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와 숫자들의 음악을 간단히 요약하면 ‘가요’다. 여기서 ‘가요’라는 말은 ‘K-Pop’이라는 말로 번역 가능한 가요라기보다는 ‘팝송’과 대비되는 의미로서의 ‘가요’다. 다시 말해 ‘한류’ 내지는 ‘국제화’를 꿈꾸는 요즘의 가요가 아니라 ‘고유한 지역적 특색이 강한 대중음악’으로서의 가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기로 특정하자면 1980년대의 가요다. 포크와 캠퍼스 록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들어왔던, 혹은 그 전통의 색채가 뚜렷이 남아 있던 시기의 가요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반에서 단숨에 귀에 들어오는 곡들, 그러니까 ‘말해주세요’나 ‘석별의 춤’ 같은 곡들이 연상시키는 것은 심야방송, 이를테면 〈별이 빛나는 밤에〉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기억이다(〈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아니다!). 어떤 날의 음악보다는 덜 예민하지만 소방차나 나미의 노래들보다는 풋풋한 냄새가 나던 곡들의 기억.
9와 숫자들의 음악은 바로 그런 ‘중간적’인 기억을 일깨운다. 그런 면에서라면 브로콜리 너마저와 비교할 수도 있을 테지만, 9와 숫자들은 보다 더 1980년대의 정서에 충실하다. “칼리지부기”, “삼청동에서”, “이것이 사랑이라면” 등의 곡들은 멜로디만 놓고 따진다면 히트 가요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림자궁전에서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9와 숫자들 역시 과거를 소환하는데 있어 거리낌이 없지만, 여기에서 노스탤지어의 기운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1980년대의 ‘가요’가 단순한 재료로 취급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과거에 대한 모종의 ‘부담’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디와 메인스트림을 막론하고, 1980년대의 가요를 많건 적건 다소간 ‘의식적으로’ 거부했던 세대 대신 그것을 ‘유희’와 ‘창작’의 대상으로 다룰 자세가 갖춰진 세대가 창작활동의 중심에 접근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어떤 전면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이라 강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작지만 의미 있는 징표로서는 충분해 보인다. 1980년대에 대한 가상현실 내지 ‘증강현실’처럼 보이는 소녀시대의 신곡과 비교해 보아도 그렇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