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못 찍을 장면 없다"... AI 방송 시대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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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케없어도 AI가 프랑스 배경 영상 제작
AI가 카메라 촬영 대신하고 자막도 달아줘
"구현 불가능하던 연출 가능해져"..글로벌 OTT 경쟁에 필수 도구

생성형 AI 쳇 GPT를 활용해 만든 기사 관련 이미지 
생성형 AI 쳇 GPT를 활용해 만든 기사 관련 이미지 

[PD저널 =엄재희 기자] "방송사 차원에서 불가능했던 연출을 이제 AI를 통해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EBS AI 단편극장 <이비스의 사람공부>를 연출한 민성원 EBS PD는 AI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7일 공개된 이 단편영상은 AI 로봇이 프랑스에서 나폴레옹과 인간의 가치를 성찰하는 등 시공간을 초월한 인물들을 만나는 구성인데, 제작에 투입된 인원은 민 PD 단 한 명이다. AI가 없었다면 나폴레옹을 닮은 배우를 섭외하고 프랑스에서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빠듯한 EBS 예산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연출이다.

그러나 AI '미드저니'가 영상을 생성하고, AI '일레븐랩스'가 더빙하면 가능해진다. 민 PD는 "제작 비용은 10분의 1로 줄었다"며 "특정 분야 전문가가 AI를 활용해 더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AI가 방송 제작 현장에서 활용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AI 영상 생성 기술은 본격적인 활용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기획부터 편집까지 제작 전 과정에 AI 기술이 활용되는 추세다. 단순 반복 업무는 자동화하고, 제작자는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 제작 효율성과 완성도를 함께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BS와 MBC 등 방송사들은 AI 기술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영상 생성', 방송 제작의 일상으로

AI가 이미지와 영상, 음성을 자동으로 제작해주는 AI 영상 생성 기술은 방송 제작 현장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MBC <서프라이즈>는 지난 22일 방송에서 생성형 AI로 제작한 '프로젝트 AI' 에피소드를 방영했다. 1911년 프랑스 파리 르부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을 재연했는데, 20세기 프랑스 경찰 의상을 입은 형사부터 다양한 작품이 걸려 있는 박물관 내부 모습까지 모두 AI로 구현해냈다. 별도 촬영 없이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클링' '일레븐랩스' 등을 활용했다.

MBC는 AI 전략자회사인 '도스트일레븐'을 설립하고 AI 영상 생성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중이다. '도스트일레븐'은 최근 화제를 모았던 김구 선생과 BTS가 교차 등장하는 '대선 출구조사 카운트 다운 영상'과 <PD수첩>에서 방영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는 가상의 장면을 AI로 만들었다. 제작비용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구해줘 홈즈> <심야괴담회> <선을 넘는 클래스> 등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KBS PD들도 생성형 AI 활용에 나서고 있다. KBS 제주방송총국이 지난 6일 방영한 <영웅의 귀환, 레클리스>가 대표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탄약과 부상병을 나르며 활약한 제주마 '레클리스'를 AI로 복원한 것이다. 특히, KBS 아카이브에 저장된 과거 제주마 사진을 생성형 AI에 학습시켜 고증과 완성도를 높였다. 

SBS는 <궁금한 이야기 Y>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에서 생성형 AI를 활용 중이고, CJENM도 모델부터 영상, 음원까지 모두 AI로 제작되는 광고를 제작하는가 하면 AI 단편 영화 <M호텔>을 만들어 지난해 12월 극장에 개봉하기도 했다.

KBS 제주방송총국이 지난 6일 방영한 '영웅의 귀환, 레클리스'
KBS 제주방송총국이 지난 6일 방영한 '영웅의 귀환, 레클리스'

방송 제작 전반으로 확산되는 'AI 솔루션'

AI는 영상 생성에서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촬영부터 편집, 자막 작성 등 제작 전 과정에서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는 'AI 솔루션'들이 활용되고 있다.

KBS는 최근 유튜브 예능 <이웃집 남편들>에 AI 촬영 기술을 전면 도입했다. 5~6명의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포맷인데, AI 카메라가 각 출연자를 자동으로 인식해 해당 인물만 화면에 담는 원샷을 구성한다. 원격으로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줌인·아웃할 수 있는 피티지 카메라에 AI를 탑재해 인물의 동선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며 카메라 감독이 구도를 잡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고 있다. 출연자 수에 맞춰 카메라 감독을 배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편스토랑>처럼 출연자가 많은 관찰 예능에서도 활용되며 제작 효율성을 높인다.

'도스트일레븐'이 개발한 AI '비디오스쿠버'도 제작 현장에서 실제 활용되고 있다.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AI 툴에 업로드하면, AI가 등장 인물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발언을 텍스트로 전환한다. 발언자를 시간대별로 구분해 자막을 자동 생성하고, 100여 개의 언어로 바로 번역할 수도 있다.

MBC가 자체 개발한 AI 데이터 검색 시스템 'AI뎀스'는 AI가 영상 속 인물과 장소를 분석하고 이해한 뒤, 사용자가 입력한 자연어 검색어에 맞는 영상을 찾아준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계산하는 장면을 찾아달라"고 검색하면, AI가 MBC 아카이브에서 해당 장면을 포함하는 영상을 찾아주는 것이다. 기존에는 사람 이름이나 장소명 등 사전에 입력된 키워드에 의존해야 했는데, 이제는 입력 오류로 누락된 영상까지도 찾아낼 수 있게 됐다.

MBC는 AI가 관제 CCTV에서 이상 현상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전송하는 기술도 활용 중이다. 전국 고속도로 등 주요 지점을 비추는 관제 CCTV에서 연기 발생 같은 평소와 다른 장면이 포착되면 AI가 해당 부분만 편집해 보도국으로 바로 전송한다. 사건사고 발생 시 초기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어 보도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EBS가 27일 제작 전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AI 단편 영상 네 편을 'AI 단편 극장'을 방영했다.
EBS가 27일 제작 전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AI 단편 영상 네 편을 'AI 단편 극장'을 방영했다.

"AI에 밀려나는 사람들? 오히려 창의력에 집중"

AI 기술 확산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도 AI가 사람의 업무를 일부 대체하면서, 제작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KBS의 '버티고' 등 AI 촬영 기술의 경우 AI가 자동으로 인물을 인식하고 따라다니기 때문에, 기존 카메라 감독의 일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현장에선 다른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김승준 방송기술인협회장(KBS)은 "처음 '버티고'를 개발했을 때 카메라 감독들에게 공개하는 걸 두려워했는데, 오히려 카메라 감독들이 '우리는 원샷만 잡고 있으려고 입사한 게 아니다. 창의적인 샷을 찍고 싶다'고 반겼다"며 "AI는 인간이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조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효걸 도스트일레븐 대표는 "일각에서 AI 활용을 단순한 비용 감축 수단이라거나 방송 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거대 자본을 앞세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와 경쟁하려면 이제 AI 없이는 어렵다"며 "AI 기술을 더 고도화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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