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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 in 타루트 ④] 에스토니아에서는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l승인2017.09.13 14: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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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이곳에 머무는 동안 큰 욕심 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주중에는 시내를 아침과 저녁에 시간 내 산책하고, 주말에는 만사 재껴 놓고 에스토니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려고 합니다. 작은 땅이긴 하지만 그래도 곳곳에 차이 나는 삶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숨어있을 테니 꼭 그러하라는 이곳 지인의 조언을 따라서입니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에는 발가(Valga)라는 남쪽 국경 도시를 가보았습니다. 타루트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데 있는 곳입니다. 5천 원 정도 내고 마치 춘천 가는 전철을 연상케 하는 전동열차를 타고 내려가면 됩니다. 라트비아와 국경을 접한 도시인데, 반대편 도시 이름은 발카(Valka)입니다. 90년대 초 두 나라가 독립할 때 하나였던 게 두 도시로 쪼개진 거죠. 작은 분단입니다.

▲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국경. 에스토니아쪽 도시 이름은 발가, 라트비아쪽 도시 이름은 발카. ⓒ전규찬 교수

그런데 발가 이 조그만 마을에 희한하게 한국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Korea Baar. 기분이 묘해집니다. 이 먼 낯선 땅 에스토니아에서 다시 ‘한국’을 만나게 되는군요. 사실 에스토니아에 고려인들이 하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답니다. 대체 몇 세대에 걸친 어떤 이력, 무슨 연유, 어떠한 궤적이 남긴 자취일까요? 한탄의 식민지 조선 땅에서 연해주로 망명했을 할아버지 1세, 1930년대 스탈린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피눈물 흘리며 이민한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태어난 어머니 2세가 떠오릅니다. 70년대 소련의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정착 정책에 따라 이곳에 온 노동자의 아들 3세, 그다음 4세까지 다음에 꼭 에스토니아가 내장한 고려인 이산의 이야기, 발트에 남은 한국인의 흔적을 언젠가 꼭 뒤져봐야 하겠습니다.

▲ ⓒ전규찬 교수

지금은 소용없는 검문소 넘어 라트비아 땅에 슬쩍 발을 들입니다. 두 도시 분명 느낌의 차이가 있는 데, 뭐라 꼬집어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무리하지 않기로 합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한번 휘 돌아보고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다음에 또 와 보기로 합니다. 아휴, 반나절 꽤 걸어 다녔더니 다리가 좀 아픕니다. 제 파트너가 투덜거립니다. 역으로 돌아가 쉬죠. 기차 시간은 한 시간 이상 남았습니다. 아, 승객들 읽으라고 도서들이 준비되어 있네요. 에스토니아 헌책 무더기에서 한 권의 러시아어로 된 소설이 탱자 시선에 들어옵니다. 붉은 빨치산들이 무장 열차를 습격하고 있나요? 기분이 더욱 야릇해집니다. 혁명의 역사는 에스토니아에서 혐오의 구태, 환멸의 과거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망각의 시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 혁명의 역사는 에스토니아에서 혐오의 구태, 환멸의 과거에 불과합니다.전규찬 교수

어떤 공간을 여행하는 것은 동시에 거슬러 시간을 여행하는 일입니다. 여행이 관광과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같은 것, 똑같은 곳을 관광객은 표피의 과거사로 가보며, 여행자는 심층의 역사물로 읽어갑니다. 그래서 관광에는 빨리빨리 코드가 통하지만, 여행에는 그런 서두름이 결코 허용되지 않죠. 관광객은 예정된 일정을 따라 과거를 돌아보지만, 여행자는 코스에서 벗어나 역사를 제 눈으로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하니 이제 좀 쉬었겠다, 한숨 잔 파트너를 깨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포로들이 지었다는 발가 기차 역사를 나와 구름다리로 올라가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붉은 벽돌 옛 건물들을 보게 되시죠? 노동하는 공장, 인구와 산물을 이송하는 철로. 역사가 시선을 따라 감각적으로 부활합니다. 상상은 온전히 여행자 탱자의 몫이죠.

▲ 발가역 전규찬 교수

아, 넘어 오길 참 잘 했네요. 어느 시인은 홀로 난 숲속 길을 미답지인 양 여기며 걷는 황홀을 멋지게 읊었지만, 탱자는 기찻길 너머의 한적한 동네 그 올망졸망 늘어선 집들 사이 작은 골목을 걸어도 무척 좋습니다. 사람들이 눈에 안 뜨이는 평온함이 좋지만, 자전거 탄 이 동네 어린 두 녀석이 줄을 지어 쓱 지나쳐도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물론 사람 사는 데, 여러 고통과 빈난이 배어있겠죠. 그렇다고 그것만 우울하게 주목하고, 그걸 거라 단정해 괜히 비장해지는 건 썩 좋은 버릇이 아닙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금물. 삶은 여러 면을 지닙니다. 탱자는 잠시 세상사 어둠과 무게를 잊고 속으로 감탄하며 저 명랑하고 행복한 세계를 즐깁니다. 오른쪽 웅크린 고양이, 왼편의 멋진 닭들 가족을 보십시오. 정말 간만의 따뜻한 풍경입니다.

▲ 전규찬 교수

조그만 러시아 정교회 늙은 신부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사람과의 마주침을 사건적으로 대하는 人事. 돌아가는 길, 용기 내 성당 마당 안으로 걸음해보았습니다. 나그네여, 어서 오시라. 환대. 데리다는 ‘유럽은 유럽인만을 위해’라는 극우의 파시즘이 회귀하는 상황에서, 낯선 타지를 찾은 방문자·이방인 타자를 친구로서 환대하는 걸 이 시대 최선의 정치이자 최소의 윤리로서 제안했었죠. 그걸 몸으로 체험합니다. 젊은 사제가 저희를 따뜻이 맞이합니다. 차 대접 기차시간 때문에 사양하는 우리에게, 내년 달력 돌돌 말아주며 그것도 모자라 예수와 성모 마리아 마주보는 예쁜 러시아 아이콘(Icon)을 선뜻 내미십니다. 오, 가난한 사제여, 감사합니다. 그대의 성물이 우리를 너무나 벅차게, 겸손하게 만듭니다.

전규찬 교수

나이 든 노 사제와 건물 뒤편으로 돌아 나오다 마주쳤습니다. 아까 인사 있었던 그 분이군요. 검은 복장, 긴 수염, 근엄한 얼굴의 그가 잠깐 기다리라 손짓합니다. 알 수 없는 말을 하시며 헐레벌떡 건물 안으로 들어가네요. 그리고는 신심 깊은 공동체 어떤 교인으로부터 받았을, 오늘 같은 휴일 입에 넣으면 참 달콤할 초콜릿 한 상자를 갖고 와 우리에게 턱하니 내줍니다. 멀리서 온 나그네여, 그대가 오늘 짧은 시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걸 귀하게 오래 간직하게나. 세계는 무한이 크나 잠깐의 순간으로도 알 수 있는 게 또한 세상이네. 사제여, 감사합니다. 이 깨달음의 마주침 고맙습니다. 포도주 한 병 사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탱자는 발가를 잠깐 만나보고 떠나옵니다. 참 좋은 하루 여행이었습니다.

 

언론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는 현재 연구를 위해 에스토니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영 방송의 정상화, 독립 PD의 처우 개선 등 언론계 뿌리 깊게 박힌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전 대표가 에스토니아에서 보내온 소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 글>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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