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와 드라마 성공의 100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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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수의 방송인문학 ⑨]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지난 18일 서울 용산 CGV 용산점에서 열린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회 단체관람 이벤트에서 유인식 감독과 배우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주종혁, 주현영, 하윤경, 유인식 감독, 박은빈, 강태오, 강기영.©뉴시스
지난 18일 서울 용산 CGV 용산점에서 열린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회 단체관람 이벤트에서 유인식 감독과 배우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주종혁, 주현영, 하윤경, 유인식 감독, 박은빈, 강태오, 강기영.©뉴시스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콘텐츠가 성공하는 데에는 100가지 이상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탁월함이 우선 요구된다. 대본은 빈틈없이 짜인 구조여야 하고, 물샐 틈이 한 곳이라도 생기면 비에 젖은 연처럼 날기 어렵다. 매회 한 가지의 에피소드로 완결되는 연작 형식의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화제성과 시청률을 석권한 것은 대본의 뛰어남을 방증한다. 

콘텐츠: 대본, 연기, 연출

익히 알려졌듯이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13, 14화 제주도 편에서 캐릭터의 붕괴가 일어나고 밉상 캐릭터 권민우에게 인간적 서사가 부여되고 최수연과의 러브라인의 가능성이 보이자 시청자들은 반감의 저항이 커졌다. 시청률 상승도 주춤한 데에서 알 수 있듯 대중은 대본의 완성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본의 완성도에는 드라마의 소재와 주제가 시대정신과 밀접하게 동기화되었는지도 포함된다.

드라마 <우영우>는 사회적 약자인 자폐 스펙트럼을 겪는 주인공을 통해 장애인, 가정폭력, 탈북자, 성적 소수자, 무분별한 도시개발 등 공의가 필요한 사회적 문제를 다룸으로써 담론의 진보성을 획득했다. 법적 다툼은 뻔한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법리적 합리성을 따름으로써 리얼리티도 확보됐다. 대본을 쓴 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감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변호사들이 쓴 판례 기록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현실성이었다. 대본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성공의 조건이 딸려있다.  

연출은 어떨까? 전체적인 영상연출도 탁월했다. 8화 엔딩에서 우영우가 태수미에게 자신이 친딸임을 밝히자, 태수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장면이 있다. 핸드헬드로 우영우와 태수미를 미세하게 움직이며 포착하다가, 태수미의 감정이 요동하자 카메라는 수평을 깨며 좌우로 움직임으로써 분열되는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은 특히 인상적이다.

연출의 임무가 연기를 추출해내는 것임을 고려한다면, 유인식 PD가 대본에 최적화된 주인공으로 박은빈을 선택한 판단력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유 PD는 “우영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고, 처음에 박은빈이 1차적으로 거절했을 때 프로젝트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며 박은빈의 연기력에 신뢰를 보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섭외 당시 최정상의 연기자는 아니었지만, 연기력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시간을 두고 기다린 뒤에 섭외한 박은빈 캐스팅은 드라마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박은빈을 선택한 것은 드라마가 스타 중심이 아니라, 연기 자체에 집중하겠다는 명료한 의지의 발현이다. 

따라서 박은빈을 중심에 둔 배우 라인업은 온전히 박은빈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구조였던 셈이다. 물론 연기력이 더 뛰어난 연기자가 합류했더라면 새로운 케미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은빈 중심의 연기의 구조는 획득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박은빈은 자폐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우영우 자폐’라는 새로운 연기의 틀을 창조했다. 박은빈이 보여준 연기는 드라마 연기의 이데아로 기록될 듯하다. 박은빈 외에도 강기영(정명석), 백지원(한선영), 전배수(우광호), 하윤경(최수연), 주종혁(권민우)는 물론 판사, 변호사, 피의자로 등장한 출연자 모두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며 드라마 연출을 완성했다. 연출은 연기를 추출해내는 행위이며, 연출과 연기에도 성공의 여러 조건이 딸려있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플랫폼: 새로운 유통방식의 탄생

콘텐츠의 조건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누군가는 콘텐츠의 승리라고 말하지만, 콘텐츠만의 승리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플랫폼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만든 에이스토리는 지상파 대신 KT의 신생 플랫폼 ENA를 선택했다.

ENA에서 방송한 뒤에 넷플릭스에서 순차적으로 공개된 <우영우>는 콘텐츠 유통의 주된  세 가지 유형인 ‘지상파+대형 OTT’, ‘종편·PP+대형 OTT’, ‘대형 OTT 오리지널’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에이스토리는 지상파나 종편 그리고 메인 PP가 아닌 신생 PP와 넷플릭스라는 유통 전략을 선택해 시장을 뒤흔들었다.

물론 신생 PP라고 해도 배후에는 미디어기업을 꿈꾸는 KT라는 대기업이 서있다. KT는 KT스튜디오 지니를 출범하며 투자·제작·유통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플랫폼 전략을 수립했다. KT스카이라이프·올레tv 등 IPTV, 유료방송 HCN, OTT 서비스 시즌, 음원 서비스 지니뮤직 등 다양한 플랫폼에 스토리위즈·KT알파·나스미디어 등까지 연결해 미디어 플랫폼 체인을 완성했다. 특히 skyTV와 미디어지니가 새롭게 론칭한 ENA, ENA 플레이, ENA 드라마, ENA 스토리 등 총 4개의 채널을 통해 우영우는 KT의 미디어 플랫폼 전략의 효과를 누린 첫 번째 콘텐츠가 되었다. 
 
콘텐츠와 미디어의 관계는 복잡미묘하다. 마샬 매클루언이 60여 년 전 언급했듯이 ‘모든 미디어의 내용(콘텐츠)은 또 하나의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우영우는 콘텐츠이지만, 이를 실어 나르는 ENA 채널 역시 콘텐츠다. KT라는 미디어 기업의 중요한 콘텐츠가 ENA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드라마 우영우는 콘텐츠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사회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또 다른 미디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의 드라마의 성공의 원인을 콘텐츠나 미디어 둘 중 하나의 측면에서만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드라마란 결국 무엇인가? 

드라마는 픽션 장르에 속한다. 하지만, 단지 픽션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을 치열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가 갖고 있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한 가지는 리얼리즘이다. 역동적인 사회적 특성 때문인지, 현실과 거리가 있는 판타지로만 구성된 드라마에 대중은 좀처럼 환호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정치 혹은 사회적 모순이나 가족관계의 답답함과 조응하는 드라마들이 시청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다. 명작으로 손꼽히는 <비밀의 숲>, <디어 마이 프렌즈>, <미생>, <나의 아저씨> 등은 어느 것 하나 사회적 메시지를 담보하지 않은 것이 없다. 

드라마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겪는 소수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다소 과도하다고도 볼 수 있는 논쟁이었지만,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단지 ‘즐거움과 재미’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적 공론장을 생성하고, 사회적 논의를 촉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환기해주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장르는 물론, 사회적 공론장을 형성할 의무를 가진 지상파 방송은 의문의 일패를 당했다. 중요한 수익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공적담론의 장을 펼치는 귀한 기회를 잃은 것이다.

작년 KBS 국정감사에서 “왜 KBS는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못 만드냐?”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KBS 사장은 “<오징어 게임>은 KBS 같은 지상파가 제작할 수 없는 수위의 작품이다. KBS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라는 창발성의 요구에 대한 질문을 표현의 ‘수위’와 심의의 문제로 축소한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창의성이 발현될 여지도 줄어든 것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왜 KBS는 <우영우> 같은 콘텐츠를 못 만드냐?”는 질문이 또 나올지 모른다. 작년과 같은 대답으로 1년을 또다시 허비하지 않기를 기대하며, 하나의 콘텐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100가지의 조건이 들어맞아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란다. 우영우는 끝났지만 지상파의 고민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상파에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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