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 ‘미디어정글’, 낡은 규제 다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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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 ‘미디어정글’, 낡은 규제 다 푼다
방통위 2020년 업무 추진 계획 발표, 하반기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타이틀 스폰서십 허용   
"일부 규제 완화로 미디어산업 위기 극복 못해...근본적 고민 부재" 지적도
  • 이미나 기자
  • 승인 2020.01.16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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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14일 사전 브리핑에서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 업부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14일 사전 브리핑에서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 업부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

[PD저널=이미나 기자] 글로벌 사업자의 국내 진출 등으로 미디어산업의 생존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광고‧협찬 제도와 상호겸영 제한 등 다방면에서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 규제 해소를 통해 미디어산업의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이지만 방송의 상업성 심화, 공익성 훼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방통위는 “방송통신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디어의 신뢰성을 확보하며 AI시대 역기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며 올해 ‘활력 있는 방송통신, 신뢰받는 미디어’를 비전으로 설정해 미래지향적 방송 규제 개편과 엄격한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등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16일 밝혔다. 

방통위는 올해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을 붙이는 이른바 '타이틀 스폰서십'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다. 

'타이틀 스폰서십'은 앞서 방통위가 한 차례 추진했다가 철회한 바 있다. 방통위는 2015년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제목협찬'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나, 방송의 상업성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시민사회는 방송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방송 편성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국장은 "제목협찬'을 도입한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협찬주에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결국은 방송에 종속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의미"라며 "프로그램 전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제목에 협찬주명을 허용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는 권역별 상호겸영규제도 해소를 검토한다.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지상파의 경우 한 방송사가 다른 방송사의 지분을 7% 이내에서 소유할 수 있으며, 방송사 간 상호 지분을 소유할 경우 5% 이내에서만 가능하다.

권역별 상호겸영 규제를 완화하면 지역민방 간 인수 합병이 가능해진다. 지역민방 통폐합을 통한 광역화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14일 있었던 업무계획 사전 브리핑에서 "OTT와 IPTV 등 새롭게 도입되는 서비스들은 이미 특정 권역에 한정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런 규제는 형평성에 맞지 않아 규제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양한열 방통위 방송정책국장 역시 "이 규제는 과거 중앙에 있는 방송사가 지역 민방을 장악하거나, 지역방송 간 지배력이 과도해질 가능성을 제한한 것"이라며 "만약 특정 방송사가 M&A를 시도하거나 지분을 늘릴 경우 방통위의 별도 심사를 받아야 하므로 전체적인 시장상황을 검토해 행위 규제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방통위가 중장기 제도 개선 방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민영방송 규제 완화'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결국 지원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덩치를 키우면 생존할 수 있는 곳은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 같은데 여러 보완책이 필요해 보인다"며 "대주주의 과도한 영향력 제어 방안·지역 다양성의 약화 등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지역방송 종사자들도 권역별 겸영규제 완화 추진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양병운 지역민영방송노조협의회 정책실장은 "산업적 관점에선 광역화를 통해 경영수지 개선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방송의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며 "광역권이라 해도 엄연히 정체성이 다르고, 문화나 지역성을 동일시할 수 없다. 특히 지역방송 노동자들의 노동권이나, 실제 방송을 보는 지역민들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제약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방통위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하반기에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방송통신 융합 환경에 대응해 새로운 규제체계를 중장기적으로 마련하고, 해외사업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내사업자와 동등하게 조사·점검해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방통위는 △ 엄격한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 선임 시 국민 참여 보장 및 절차적 투명성 제고 방안 마련 △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인권보장을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 제정 △ 민간·자율 팩트체크 활성화 지원 등도 올해 중점 추진한다. 

방통위 업무계획을 두고 몇몇 규제 해소로 침체된 미디어산업의 활력을 제고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데다 방송의 공공성·공익성 침해 우려에 대한 보완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정기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일부 규제 완화를 통해 규제 혁신을 하겠다는 게 핵심인데, 문제는 지금의 미디어 산업이 몇 가지 규제 완화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 통신재벌의 영향력이 월등히 높아지고, 실질적으로 미디어 산업이 자본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상파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 기업들이 다양성과 공공성을 실현할 토대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 사업자들의 공적 책무를 앞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등에 대해 좀 더 시급하게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며 "(방통위가 내세운 과제인) '미래 지향적 규제개편'은 중장기적 과제가 아니라 시급성을 요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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