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과 한계 확인한 드라마공동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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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북방송교류 10년-우리는 무엇을 얻었나(3)

남북화해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가장 먼저 우리 안방에 소개된 북한의 TV장르는 영화였다. 영화가 이렇게 가장 먼저 남한의 전파를 탄 이유는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되어 있지 않은 영화의 경우 비교적 편성이 용이하기 때문이었다(기본적인 완성도만 있으면 기본 시청률은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최초로 TV에 소개된 북한영화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SBS, 98.9), <임꺽정>(KBS, 98.10), <온달전>(MBC, 99.1)이다. 역사물은 남북한이 같은 뿌리의식을 공유하고 내용상 갈등이 적은 분야여서 먼저 방영되었으나 실제 시청률은 기대만큼 높지 못했다.

남한의 몇몇 드라마는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북한의 지도층 사이에 즐겨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KBS <용의 눈물>, SBS <여인천하> 등 사극은 북한에서 꽤 인기가 있다는 것이 평양을 드나들던 사업가들을 통해서 알려졌다. 2001년 SBS가 드라마 <여인천하> 테이프를 북한측에 직접 전달하기도 하였지만, 북한방송을 통해 소개되지는 않았다. 북한측이 남한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확인한 남한방송사들은 북한측에 드라마의 공동제작을 제안하였다. 드라마의 공동제작이야말로  경제적으로 상호보완적인 효과가 있는 분야일 뿐 아니라 남북방송교류협력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이었다.

▲ 2007년 KBS에서 방송된 드라마 <사육신>

2000년 10월경부터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를 통해 남북드라마 합작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연개소문>의 활약상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SBS측이 북한에 촬영세트를 설치하여 100회 분량의 대작을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연출은 북한에도 잘 알려진 김재형PD가 맡고 남북연기자가 공동 출연한다는 계획까지 수립되었다. 그러나 남한실무진의 방북만 한 차례 있었을 뿐 구체적인 제작에 착수하지는 못했다.

북한의 현실적인 제작여건이 우리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북한측 파트너의 능력을 검증하지 않은 채 열정만 앞세웠다는 반성이 뒤 따랐다. 특히 북한에서 남북방송교류업무에 대한 의사결정권은 대남사업기구인 통일전선부가 갖고 있는데도, 조선중앙방송측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점은 오류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대북교류를 진행한 대부분의 남한단체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이기도 했다.

방송사 마다 드라마의 공동제작에 대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던 중, KBS가 2002년 3월 드라마 <제국의 아침> 타이틀과 왕건의 명을 받은 두 왕자가 눈 덮인 백두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키우는 도입부분이 백두산과 평양의 을밀대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처음의 기획의도와는 달리 단순히 드라마의 일부를 북한지역에서 촬영하는데 그쳤지만, 남북방송교류의 범위가 다큐멘터리와 공연에서 드라마로 확대되는 발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남한의 방송사들은 2004년이 되자 북한에 드라마 세트장을 지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기대와 달리 북한에 사극드라마를 촬영할만한 장소가 별로 없고 남북한이 공동으로 사용하면 교류협력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KBS는 개성공단 인근에 8만 5천평 규모의 터를 북한측이 제시해 협의를 벌였고, SBS도 개성에 오픈세트를 건설하는 논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비용과 출입의 편의 등에 대한 문제로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드라마의 공동제작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KBS는 2007년 드디어 주문제작방식에 의한 북한 드라마 <사육신>을 선 보였다. 원래 2003년 9월 KBS 드라마제작관계자들이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드라마의 합작문제를 논의하였으나 북한측이 난색을 표해 주문제작방식으로 전환했다. 사육신은 KBS측에서 장비와 제작비를 지원하고 조선중앙방송TV측에서 캐스팅과 제작전반을 책임졌다. 대본의 초고를 북한측이 작성한 후 남북한작가들의 4차례에 걸친 공동수정을 거쳐 북한측이 제작에 들어갔다. 남북한의 언어와 정서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CF로 알려진 북한 민속예술단의 무용수 조명애를 비롯해 박성욱, 방석운, 박성, 이학철 등 북한의 인민배우와 공훈배우들이 총출연하고 북한최초로 디지틀·동시녹음방식으로 제작되었다. 2007년 8월 8일부터 10월 1일 까지 매주 수목요일에 방송된 사육신은 시청률에서는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 낯선 북한배우들의 낯선 연기, 익숙하지 않은 말투, 화려함이 떨어지는 세트장이 남한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 속에서 베어나는 진지함, 낯설지만 신선한 이미지는 남한 시청자들에게도 크게 어필했으며, 제작진의 기획의도에도 나타나듯 ‘남북이 하나의 역사·언어·풍습을 가진 하나의 민족임을 확인’하는 성과를 얻었다.

드라마의 공동제작 노력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하나는 남과 북의 방송제작여건과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질성에 대한 주도면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또 하나는 북한이 내세우는 상품 즉 인민배우, 공훈배우를 비롯한 재능 있는 배우들이 북한만큼 남한시청자들에게 기대만큼 어필하지 않으며, 그들의 상품가치(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이렇게 표현한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방송교류협력의 현실적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시킨 면에서 드라마공동제작의 노력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 오기현 SBS PD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위원장)

북한이 제작한 드라마를 안방에서 보던 시절이 아득한 옛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지금의 긴장된 남북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주민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을 TV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남북문제에 대한 PD들의 고민과 동참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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