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 기자가 꿈꾼 '정의로운 세상', 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 앞장선 이용마 기자, 23일 'MBC 마지막 출근'
최승호 사장 "'정의로운 세상 위해 언론장악에 맞서 싸워"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상암 MBC에서 열렸다. ⓒ MBC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상암 MBC에서 열렸다. ⓒ MBC

[PD저널=이미나 기자] 이용마 MBC 기자가 23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그의 마지막 책 제목이기도 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가 적힌 현수막이 23일 MBC 사옥 앞 광장에 만장처럼 내걸린 가운데, 그의 마지막 출근길에는 500여 명의 추도객이 함께 했다.

영결식에 모인 이들은 '타협하거나 돌아설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최승호 MBC 사장은 "기자로서 이용마의 화두는 정의로운 세상이었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언론사 내외서 자행되는 외압, 권력과의 유착이 없어져야 했다"며 "그래서 이용마의 또 다른 화두는 언론개혁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용마 기자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 홍보국장을 맡은 2011년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였다. 당시 MBC본부는 2010년 39일 간의 파업 여파로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던 노동조합 집행부의 길을 이용마 기자는 선선히 받아들였다.

'자신의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사랑했던 MBC와 세상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동료들에게 이용마 기자는 뛰어난 기자이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언론인이었다.  

이용마 기자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굵직한 특종을 쏟아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상속 의혹 기사를 꾸준히 쓰며 지금은 범용어가 된 '삼성공화국'이라는 단어를 언론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 그다. 삼성그룹의 항의를 받던 끝에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던 일화는 그의 저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에도 잘 나와 있다.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상암 MBC에서 열렸다. ⓒ MBC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상암 MBC에서 열렸다. ⓒ MBC

"용마 형이 사회부 막내 시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감출 게 많아 기자를 무서워하지만, 시민들은 (감출 게 없으니 기자를) 무서워할 게 없다. 그런데 기자들은 힘 있는 사람 앞에선 조용하고 시민들은 가르치려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기자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대신해 힘 있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질문하고 답을 받아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형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김효엽 MBC 기자)

2012년 MBC본부의 170일 파업은 한국 언론 역사상 최장기 파업이자, 가장 잔혹한 결과를 낳았던 파업으로 기억된다.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를 외치며 선봉에 선 그는 항상 넉넉한 웃음으로 동료를 챙기며 파업을 이끌었다. 동시에 출입기자들에게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파업의 정당성과 경영진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 결과 이용마 기자는 '사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당시 집행부 가운데 가장 먼저 해고됐다. 100명이 넘는 구성원이 그의 뒤를 이어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았다. 이후 파업 참가자들은 현업에서 배제돼 오랫동안 '유령 부서'를 떠돌았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량해고와 징계가 있었다. 이용마 기자 또한 해고의 칼날에 희생되고 말았다"며 "지금도 그 시절 언론탄압과 무자비한 징계를 생각하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렵다. 특히 이용마 기자의 병마가 왜 왔는지 생각하면 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고 애통해 했다.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상암 MBC에서 열렸다. ⓒ MBC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상암 MBC에서 열렸다. ⓒ MBC

해직기자로 연구와 저술 활동, 강의 등을 하며 지내오던 2016년 그에게 복막암의 일종인 '복막 중피종'이 찾아왔다. 이용마 기자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현실은 더욱 처참했다. 중피종은 일단 대부분의 의사들이 들어보지도 못했을 만큼 희귀한 암이다. … 워낙 희귀한 암이라 치료법은커녕 사례도 별로 없다. 우리나라 전체에 10명이나 될까."

하지만 이용마 기자는 이 또한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길을 택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그의 열정도 식지 않았다. 결혼 후 뒤늦게 얻은 쌍둥이 아들을 위한 책을 유언처럼 써내려가면서도, 그는 촛불집회에 나와 언론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공정방송도 이룰 수 없다며 공영방송 사장 선출에 국민대리인단제도를 도입하는 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이 때다.

2017년 12월, "하루도 오늘이 올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복직의 날이 찾아왔다. 그의 귀환을 반기는 노란 손수건의 물결 가운데서도 이용마 기자는 동료와 선후배에게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그가 2012년 파업 당시 처음 만들었던 구호대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했다.

"이상이 없는 현실은 마치 미래가 없는 현재와 같다. 나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끊임없이 부딪히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언제나 현재보다 미래를 선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중)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상암 MBC에서 열렸다. ⓒ MBC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상암 MBC에서 열렸다. ⓒ MBC

이제 미완으로 남은 그의 꿈은 이낙연 총리의 추모글처럼 "산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의 별세 소식에 "이용마 기자의 치열했던 삶과 정신을 기억하겠다"며 "정부는 이 기자가 추구했던 언론의 자유가 우리 사회의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 되고 상식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영결식에서 김중배 전 MBC 사장은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에서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로, 마침내 '세상은 이제 바뀌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효엽 기자 역시 "우리가 모두 형에게 빚을 졌다 여겼지만, 형의 꿈을 조금씩 나눠받게 된 것 같다"며 "우리도 피하지 않고, 통 크게 웃으며 손잡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유족 대표로 단상에 선 부인 김수영 씨는 "이용마 기자는 몸 안에 암 세포를 함께 가지고 (하늘로) 떠났다"며 "세상에 있는 암들도 사실 함께 같이 가야 하지만, 잘 다스리면 면역력을 기를 수도 있다. 그게 이용마 기자가 남기고 간 메시지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