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한 달, 어느 PD의 고백 ③] 다시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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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한 달, 어느 PD의 고백 ③] 조윤미 MBC PD수첩팀 PD의 고백

[PD저널=조윤미 MBC PD수첩팀 PD] “여러분들에게 아주 실망했습니다. 이대로는 방송 불가에요”

2017년 2월, <탄핵, 불붙은 여론전쟁> 편을 시사하면서 국장은 크게 화를 냈다. 화면에는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태극기봉으로 찌르거나 돈을 받고 집회에 참석하는 문제 등이 담겨 있었다. 국장은 시사 내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태극기 집회의 문제점을 짚으려면, 같은 분량으로 촛불 집회의 문제점을 짚으라”. “이대로는 방송 불가” 라는 말을 남긴 채 나가버렸다.

시사 때 쉽지는 않겠다 싶었지만 예상보다 더 심한 질책에 당혹스러웠다. 어쨌든 선택을 해야 했다. 불방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수정을 할 것인가? 나는 그 때 취재한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태극기봉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장면을 삭제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악성 소문 중에는 근거가 희박한 가짜뉴스도 있다는 내용을 첨가했다.

방송을 낸 후 한참 동안 속상했다. ‘불방보다는 낫겠지’ 라며 내 손으로 수정을 했지만 결국 칼끝이 무딘 방송이 되어버렸다. 교묘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전에는 노골적으로 아이템을 검열했다면, 그 이후엔 기계적 중립을 강조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방송을 만들어버렸다.

▲ 지난 7월 제작중단에 돌입한 MBC PD수첩 PD들이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조윤미 PD 제공

사실 아이템을 검열할 때마다 징계를 각오하고 싸우고 싶을 때가 많았다. 세월호, 위안부, 국정원, 백남기, 사드는 금기어였다. 시사프로그램인데 시사아이템을 못하게 했다. 자괴감이 왜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경영진은 ‘MBC의 미래’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우리 자리를 말 잘 듣는 대체 인력으로 채울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들렸고, 그렇게 되면 영영 예전의 PD수첩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 현 경영진은 기자조직을 그렇게 망가뜨렸고, 뉴스데스크는 처참하게 변해갔다. 우리가 부딪힐수록 PD조직까지 그렇게 망가뜨릴 빌미를 주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싸우더라도 수위 조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검열에 익숙해 질 수만도 없었다. 어떻게든 열심히 하는 게 안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며 아득바득 만들어왔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간간이 터지는 특종도 별 화제가 되지 않았다. 매체들은 PD수첩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도식적 구도의 기사들을 쏟아냈고, 광장에선 우리에게 욕을 했다.

PD수첩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야 세월호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유가족들은 수년간 외면했던 세월호를 이제야 찍으러 왔냐며 현장을 찾아간 최원준, 장호기 두 PD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수년간 저질러왔던 MBC의 악행을 두 PD가 대신해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위안부와 소녀상 문제를 취재하다 그만둬야 하는 일을 반복했던 조진영 PD는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비제작부서에 쫓겨나 있다 5년 만에 겨우 제작을 할 수 있게 된 강효임 PD는 사대강 방송을 만들며 “죽은 권력 말고 살아있는 권력 좀 물어뜯어라”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했다. 아이템 불허 결정을 들을 때마다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어느 샌가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해고되고 비제작부서로 전출된 동료들이 있는데, 제작 현장에서 느끼는 자괴감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무렵, 스케이트장으로 쫓겨 갔다가 대법원 판결을 받고서야 3년 만에 다시 제작부서로 돌아온 이영백 PD는 우리에게 ‘매맞는 아내’ 같다고 했다. 우리에게 폭력이 일상화 되어 있었지만, 아프다는 말조차 대놓고 하지 못하는 모습이 딱 그래보였다는 것이다. 나와 이영백 PD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조합과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아이템을 할 수 없다는 아이템 불허 결정 이후, 우리에게 가해진 학대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난 8월 3일부로 제작중단에 돌입한 MBC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경제매거진M>, <생방송 오늘 아침>, <생방송 오늘 저녁> 등이 속한 시사제작국 PD·기자들이 3일 오전 서울 상암MBC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장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PD저널

사실 두려웠다. 파업은 다 같이 일손을 놓는 것이지만, 다들 일하는데 우리만 손을 놓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회사가 해고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 근거 없이도 해고하고, 만화를 그렸다고도 해고를 하는 회사였다. 취업 규칙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결국 제작 중단을 결정했다. 경영진의 일상적인 모욕과 학대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제발, 제대로 된 방송 좀 만들고 싶었다.

PD수첩 PD 10명이 소박하게 피케팅을 시작했지만 한 달도 안 되어 로비가 가득 찼다. 카메라기자, 취재기자, 아나운서, 라디오PD, 기술 경영 부문 등 저마다의 아픔과 열망을 담은 피켓들이 늘어날 때마다 울컥했다. 아픔을 온 몸으로 겪은 사원들도 많았지만, 동료의 아픔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함께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파업 한 달, 지금은 아픔을 치유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새로운 MBC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나는 벌써부터 벅차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내 이름을 걸고 자랑스럽게 ‘내가 취재했다’고 밝히고 싶은 방송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방송을 망가뜨리고 노동법을 어겨가며 우리에게 재갈을 물린 당사자들에게 하루빨리 책임을 물어 그 날을 앞당길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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