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 대신 손석희 물고 늘어지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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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손석희 상대 사기 사실 알려지자 집중적으로 '의혹제기' 보도
전문가들 "언론, '성착취 사건' 본질 집중해야" 조언

'조선일보'는 26일부터 30일까지 지면 신문에 각 2건 이상씩 손석희 JTBC 사장 기사를 실었다.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6일부터 30일까지 지면 신문에 각 2건 이상씩 손석희 JTBC 사장 기사를 실었다. ⓒ 조선일보

[PD저널=이미나 기자] <조선일보>가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벌어진 성착취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언급된 손석희 JTBC 사장을 겨냥해 연일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한 차례 불거졌던 '차량 동승자 의혹'에 다시 불씨를 댕겨 사건의 본질과는 큰 연관이 없는 '흠집내기'식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텔레그램 박사방 성착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손 사장의 이름이 언급된 건 지난 25일 피의자 조주빈이 검찰에 송치되면서다. 당시 신상공개가 결정돼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의 입에서 손석희 사장의 이름이 나왔고, 손 사장은 입장문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금품을 건넨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도 손 사장 등이 피해자로 보인다며 별도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앞서 많은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포토라인 앞에 선 조주빈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2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주목하는데 무슨 얘기를 해야 사람들의 주의를 끌수 있을지를 연구한 것 같다"며 "그런 점에서 이러한 사람들(손석희 사장 등)을 언급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게 무슨 정치적 이슈가 아닌가, 정치적인 탄압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잘못된 의심을 하면서 비난의 방향을 틀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경찰대 교수 출신인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25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건을 정치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자신이 언급한 사람들과 반대편에 있을 수 있는, 자신을 지지해 줄 만한 집단을 향한 메시지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손 사장을 상대로 한 조주빈의 사기‧협박 행각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조선일보>는 26일자 신문부터 30일자 신문에서 손석희 사장을 겨냥한 보도를 하루 2건 이상씩 빠짐없이 실었다.

내용을 보면 지난해 불거진 '차량 동승자 의혹'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합리적 의심'임을 강조하며 읽는 이들에게 '손 사장이 돈을 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려는 것들이 대다수다. 

28일자 신문에 실린 <[기자의 시각] 손 사장님, 그날 밤 무슨 일이?>가 대표적이다. 크게 네 문단으로 구성된 이 기사는 세 문단의 끄트머리마다 "도대체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라는 질문만을 반복하고 있다. 30일자 신문에 실린 <[만물상] 늪에 빠진 손석희>도 "분명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는 루머가 무성했다", "도대체 뭘 숨기려고 이런 사람들과 뒷거래를 하는지 궁금해진다"는 등의 '추측'만을 싣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사들에서 정작 취재를 바탕으로 확인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차량 동승자 의혹' 당시 <조선일보>가 접촉사고 당일의 행적에만 주목한 보도를 내놔 "실제로 밝혀낸 것은 없으면서 손석희 사장이 그 곳에서 이상한 일을 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것과 판박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언론은 성역 없이 보도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이 아무렇게나 보도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과거의 의혹을 다시 끄집어내려면 문제를 삼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거나, 취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서중 교수는 "그렇지 못한 기사는 기사의 기본적 조건도 갖추지 못한 셈"이라며 "'국내 발행부수 1위' 등의 권위를 내세우는 <조선일보>가 그런 기본도 갖추지 못한 기사를 내놓는다면 거기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보도들은 의혹 제기에만 천착할 뿐, '성착취 사건'의 본질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검찰이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에 집중하자는 원칙을 강조한 것을 "사실상 손 사장 관련 사건으로 수사 범위를 넓히지 말자는 뜻으로 해석됐다"고 보도한 26일자 <조선일보>의 <검찰 n번방 수사책임자 "조주빈에 집중, 다른 사안 넓히지 말라"> 기사는 '주객전도'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물타기' 보도가 대중의 주의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위험이 있다고 경계한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은 "(언론이) 사건의 본질을 파헤쳐도 모자랄 판에 피의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고, 나아가 살을 덧붙이고 있다"며 "이번 범죄에 가담한 이들이 수만에서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이 거대한 성범죄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 것인지, 현행법의 공백이 있어 처벌이 미비할 수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역시 "(언론이) 가장 주요하게 보도해야 할 부분은 피해자 보호 및 재발방지를 위한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라며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워 마이크를 주고, 그 말을 그대로 받아 보여주는 게 과연 사건의 본질을 전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중도 손석희 사장이 사건의 전면에 등장하자 기존보다 더 높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데이터 전문 매체인 <빅터뉴스>가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대상으로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 관련 댓글 수와 기사 수를 조사한 결과, 손석희 사장이 화제의 중심이 됐던 25일이 조주빈의 신상공개가 있던 지난 24일보다 댓글 수가 많았다. 25일 관련 보도에서 손 사장이 언급된 기사는 15.6%에 그쳤으나, 댓글은 전체의 61.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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