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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시대, 중요한 건 제작진의 인권 감수성”

[송년 기획좌담] 여성혐오와 방송: 김민정 KBS PD,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김세옥 기자l승인2015.12.24 07: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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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싫다”며 IS(이슬람국가)에 가담한 김군의 소식이 알려지고 방송에서도 활약하는 한 칼럼니스트는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개그맨 장동민은 종합편성채널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함께 출연한 한 여성에 대해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싫다는 표현을 했고, 그의 동료들(옹달샘)과 함께 하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여성과 소수자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발언을 한 사실까지 알려지며 방송 하차 요구에 직면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에도 진보 칼럼니스트의 데이트 폭력과 소라넷 논란까지, 2015년 한 해 동안 온라인 공간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여성 문제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미디어는 잠잠했고, 방송은 더욱 그랬다. 미디어에서조차 페미니즘은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표현처럼 여전히 미운오리새끼로만 인식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불평등 육아가 성 차별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짚으며 화제를 낳았던 KBS <추적60분> ‘불평등 육아의 경고, 2020 인구절벽’을 연출한 김민정 PD, 그리고 여성 혐오와 차별의 이슈를 일선에서 제기하고 고민하고 있는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사무국장과 함께 지난 17일 서울 마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여성혐오와 방송’을 주제로 1시간 30분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

▲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왼쪽), 김민정 KBS PD ⓒ김성헌

- 2015년 한 해를 관통한 주요 사안 중 하나로 여성 혐오 이슈를 꼽을 수 있는데요. 개그맨 장동민(옹달샘)의 팟캐스트와 방송에서의 발언으로 발화해 데이트 폭력, 소라넷 폐지 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이슈를 시사 PD로서, 여성운동 활동가로서 어떻게 보고 있나요.

이윤소 국장: 어떤 얘기를 해야 할까요. 일단 한 해 동안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성단체에서 일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6년차 활동가인데 올해처럼 여성 관련 이슈들이 주목받은 게 처음이어서 재밌던 게 첫 번째인 것 같아요.

김민정 PD: 긍정의 반응인건가요?

이윤소 국장: 네. (많은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참고 있던 감정들이 폭발하며 나온 데 대한 뿌듯함이 있어요. 여성혐오를 그동안 참을 만큼 참지 않았나, 이제는 함께 얘기하고 부딪치며 해결해 나가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민정 PD: 이윤소 국장과 생각이 비슷한 게, 사실 혐오와 차별 등과 같은 여성 관련 이슈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매우 오래된 문제이지만 해결되지 않고 켜켜이 덮여있던 것들이 올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드러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연출한 방송(10월 28일, KBS <추적60분> ‘불평등 육아의 경고, 2020 인구절벽)에서 얘기한 불평등 육아나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등의 문제들은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해결되거나 건강한 담론의 장에서 얘기되지 않은 채 가라앉아 있었는데, 이제야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질문에서 언급된 남성 연예인들의 여성혐오 발언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쉽게 용서되는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요. 남성들이 여성들을 쉽게 ‘김치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발언들이 있잖아요. 연애할 때의 돈 문제 같은 것들이요. 이런 얘기를 여성이 쉽게 내뱉을 경우 인터넷상에서 거의 매장당하는 분위기가 되지만, 남성은 훨씬 더 수위가 높고 폭력적인 발언을 해도 너무 쉽게 용서받고 심지어 공감 받는 모습들이 있어요. 보통의 남성들 마음속에 있는 어떤 부분을 그들이 대신해 건드려준다고 할까. 그렇게 공감을 얻는 모습이 위험해 보여요.

-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했지만 김민정 PD가 속해 있는 방송사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방송사가 여성을 희화하고 조롱하는 등의 발언을 한 연예인 등의 출연 문제를 재고해 달라는 요구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김민정 PD: 주로 연예인과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 쪽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고, 저는 시사교양 PD이다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한데요. 데스킹 과정이나 협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걸러지긴 하겠지만 개별 프로그램에서 어떤 연예인을 출연시킬지 여부는 제작진이 판단할 부분이죠. 그런데 (현실론으로 봤을 때) 문제 발언을 한 연예인의 인기와 그로부터 비롯한 시청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여론이 어느 정도 잠잠해진 후 그를 출연시키는 데 대한 거부감은 크게 없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이윤소 국장: 사실 (여성단체) 안에서도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있었어요. 장동민씨의 경우 직접적으로 문제가 된 건 팟캐스트에서 했던 발언이긴 했지만, 공영방송이라면 적어도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또 대응 방식에 대해서도 상당히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방송 출연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된 거죠. 하지만 팟캐스트 속 발언들은 분명히 문제였고,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은 언제고 또 유사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방송 제작진이라면)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 얘기들을 하죠. 말 좀 잘못했다고 밥줄까지 끊어선 안 된다고. 그런데 역으로 질문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닐까요? 당신의 밥줄만 중요하냐고 말이죠. 사실 (장동민씨 등은) 지금도 잘 나가잖아요. 반면 혐오 발언으로 인한 나비효과, 그 발언으로 인해 생겨나는 굳어지는 차별들, 그 차별의 현실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밥줄 문제에 대해선 한 번이라고 고민을 해봤는지, 그런 얘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 김민정 KBS PD ⓒ김성헌

김민정 PD: 내부에서 여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나 여성주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에요. 관심도 없고, 이슈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왜 해야 하는지 중요성을 잘 모르는 거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언론사에선 여전히 어젠다(의제)를 세팅하고 데스킹을 맡는 중간 관리급에 남성들이 많아요. 그들이 아무리 진보적인 생각을 한다고 해도 (여성과는) 서 있는 위치가 다를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얘기를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웃음) 불평등 육아를 아이템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을 때, 팀장은 남녀가 다 애를 보면 소는 누가 키우냐고 하더라고요.

이윤소 국장: 소는 목장에서 키우도록. (웃음)

김민정 PD: 그래서 저도 소는 소가 키우고 애는 부부가 함께 키우는 거라고 말은 했는데(웃음) 그런 분위기인거죠. 불평등 육아 아이템을 하겠다고 할 때 누구도 못하게 하진 않아요. 하지만 정서는 그런 것 같아요. 결국 여성 혐오 발언을 한 출연자에 대한 판단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 같아요. 정말로 심각한 성 범죄를 저지르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출연하지 못하도록 걸러내는 시스템을 방송사 내부에서 갖추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정도의 물의를 일으켰다고 해서 출연을 못하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건 각각의 제작진과 팀의 판단이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작진 한 명 한 명의 생각이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여성 등 소수자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한 목소리 담는 미디어생태계 형성 가능”

- 장동민씨 발언 등이 아니더라도 방송에서 여성 등 소수자를 희화화 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방송사들이 내부적으로 마련한 제작가이드라인을 보면 양성평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 등을 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김민정 PD: 제작가이드라인이 있고, 그 안에 웬만한 좋은 내용은 다 있어요. 그런데 명문화 된 가이드라인 보다 더 중요한 건 PD들 한 명 한 명, 작가들 한 명 한 명이 이 이슈를 얼마나 예민하게 대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컷을 붙일 때마다 자막을 하나 넣을 때마다 이런 장면과 내용을 써도 되는지 일일이 (제작가이드라인을) 찾아보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자신의 가치관에 입각해 판단을 하는 건데, 결국 감수성, 즉, 이 말을 하면 누군가 또는 특정 집단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겠구나 포착하는 훈련이 예민하게 돼 있어야 하는 거죠.

이윤소 국장: 완전 공감하는 게, 가이드라인보다 중요한 건 배우겠다는 자세,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 좀 더 잘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자세인 것 같아요. 올해 <PD수첩>(MBC)에서 여성혐오 관련 아이템을 여러 차례 방송했는데, 많은 비판을 받았죠. <PD수첩>에서 가장 잘못한 부분은 한 번도 여성의 입장에 제대로 서 보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에요.

주어를 남성을 두고 ‘남성은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에만 초점을 맞췄기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거죠. 모든 게 마찬가지에요.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선 같은 위치에서 사안을 보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이 차별적인 방송을 만드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PD를 포함해 제작진에 대한 재교육 과정에 반(反)차별, 평등과 관련한 주제를 포함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더 이상 방송사에서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닌 만큼 외주사 등을 포함한 전체 제작진을 아우를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하고요. 너무 교과서 같아서 망설이게 되는 말이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생애주기에 맞춘 교육으로 올바른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게 답인 거죠.(웃음)

김민정 PD: 정말 공감해요. 민우회에서 와서 인권 감수성 교육을 해준다면 좋을 것 같네요.(웃음) 상대와 같은 입장에 서서 방송을 하는 건 항상 숙제인 것 같아요. 정답이나 표준화 된 어떤 안이 있는 게 아니라 고민하면서 답을 찾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도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대의 입장에 서서 보겠다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윤소 국장: 고민을 한다, 굉장히 중요한 말인데요. 사실 미디어에서 여성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깊게 할까 생각해보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일례로 국민연금에 대해 얘기를 했을 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요. 뉴스에서 늘 다뤄지는 주제들을 여성 입장에서 보면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답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그런 고민이 거의 없어요.

쉬운 것부터 하면 좋겠어요. 인터뷰 대상자를 고를 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여성을, 여성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는데 찾지 않아요. 그건 정말 노력의, 고민의 문제인데요. 그런 쉬운 부분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데, 여성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큰 줄기를 찾는 건 정말 먼 일 같아서 답답해요.

김민정 PD: 맞는 말이에요. 이윤소 국장이 언급한 국민연금을 보면 남녀 격차가 있죠. 이건 일을 할 때 임금격차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분이고요. 이런 부분을 연결해 얘기하면서 유리천장 등의 문제를 말할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하나의 사안을 마이크로한 시각에서 보면 사회의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데,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거대 담론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경제 살리기와 같은 국가의 큰 어젠다와 관련한 얘기들만 하게 되는 거죠. 이 과정에서 여성이나 노인, 장애인 등의 목소리는 감춰지게 되고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저마다 다양한 크기의 프로그램들로 미디어 생태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해요.

- 지금의 얘기들과 비슷하고 조금 다른 맥락의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올해 여성 혐오나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데 반해 정작 이 문제를 진지하게 소재로 다룬 방송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이윤소 국장: 늘 그랬죠. 혐오뿐 아니라 성 차별의 역사가 얼마나 긴가요. 하지만 미디어에선 늘 이슈가 되지 못한 주제인 만큼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게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김민정 PD: 제가 볼 때 여성 혐오가 방송의 소재로 안 다뤄진 것 같진 않아요. 다만 파편화 된 개별 사건에만 주목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게 아닐까요? 예를 들면, 의학전문대학원에서의 데이트 폭력 사태가 터지면 그 사건 하나만 부각이 되는 거죠. 또 <그것이 알고 싶다>(SBS)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사건 등을 소재로 다루곤 하는데, 이런 것들을 그저 하나의 사건이 아닌 큰 틀에서 보면 결국 같은 원인에서 출발한 얘기라는 걸 포착할 수 있죠. 이런 사건들을 엮어 총체적인 그림을 제시하는 그런 방향의 기획들이 미디어 전반에서 부족했던 것 같아요.

▲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김성헌

- 제작 과정에서 이런 아이템과 구성에 대한 고민이나 논의는 있나요?

김민정 PD: PD들 저마다의 성향이나 철학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여성 관련 사안들을 바라보고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이런 고민들이 ‘여성의 날’ 등과 같은 계기성 특집으로 가시화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어젠다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여성이 차별받고 혐오의 피해자가 되는 건 국경을 넘나드는 문제잖아요. 그렇기에 연대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계기성 특집으로 여성 관련 사안들을 다루는 모습을 벗어나면 정치‧경제 등의 이슈만이 아니라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시각을 확장해 글로벌하게 볼 수 있을 텐데요.

이윤소 국장: 얘기를 들으면서 그 많던 여성 PD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궁금증이 드네요.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시각이 보수화되는 측면도 있을 테고, 아마도 여성 PD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높은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PD를 시작하면서 갖는 이런 문제의식들이 지속되기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유리천장 문제 등과 같은 성 평등의 문제가 여성의, 소수자의 이슈를 어떻게 다루게 될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얘기로 이어지는 것 같네요.

이윤소 국장: 김민정 PD가 만든 프로그램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저출산의 문제는 여성의 희생으로만 해결되지 않고, 또 남성이 육아에 들어온다고 해도 완전히 해결될 수 없어요. 그런 맥락에서 성 차별 이슈는 여성이 피해자고 핍박받기 때문에 얘기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시작점을 만들기 위해서 얘기해야 해요.

김민정 PD: 성 차별이 사라지고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일수록 남자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충격적인 건 지구상 어떤 나라도 완전한 성 평등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남녀가 평등한 적이 없었어요. 스웨덴, 노르웨이 등도 한국보다 나을 뿐 아직 부족하다고 얘기하죠. 그럼에도 그들이 앞서갈 수 있는 건, 절반의 다른 존재들이 적이 아닌 함께 같이 가는 존재가 되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나아진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가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인 거죠.

이윤소 국장: 스스로 모든 걸 다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부장, 남성들도 내려놔야 할 부분이 있어요. 내려놨을 때 본인에게 오는 편안함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부담은 동시에 권력도 주기 때문에 내려놓기 힘든 것도 있을 테고요.

김민정 PD: 결국 그게 가능하려면 노동시간이 줄어야 하고 고용안정도 필요해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성 평등 이슈는 사회의 다양한 지점과 연결돼 있어요. 육아 불평등 아빠들도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에요. 육아에 참여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집으로 올 수 없는 거죠. 이 이슈는 노동과 고용 등 전반의 문제와 관련이 있고요. 이런 부분이 해결되지 않아 여성이 더 희생하는 구조가 되는 만큼, 이 문제를 개인의, 여성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결코 해결할 수 없어요.

- 다시 앞서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소라넷’ 관련 아이템을 취재 중(12월 26일 방송 예정)이라고 알려졌는데요. 취재만으로도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어요.

김민정 PD: 문제는 소라넷 운영진으로 추정되는 몇 명이 아니라 그들에 동의하고 동조하는 쪽에 서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죠. 이상한 한 두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속 조금은 비틀린 시각이 여성 혐오와 폭력이 이뤄지는 소라넷이라는 공간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용서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이런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누군가를 위한 유희가 아니라) 범죄라는 점을, 그로 인해 고통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을, 이건 여성 혐오도 아닌 비상식의 행동이라는 점을 잘 설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SBS 제작진들, 부탁합니다. (웃음)

이윤소 국장: 누군가를 괴물이라고 낙인을 찍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문제이고,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건드려주는 게 이런 프로그램들의 역할인 것 같아요. 역시나, 잘 부탁합니다. (웃음)

“여성 이슈,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해도 함께 고민하자”

- 여성 이슈는 흔히 여성에게 맡기는 분위기가 있죠. 언론사 안에서는 여성 PD와 여성 기자에게 여성 관련 사안들을 맡기는 경우가 많고, 성폭력 등의 논란이 발생할 때 결국 마지막 목소리를 내는 건 여성단체, 페미니스트들의 몫이 되는 경향이 짙은데요. 왜 이럴까요?

김민정 PD: 일단 여성에 맡기기 전에 여성들이 하겠다고 하니까?

이윤소 국장: 하겠다고 안 하면 영영 다뤄지지 않으니까? (웃음)

김민정 PD: 여성이 여성의 문제에 관심 갖는 게, 혹은 그런 주제들이 여성에 맡겨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더 섬세하게 볼 수 있는 지점들이 있을 테니까 장점도 있는 것 같고요. 그럼에도 여성 문제를 섬세하게 볼 수 있는 남성의 시각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있다면 신선할 것도 같아요.

- 여성들이 최후의 발화자가 되다 보면 여성 관련 이슈들이 결국 여성들만 고민하는 이슈로 남겨지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이윤소 국장: 예를 들어, 노조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처음엔 센터(중앙)에서 시작하다 결국 여성위원회로 오는 구조가 있어요. 이런 과정 속에 2차 가해가 나올까 두려워하며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걸 자주 목격하는데요. 하지만 중요한 건 누군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같이 얘기하며 고쳐나가야 하는 거고, 방안을 함께 찾는 게 해결책이란 사실이에요.

잘못 말할까봐 두려워서 입을 다물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여성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서 보고 말을 뱉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고 싶고요. 저 말을 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말들이 간혹 있는데, 그건 정말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제발 고민 좀 같이 하면 좋겠다, 무서워서, 말이 안 통할 것 같아서 안 하는 건 경계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김민정 PD: 공감해요. 그리고 질문과는 다른 얘기인데요. 미디어에서조차 어느 순간 여성이 영웅 혹은 대상화의 존재가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법고시 여풍(女風)이나 김연아 선수 등과 같은 여성들을 영웅시하며 보는 관점이 있는 반면, 눈요기로만 존재하는 여성들이 있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페미니즘이나 인권 감수성은 습관의 문제라는 생각이 거듭 들어요.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 비켜주는 게 습관이 되면 특별히 불편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는 것처럼 페미니즘이나 인권 감수성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윤소 국장: 불편해지길 두려워하지 말라는 얘길 하고 싶어요. 불편해서 생각하지 않고 불편해서 피하기 때문에 더 많은 담론을 가져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불편하면 어때요. 불편하지 않음 어떻게 해결하나요? 부끄럽지만 저는 여성단체에서 활동하고 평소 인권문제에 관심 많은데도 불구하고 중국집에서 음식을 지킬 때 ‘야 짱개(중국인 비하 표현) 시키자’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누가 지적하면 ‘아차’하며 ‘아, 내가 또 잘못 했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 지적할 때 받아들이는 건 불편한 일이죠. 하지만 불편해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데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민정 PD: 완전 공감해요. 비슷한 예로 장애인을 지칭할 때 (방송에서) 쓰지 말아야 할 언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그동안 미디어는 벙어리 정책, 절름발이 정책 등이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썼지만, 누군가가 왜 그런 말을 쓰냐고 지적했기 때문에 반성하고 고치고 있는 거죠. 여성 등 소수자의 문제를 어떻게 얘기하고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런 지적들과 고민들이 이어지고 정착되면 우리가 만든 방송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윤소 국장: 그게 바로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길이겠죠.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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