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신념보다는 불안한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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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책]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를 읽고

백남기 님의 사망원인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사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사망 원인을 따지는 것이 의미 없을 만큼 물대포로 돌아가신 게 명확해 보이지만,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사망 원인을 ‘병사’라고 적었다. 이후 서울대 의대생들과 동문들, 심지어 서울대병원 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윤성 교수까지도 백선하 교수의 견해를 비판하며 백남기 님의 사인의 ‘외인사’라고 이야기하는데도 백선하 교수는 흔들림 없이 ‘병사’라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포함한 외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만 본다면 자신의 양심을 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하면서도 올곧은 전문가를 떠올릴 법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정반대의 시선을 백선하 교수에게 보내고 있다. 국가 권력의 외압을 못 이긴, 혹은 알아서 권력에 복종하는 양심을 팔아버린 전문가라는 의심 말이다. 서울대병원이 백남기 님 보험 급여 청구에 ‘외상’으로 적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여러 가지 정황이 백선하 교수에 대한 의심의 합리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제 발로 감옥에 간 사람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자기가 왜 군대를 거부하는지에 대해 쓴 소견서를 모은 책이다. 이때 ‘양심’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좋은 마음” 혹은 “선량한 마음”이 아니다. 굳이 정의를 내려보자면,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는 개인의 가치 체계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서 ‘양심’ 또한 “좋은 마음”이 아니다. 헌법학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가 바로 ‘양심’이다.

▲ 전쟁없는세상 엮음,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포도밭출판사

양심의 목소리에 따르는 삶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영화 <밀정>의 시대에 살았다면 김우진(공유)이나 김장옥(박희순)보다는 이정출(송강호)에 가까웠을 것이다. 물론 이정출의 삶마저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지난 번에 읽은 책 ‘가만한 당신’의 가장 인상 깊었던 한 구절처럼 “시대가 가파를수록” 시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선택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이정출 또한 그 시대가 아니었다면 아주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백선하 교수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중에서 강철민과 이길준의 소견서를 다시 읽어본다. 그들은 군복무 중에 병역을 거부했다. 강철민은 이라크 전쟁 당시 이등병이었는데, 부당한 전쟁에 참가하는 군대의 구성원임을 받아들일 수 없어 병역을 거부했다. 스스로를 애국자로 여기고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면 군인이 아니라도 자원 입대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는 그였기에, 이라크 파병은 그에게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길준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의무경찰(의경)이었다. 징병제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그가 그나마 공동체를 위한 복무라고 생각해서 택한 것이 의무경찰이었다. 하지만 촛불집회에서 그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주장을 하는 시민들을 적으로 상정하고 진압하라는 명령에 그는 힘들어했고 흔들렸다.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 든 그 순간 아마도 그는 양심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양심은 흔들림 없는 바위와 같은 형태라기보다는, 부당한 일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수행할 수 없어 흔들리는 불안한 떨림 같은 거였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자기로 인해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겪을 고통 같은 것들이 떨림의 이유였다고 그들이 쓴 소견서는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보통 사람들의 양심이란 게 그리 거창하지 않은, 끊임없이 흔들릴 줄 아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부당한 일을 강요받았을 때, 차마 손이 떨리고 무서워서 할 수 없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백선하 교수의 당당함이 어째서인지 내게는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길준이나 강철민 같은 떨림을 느낄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라크 파병 당시, 혹은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에 강철민이나 이길준과 같은 생각을 했던 군인과 전의경들이 많았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행동하지 않았고, 강철민과 이길준은 행동을 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나는 궁금하다. 개인의 성격 차이인지, 아니면 그들은 부당함과 불합리함을 판단할 수는 있었지만, 행동을 단행할 만큼 진지하고 강력한 마음의 소리가 없었던 것인지. 그러한 마음의 소리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강철민과 이길준을 만날 수 있을지.

하지만 강철민과 이길준을 칭찬한다고 해서, 행동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할 일은 또 아니다. 저마다 양심의 목소리는 다 다르고, 만약 같은 양심의 목소리를 들었더라도, 모두가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기는 어렵다. 그 가파른 시대에도 김우진이나 김장옥은 다수가 아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백선하 교수에게 면죄부가 주어져서는 안 된다. 전문가나 지식인에게는 보통사람들보다 더 막중한 책임감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들이 세상에 끼칠 수 있는 잘못이 더 크기 때문이다.

백선하 교수가 왜 ‘병사’를 고집하고 있는지는 내가 알 길은 없다. 그가 자신의 양심을 대가를 바라고 권력에 팔아 넘겼다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력에는 늘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니까.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그가 권력의 외압이 없는 상황에서 의학적으로 잘못된 소견인지 알면서도 판단을 내렸고, 그것이 그의 진지하고도 강력한 내면의 소리와 충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흔들림 없는 양심과 권력이 만날 때 가장 큰 비극이 일어난다.

이용석: 병역거부자. 출판사 다닐 때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현재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효과적인 사회운동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러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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