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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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미션 임파서블? 파서블!] 안병진 경인방송 PD

홍대 펑크밴드 뿅망치의 기타리스트 도라이 군의 관심은 기타가 아니라 냉면이다. ‘어디 평양냉면이 더 맛있네’, ‘거기는 고명이 오바네’, ‘니가 육수를 아네 마네’ 등을 주제로 동료들과 설전을 벌이는 게 인생의 낙이다.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는 섭외지만, 먹을 만한 평양냉면이 없는 동네로는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곤조’를 부리다가 멤버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도라이 군은 ‘그래서 결론이 을지로냐, 강남이냐’로 강남 출신 밴드와 최후의 설전을 벌이다 ‘결론은 평양이다. 이 자식들아. 내가 평양 가서 먹고 오겠다’며 천하에 ‘똘끼’를 뽐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도라이 군은 기타 하나 달랑 메고 평양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데….

회사 그만두면 써야지 했던 소설 이야기이다. 2년째 여기까지 밖에 쓰지 못했다. 여름철이면 타임라인에 보이는 평양냉면에 대한 저마다의 부심이 대단한데, 그게 극에 달하면 거의 ‘내가 평양 살어. 이 자식들아’ 수준이다.

▲ ⓒPD저널

2014년 <아시아의 음악을 찾아서>라는 5부작 르포를 제작할 때였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우연히 북한 식당의 평양냉면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냉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산가족상봉 같은 감격의 순간이었다.

맛은 기대한 것과는 달랐지만, 그때 깨달은 바가 있다. 아시아의 음악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길에 갈 수 없는 곳은 단 한 곳, 바로 북한이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평양에서 냉면을 먹지 못해, 을지로네, 마포네, 강남이네 하며 웃기는 거짓 싸움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처럼 나는 평양에 가고 싶다. 한 그릇의 완벽한 냉면을 먹기 위해서.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식도락가의 여정을 온전히 소리로 담고 싶다. 라디오는 상상의 매체 아니던가.

맑은 호수에 섬처럼 우뚝한 면의 고독을
툭툭 끊어지지만 무뚝뚝하지 않은 츤데레 메밀의 살가움을
식초나 겨자 따위 허락하지 않는 슴슴한 육수의 고결한 성품을
후루룩 마셔도 촐랑대지 않는 식도락가의 느긋한 땀방울을.

캬! 소리로 담고 싶다. 소리로 담을 수 없는 것을. 갈 수 없는 곳의 냄새까지 담고 싶다. 미지로의 전파 여행, 라디오의 꿈은 그것이 아닌가. 우주까지 여행하는 지금 전파가 막힌 곳은 불행히도 가장 가까운 곳, 1995년까지 ‘택시요금 5만원’이었던 곳이다. Radio Is A Virus!

P.S. 도라이 군의 평양행 누들로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보지도 않고 가봤다고 영창으로 보낼까. 북과 내통한다고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 될까. 맛집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도라이 군의 뇌가 의심되니, 부검하겠다고 할까. 연재에 쓸 게 없어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죽자고 덤비지는 않겠지. 이 맛도 모르는 사람들아. 이 가을에 입맛 떨어지게 하는 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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