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임경호 기자] 방송사 노동자들이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은 근로조건에 해당해 정당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MBC 구성원이 2012년 ‘공정방송 사수’를 내걸고 170일간 벌인 파업의 정당성을 법원이 10년 만에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업무방해, 재물손괴,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정보통신망침해등) 혐의로 기소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과 강지웅, 장재훈, 김민식 등 집행부의 상고심에서 재물손괴를 제외한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한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파업의 목적이 정당한지 및 그 과정에서의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 행위가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에 해당하는지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출입문 봉쇄 행위가 정당한지 △피고인 2명이 부정한 목적으로 전산회계정보시스템에 보관되어 있던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를 쟁점으로 봤다.
그 결과 “파업 및 출입문 봉쇄로 인한 업무방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정보통신망침해 등)의 공소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한 것에는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원심 재판부는 파업으로 인한 업무방해와 관련해 “이 사건 파업은 갑(사측)이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하기 부족하므로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인 위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출입문 봉쇄로 인한 업무방해에 대해서도 “이 부분 행위는 정당한 이 사건 파업에 수반되는 직장점거로서의 정당성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는 “피고인 2명이 공표한 대표이사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부정한 수단 또는 방법으로 취득된 것이라거나 이들이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이를 누설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특히 대법원은 방송사의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 공정방송 실현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관한 법적 규율은 언론의 자유 및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이자 권리를 방송의 영역에서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단순히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방송을 실현할 의무 또한 부여한 것이라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MBC 노사 양측은 모두 방송의 자유의 주체이자 공정방송이라는 규범의 의무자라는 지위를 함께 향유하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공정방송의 의무는 방송법 등 관계법규 및 MBC 단체협약 등에 의하여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실제 방송 제작 등에 있어서 공정방송 의무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여부 등은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권력, 그 권력과 내통해 공영방송을 팔아넘긴 적폐 경영진에 맞서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2012년 170일 파업’이 오늘 사법부로부터 최종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며 “오늘 사법부의 최종 판결은 민주주의 본질적 가치인 언론 자유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파업 당시 해고 당했던 최승호 전 MBC 사장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2012년 170일 간의 파업을 한 뒤 결국 빈손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지만 10년 5개월 만에 그 파업의 성과를 대법원 판결로 우리 사회에 새길 수 있게 됐다”며 “윤석열 정권은 이명박 정권 뺨치게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고 있는데, 이러한 탄압에 대해 방송인들이 앞으로 파업 등을 통해 저항하는 것에 대해 법원이 최종적으로 합법임을 선언한 의미도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