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맛깔난 제주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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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MBC 한글날 특집 드라마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
'우리들의 블루스'로 접한 제주어...도민 배우 참여로 생동감 높여

지난달 제주MBC가 5부작으로 방송한 제주어드라마 '나의 탐라'
지난달 제주MBC가 5부작으로 방송한 제주어드라마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

[PD저널=방연주 대중문화평론가] “혼저혼저(빨리빨리) 오라게(와야지)!”, “무사(왜) 맨날 늦엄시니(늦니)?”

인기리에 종영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나온 대사다. 해녀 영옥(한지민)이 물질에 늦게 나타나자, 나이 지긋한 해녀들이 야단치는 장면이다. 제주 방언에 대한 표준어 자막을 입히는가 하면, 남녀 구별 없이 어르신을 부르는 ‘삼춘(삼촌)’이라는 호칭도 심심찮게 나왔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특정 캐릭터만 제주어를 구사했다면 모든 캐릭터가 ‘제주어’로 연기하는 드라마도 있다. 지난달 제주MBC가 한글날을 맞이해 선보인 제주어 드라마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5부작)이다.

드라마 제목만 보면 낯설기 그지없다. ‘가문잔치’는 혼례를 치르기 전날 친척들과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를 뜻한다. 제주만의 독특한 혼례문화다. 결혼 준비를 위해 돗(돼지)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고, 천막을 친다. 이러한 혼인 관행은 195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나, 결혼식장에서 혼례를 치르는 신식 혼례가 자리를 잡으면서 가문잔치가 당일 피로연으로 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에서도 신부 고은주네 가족이 결혼식 전 가문잔치를 준비하는 과정을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드라마 줄거리는 클리셰에 충실하다. 세 남매 중 막내딸이자 신부인 고은주와 신랑 현명한이 결혼을 앞둔 가운데 순탄할 것만 같았던 가문잔치 준비와 결혼식이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이야기. 극적 갈등도 익숙한 구성이다. 과거 중학교 여동창이었다가 사돈지간으로 만나 빚어지는 갈등, 세 남매간 얽히고설킨 오해 끝에 터져버린 불화, 막내딸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이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벗겨지듯 드러난다. 급기야 사돈이 “콩가루 집안”이라며 결혼 무효를 선언하기에 이르지만, 부모와 자식, 남매, 사돈 간 용서와 화해를 거듭하며 서사를 매듭짓는다. 드라마의 개연성은 다소 아쉽지만, 25분 안팎의 미드폼 콘텐츠이기에 이야기의 진행 속도가 빠르다. 

제주MBC가 5부작으로 방송한 제주어드라마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제주MBC가 5부작으로 방송한 제주어드라마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 유튜브 영상 갈무리.

드라마 면면을 살펴보면 제주의 지역성 짙은 혼례문화를 엿볼 수 있다. 신랑의 절개를 뜻하는 소나무와 신부의 지조를 뜻하는 대나뭇잎을 잘라서 집 앞에 ‘솔문’을 만들어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모습,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한껏 잔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제주식 윷놀이인 ‘넉동베기’, 잔치 음식을 손님들에게 나눠주는 ‘도감’, 신부 친구들이 신랑 친구들에게 손수 만든 ‘손수건 팔기’ 등의 문화는 이색적이다. 동네 사람들이 잔칫집에 모여 너도나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손을 보태는 미풍양속이 정겹다. 제주의 오랜 혼례문화를 주요 소재로 내세운 동시에 현대의 결혼 풍속, 연애 및 결혼관을 조연급 인물의 대사로 빗대어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도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의 백미는 제주어로 된 시트콤을 보는 듯한 재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제주어 드라마’라고 전면에 내세운 만큼 표준어 자막을 봐야 인물들의 대사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잔칫날의 정서만큼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왁자지껄 가문잔치의 풍경은 제주어가 일상인 도민 배우들의 참여로 한껏 생동감을 살렸다. 도민 배우는 제주MBC가 도내 방송사 최초로 실시한 공개 모집을 통해 선발됐다. 프롤로그 격으로 공개된 영상 <도민 배우 공개 오디션>에 따르면 180여 명이 지원했고, 40여 명이 캐스팅됐다. 민요 공연을 다니는 주부, 비행기 삯이 많이 나와서 시니어 모델을 포기했다는 중년 여성, 생활에 파묻혀 배우의 길을 포기했다는 지원자까지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은 ‘제주’라는 공간을 육지 사람들이 향하는 유명 관광지가 아닌 섬사람의 터전으로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삶의 터전에서 쓰이는 제주어, 공동체(수눌음)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성을 보여준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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