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폭당한 '비속어 발언' 보도...MBC 잔혹사 재현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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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MBC 사장·취재기자 등 4명 고발..."제2의 광우병 선동" 주장
MB정부 'PD수첩-광우병' 방송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지만 제작진 '무죄' 판결
MBC "권력기관을 비판하지 말라는 보도지침"..."공영방송 장악 수순 우려"

28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MBC를 항의 방문하고 있다. ©PD저널
지난 28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MBC를 항의 방문하고 있다. ©PD저널

[PD저널=박수선 기자]  대통령실과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발언‘을 첫 보도한 MBC에 맹공을 퍼부으면서 14년 전 <PD수첩>이 겪은 잔혹사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MBC를 콕 집어 ‘제2의 광우병 선동’이라고 규정 지은 여당의 대처는 2008년 <PD수첩> 탄압 양상과 겹쳐보인다. 

2008년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방송으로 정권의 집중적인 탄압에 시달렸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제작진을 고소했고, 제작진과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제작진 긴급체포, MBC 압수수색 시도 등 검찰은 <PD수첩>에 집요하게 칼끝을 겨눴지만, 제작진은 3년 4개월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1년 대법원은 일부 내용은 정정보도하라고 판결하면서도 “공인의 공적 업무에 대한 비판을 담은 보도에 관해 명예 훼손죄 성립 여부를 심사할 때는 사적 영역과는 달리하여 언론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제작진에 무죄를 선고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도화선이 된 <PD수첩>은 MB정부 내내 국정원의 감시 대상이었다. 지난 2월 <PD수첩>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MBC 정상화 추진방안 등 문건을 보면 국정원은 PD수첩 아이템과 취재 진행상황, 제작진 성향 파악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폐지 및 제작진 교체까지 거론했다.  

집권 초기에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한 원인을 언론 탓으로 돌린 결과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5년에 낸 회고록에서 “쇠고기 협상 타결 열흘 뒤인 4월 29일부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MBC가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며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을 방송에 담았다. 심지어는 오역을 해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부풀리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하지만 '광우병 촛불'은 미국 쇠고기 수입을 사실상 전면 허용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로 촉발됐다. '광우병 괴담'은 밀실 협상으로 먹거리 불안을 키운 정부가 자초한 것이었다.  

2008년 4월 29일 <PD수첩>은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한가‘(▷링크)에서 미국산 쇠고기 협상 타결의 문제점을 짚었다. ⓒMBC
2008년 4월 29일 방송된 <PD수첩>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한가‘ 편.ⓒMBC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을 대하는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한 첫 브리핑부터 ‘그XX들에 대한 대통령의 기억은 불분명하다’는 해명까지 ‘비속어 발언’ 보도가 나온 지 일주일이 넘도록 대통령실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9월 5주차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한국갤럽 조사)은 지난 8월 1주차에 이어 최저치(24%)를 찍었다. 

‘비속어 발언’ 논란의 책임은 MBC에 떠넘겨졌다. 

윤 대통령은 해명 대신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여당은 “국기문란 보도”(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라는 날선 비난을 쏟아내면서 엄중 처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당이 박성제 MBC 사장과 보도국장, 취재기자 등 4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면서 공은 수사당국의 손에 넘어간 상태다. 여당의 전방위 공세에 MBC 압수수색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광우병 촛불’에 크게 데인 MB정부는 ‘언론장악’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YTN, KBS, MBC 사장이 차례로 교체되면서 방송계는 격랑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언론계 안팎에선 검찰의 'TV조선 재승인 점수조작 의혹‘ 수사, 감사원의 KBS 감사, 공기업 YTN 지분 매각 추진, MBC 고발 등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언론장악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MBC는 여당의 고발에 “보도에 관여했을 것이란 막연한 추정만으로 공영방송 사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의뢰하는 것은 앞으로 어떠한 언론도 권력기관을 비판하지 말라는 보도지침으로 비칠 수도 있다”며 “권력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재갈을 물리려는 어떠한 압박에도 당당히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PD수첩> ‘광우병’편 방송으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받은 송일준 전 광주MBC 사장은 “‘비속어 논란’을 보면 2008년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PD수첩>처럼 희생양을 만들어 위기 상황을 돌파해보겠다는 수법이 아니겠느냐”며 “검찰은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자기 목적을 어떻게든지 달성하려는 집단”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도 학습이 되어 있기 때문에 <PD수첩> 사태처럼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비속어 발언’ 보도를 빌미로 MBC를 무너뜨리고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움직임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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