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숫자들, 혹은 1980년대를 ‘써먹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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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음악한담]

▲ 최민우 대중문화웹진 'weiv' 편집장
최근 자주 듣고 있는 국내 음반 중 하나는 ‘9와 숫자들’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밴드가 낸 데뷔작이다. 밴드 이름은 낯설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그리 낯선 것도 아니며, 인디 음악의 팬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9와 숫자들은 록 밴드 그림자궁전의 리더였고 흐른과 로로스 등의 뮤지션이 소속되어 있는 인디 레이블 튠테이블 무브먼트를 운영하고 있는 뮤지션 송재경의 프로젝트 밴드다. 그림자궁전은 1970년대 한국 록의 잔향이 깊게 울려 퍼지는 독특한 무드의 싸이키델릭 록 음악을 만들었던 밴드로, 이들의 데뷔작은 발표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강렬한 관심을 끈 바 있다(그러나 밴드는 한 장의 음반을 내고 활동을 중단했다). 

9와 숫자들의 음악을 간단히 요약하면 ‘가요’다. 여기서 ‘가요’라는 말은 ‘K-Pop’이라는 말로 번역 가능한 가요라기보다는 ‘팝송’과 대비되는 의미로서의 ‘가요’다. 다시 말해 ‘한류’ 내지는 ‘국제화’를 꿈꾸는 요즘의 가요가 아니라 ‘고유한 지역적 특색이 강한 대중음악’으로서의 가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기로 특정하자면 1980년대의 가요다. 포크와 캠퍼스 록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들어왔던, 혹은 그 전통의 색채가 뚜렷이 남아 있던 시기의 가요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반에서 단숨에 귀에 들어오는 곡들, 그러니까 ‘말해주세요’나 ‘석별의 춤’ 같은 곡들이 연상시키는 것은 심야방송, 이를테면 〈별이 빛나는 밤에〉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기억이다(〈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아니다!). 어떤 날의 음악보다는 덜 예민하지만 소방차나 나미의 노래들보다는 풋풋한 냄새가 나던 곡들의 기억.

9와 숫자들의 음악은 바로 그런 ‘중간적’인 기억을 일깨운다. 그런 면에서라면 브로콜리 너마저와 비교할 수도 있을 테지만, 9와 숫자들은 보다 더 1980년대의 정서에 충실하다. “칼리지부기”, “삼청동에서”, “이것이 사랑이라면” 등의 곡들은 멜로디만 놓고 따진다면 히트 가요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 9와 숫자들 1집
물론 이게 정말 ‘당시’의 노래였다면, 그리고 그걸 그대로 재현하려 했다면, 아마도 윈드차임이 시도 때도 없이 짤랑거렸을 것이고 에코를 잔뜩 먹인 드럼이 모노톤의 신서사이저와 함께 펑퍼짐하게 울려야 마땅했을 것이다. 대신 이 곡들의 멜로디를 떠받치는 것은 빈티지한 성향의 전자음, 때로는 1980년대의 ‘팝송’을 연상시키는 전자음이다. 이것이 ‘요즘’의 음악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 ‘가요’와 ‘팝송’의 경계를 무람없이 넘나드는 그 감각 때문이다. 이 음반이 흥미로운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그림자궁전에서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9와 숫자들 역시 과거를 소환하는데 있어 거리낌이 없지만, 여기에서 노스탤지어의 기운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1980년대의 ‘가요’가 단순한 재료로 취급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과거에 대한 모종의 ‘부담’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디와 메인스트림을 막론하고, 1980년대의 가요를 많건 적건 다소간 ‘의식적으로’ 거부했던 세대 대신 그것을 ‘유희’와 ‘창작’의 대상으로 다룰 자세가 갖춰진 세대가 창작활동의 중심에 접근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어떤 전면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이라 강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작지만 의미 있는 징표로서는 충분해 보인다. 1980년대에 대한 가상현실 내지 ‘증강현실’처럼 보이는 소녀시대의 신곡과 비교해 보아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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