼 결방!’ 이 결정이 너무 빨리 내려져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단체행동을 하면서도 허탈해졌다. <PD수첩> 결방 당시 그들의 방관 내지 방조적인 태도를 보면서 조직을 와해시키려고 한다는 느낌을 다시 한 번 받았다.

노경진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국장이 제작중단 사태를 초래한 게 크다. 프로그램과 기사 난도질을 너무 심하게 했다. 그냥 방향을 정해주는 수준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뭘 들어내고 삭제하고 이런 게 많았다. 세월호 ‘진실 삭제’ 사건도 그랬다.(▷관련기사 ‘MBC 시사제작국장, 세월호 '시사매거진' 비정상 검열 논란’)

그렇게 문제가 생기면 문제제기를 하고, 성명도 내고, 그런 식으로 해왔는데 그게 쌓일 대로 쌓였다. 특히 선임기자 세 명, 부장, 차장까지 인사가 대규모로 나면서 힘들었다. 추락할 대로 추락하고 있을 때 <PD수첩>에서 제작거부가 떠서 우리도 토요일에 바로 메신저방이 만들어졌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는 지지성명을 내는 수준이었다가, 결국은 같은 국장 아래에서 이런 상황을 겪었으니까 함께 제작거부에 들어가게 됐다. 우리가 먼저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제작거부를 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원래 기자와 PD들은 같이 일을 안했다. 같은 시사제작국 안에 있어도, 심지어 김현기 PD와도 말을 섞기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 됐다(웃음) 처음으로 시사제작국 기자, PD 전체 총회를 가진 거다. 이미 이유는 산적해있었다. <PD수첩>이 먼저 앞서 나갔으면 우리는 같이 가면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기자회견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파견회사에서 나온 <시사매거진 2580> 작가들도 참여했다. 그분들은 정말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합류를 했다. 정말 고맙다. 우리가 좀 더 싸우고,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상황이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가 이제 다시 이뤄내야 한다.

▲ 〈PD수첩〉 이아미 작가 ⓒ김성헌

이아미 우리 작가들도 메인작가 4명, 취재작가 8명이 동참하게 됐다. 단일 프로그램에서 메인작가와 취재작가가 기명으로 함께 성명이 나온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메인작가들이야 이명박 정권 이전부터 MBC에서 일했으니까 지금이 얼마나 비정상인지를 안다. 그래서 PD들이 노동 아이템을 내고, 국장이 반대할 때부터 우리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취재작가들은 그렇지가 않다. 몇 개월 차에서부터 1년 반 정도 일한 친구들이다.

메인작가들이 조심스럽게 ‘성명을 내고 싶은데 혹시 같이 하겠는지’를 물어보고, 그 친구들끼리만 따로 모여서 또 회의를 했다.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전체가 다 참여하지 않기로 하고 비밀 투표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8명 모두 기명성명을 내자는 결정을 내렸다.

심지어 우리가 성명 초안을 낼 때 취재작가 중 한 명이, 자신들이 MBC라서 취재하고 섭외할 때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꼭 좀 잘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얘기들이 너무 마음 아팠다. 겨우 몇 개월 일한 친구들도 이게 비정상적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구나...이 친구들이 앞으로도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걱정은 많이 된다.

김현기 돈이 문제가 아니고 이 작가들은 본인 경력을 쌓아야 한다. 받는 돈이 많지도 않은데 일을 하는 이유는 이런 경험을 쌓아서, 취재 경험을 쌓고 기자, PD와 얘기하면서 본인 아이템에 대한 식견이나 시선을 만들려고 이 고된 시간을 버티면서 시사프로그램을 하는 거다. 그런데 경영진은 이 친구들을 일부러 방치하고 있다. 그렇게밖에 안 느껴진다. 방송은 PD 혼자, 기자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협업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라디오 출신의 본부장, 사장 비서실장 출신 국장, 라디오 출신 팀장이 와서, 이 사람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냥 방치해두고 있다. 이 스태프들을 해고하면 이후 프로그램에 악영향으로 돌아올 거다.

지금 상태로 계속 가면 스태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돼있다. 나중에 상황이 정리되면 스태프들을 다시 모아야 하는데, 지금 팀장은 라디오 편성 출신이라 제작을 안 해봤다. 아는 작가, 스태프도 하나도 없다. 그건 책임지지 못할 태도다. 정말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없구나...지금 상황이 해결돼도 이 스태프들이 흩어지면 언제 재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거에 대한 경각심은 전혀 없는, 진짜 애정이 없는 사람들이 와서, 프로그램이 어떻게 되건 말건 윗사람들 심기만 살피는구나...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김현기 애초에 제작거부를 목적으로 하고 아이템을 낸 게 아니다. 이렇게 기간이 길어지고 다른 부서들이 제작거부에 동참할지 전혀 몰랐다. <시사매거진 2580> 팀과 총회할 때도 말했는데, 우린 이후의 출구전략이 없었다. 당시 그대로 말했더니 <시사매거진 2580> 팀에서 황당해하고 진심으로 놀라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동안 참고 참다가 쌓이고 쌓여서 온 걸 서로 알아서 공감했다. 그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 더 가감 없이 말했다. 이건 출구전략이 없다고.

그렇지만 이제 다른 시사제작국 부서도 제작거부에 들어오고, 다른 부문에서 추가적으로 제작거부 논의가 이어지는 걸 보면서 출구전략을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겠다는 걸 느끼게 됐다. 이제 사측이 어떻게 응대하는지를 보면서 생각해야겠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시사매거진 2580> 팀이 즉각적으로 결합해준 게 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고립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경진 그때 출구전략이 없다고 해서, ‘아?’ 놀라긴 했지만, ‘So What!’ 출구전략 없어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PD수첩> 팀이 물꼬를 터준 느낌이었다. 이제 우리가 우리를 내던져서, 국민들이 MBC가 어디까지 망가졌는지를 알고, 공영방송 개혁이 정말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알아주는 계기만 된다면 그게 우리의 출구라고 본다.

이아미 사측이 ‘취재작가들은 그냥 제발 좀 떨어져 나가라’ 이런 자세로 대하는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 메인작가는 그렇다 쳐도, 취재작가들은 그럴 수가 없지 않나. 정말 진심으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같이 일하고 싶다고, 기다리겠다고 하는 친구들인데...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 보도국 기자들은 11일 오전 서울 상암MBC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중단을 선언하며 경영진의 사퇴를 요구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왜 이제 와서, 정권이 바뀌고서야 그러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보다 응원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 달라’고까지 말한다.

김현기 원래 순서는, 우리가 시청자들이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진짜 좋은 내용을 방송해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이 MBC를 다시 인정하게 만들어주는 게 순서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돼서 순서가 바뀌었다. ‘그래도 우리를 믿어달라’고 말하는 게 죄송하다.

그럼에도 김민식 PD가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치고, <PD수첩>이 제작중단에 들어가고, 시사제작국이 제작중단에 동참한 이후 예전보다 기사 댓글에서 “너네 없어져도 돼”, “이제 와서 왜 그러느냐”, “MBC는 이제 끝났다” 이런 댓글들이 줄어들고, 응원하는 댓글이 늘어나는 걸 본다. 감개무량하고 울컥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분들에게 뭔가 부탁한다면, 지금까지 안에서 어쨌든 보이지 않게 꾸준히 프로그램이 덜 망가지게 버텼고, 이제는 그게 폭발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정도로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주변 분들에게 말해주면 좋겠다. MBC 구성원들이 싸워왔고, 이제는 더 큰 싸움을 하고 있다고. 이 싸움이 마무리되면 다시 옛날 같은, 정말 위력적인 <PD수첩>과 파급력 있는 <시사매거진 2580>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고 기다려달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매일 인터넷을 보지 않는, 상황을 모르는 분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PD수첩>이 한 10년 가까이 망가져 있으면서 옛날 <PD수첩>이 어떤지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허접한 <PD수첩>만 기억한다. 그래서 얼마나 좋게 돌아갈지 모른다. 그들에게 옛날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고, 이게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주셨으면 좋겟다.

노경진 “예전의 MBC를 돌려주세요”, “공영방송을 통해 사회 문제를 보고 있습니다”, “시사 프로그램이 이런 문제를 다뤘으면 좋겠습니다” 등등 어떤 걸 기대하는지 요구를 활발히 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거 하라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거하려고 사람들도 만나고 취재원도 만나고 프로그램도 만드는 거니까. 회사가 그걸 못하게 한 거다. 너무 많이 실망하셨겠지만, 10년 전 기억을 떠올려서 강하게 요구하셨으면 좋겠다.

이아미 <시사매거진 2580> 기자회견 할 때 보니 '다시 기회를 달라'는 말씀을 하셨더라. 난 MBC 직원은 아니지만, 다시 기회를 준다는 건 지난 10년 간 굉장히 정의롭게 싸우고 일했던 사람들한테 기회를 주는 의미가 있다. 또 해고된 분들, 제작선상에서 밀린 분들이 다시 돌아오고 그랬을 때, 이 응축된 에너지는 정말 폭발력 있게 나올 거다. 내가 처음 MBC에 올 때만 해도 시사, 뉴스, 드라마, 예능 모두 최고였던, 그런 MBC로 빨리 되돌아올 거라고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면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 제작거부에 돌입한 의 김현기 PD와 이아미 작가, 그리고 그동안의 제작 자율성 침해를 참아오다 울분이 터져 함께 제작거부에 동참한 <시사매거진 2580>의 노경진 기자를 만나 그간의 세월에 대해 들어봤다. ⓒ김성헌

이혜승 기자  coa331@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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