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 =박수선 기자] YTN이 개국 30주년을 맞아 특집 다큐멘터리로 편성한 <당신의 제보>(▷보러 가기) 는 지난 30년간 시청자들이 YTN에 보내온 제보 영상만으로 제작한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다.
<당신의 제보>로 303회 이달의 PD상을 수상한 양세희 PD는 “5개월 동안 수십만 건의 제보 영상을 보면서 제보가 없으면 뉴스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수상의 영광을 ‘공동제작자’인 시청자들에게 돌렸다.
방대한 영상 자료를 편집해서 만드는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는 이제 한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시청자 제보'를 내세운 아카이브 다큐는 지금까지 없었다. 평소에 크라우드소싱에 관심이 많았다는 양 PD는 보도전문채널인 YTN에는 많은 제보 영상이 쌓여있다는 점에 착안해 <당신의 제보>를 기획했다.
지난 9일 YTN 사옥에서 만난 양 PD는 “방송 뉴스의 특성상 출입처에서 나오는 소식이 많을 수밖에 없다. 또 서울 마포구가 시민 인터뷰 등으로 뉴스 화면에 자주 잡히는 이유는 마포구에 방송사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라며 “방송사 중심의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의 시선으로 시대를 아카이빙하고 싶었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당신의 제보>는 시청자들이 일상에서 접한 소소한 이야기부터 재난·사고 현장을 담은 생생한 화면, 위험을 무릅쓴 내부 고발 영상 등을 촘촘히 엮어 제보의 의미를 짚었다. ‘제보는 빠르다’, ‘제보는 가깝다’, ‘제보는 용기다’, ‘제보는 어디나’, ‘제보는 변한다’ 등 다섯 개 챕터로 제보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양 PD는 “‘제보는 빠르다’가 제보의 본질인 것 같다”며 “기자가 사건 현장에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건 현장 가까이에 시민,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제보 영상을 보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1인 미디어 시대에도 제보의 가치는 유효할까.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다.
양 PD는 “시청자들도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제보 영상이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보 영상의 진위를 확인하고, 보도 가치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1인 미디어와 구별되는 방송사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결국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선 본질로 돌아가 신뢰를 잘 쌓아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지난 5월 YTN 개국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된 <당신의 제보>는 시청자 제보만으로 구성된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다. 제보를 주제로 한 개국 특집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입사 전부터 (대중의 지혜를 보여주는) 크라우드소싱으로 만드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았다. 박찬욱·박찬경 감독이 만든 <고진감래> 영화를 좋아하는데, 서울시민들이 보내준 영상만으로 만든 푸티지 다큐멘터리다. 방송 뉴스의 특성상 출입처에서 나오는 소식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마포구가 시민 인터뷰 등으로 뉴스 화면에 자주 잡히는 이유는 마포구에 방송사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 중심의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의 시선으로 시대를 아카이빙하고 싶었다. <돌발영상>을 2년 동안 연출하면서 아카이브 소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YTN은 다른 채널에 비해 제보 영상을 많이 확보하고 있으니까, 시청자 제보만으로 다큐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30년 동안 쌓인 YTN 아카이브에서 제보 영상을 선택하고 구성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제작 과정은 어땠나.
“5개월 정도 모니터링을 계속했다. YTN 제보 영상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영상을 찾았다. YTN 아카이브에 있는 제보 영상에는 ‘시청자 제보’라는 인덱스가 붙는다. 시청자 제보 영상을 화재, 폭우,동물, 참사 등 키워드로 먼저 제보 영상을 솎아냈다. 이런식으로 무작정 보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30년 동안 뉴스를 돌이켜봤을 때 중요한 사건 사고들을 체크했다. 화재 키워드의 경우 ‘2025년 영남권 산불', '2008년 숭례문 방화’ 제보 영상을 채워 넣는 식으로 작업했다.”
-‘제보는 빠르다’, ‘제보는 가깝다’, ‘제보는 용기다’, ‘제보는 어디나’, ‘제보는 변한다’ 등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눠 제보 영상을 담아냈다. 이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제보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나.
“‘제보는 빠르다’가 본질인 것 같다. 기자가 사건 현장에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건 현장 가까이에 시민,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제보 영상을 보내줄 수 있다. 이번에 제보 영상을 살피면서 가장 좋았던 영상이 아파트에 공작새가 날아다니는 영상이었다. 공작새가 날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는데, 제보 영상에도 ’야 공작새가 날 수 있는 거였어‘라고 감탄하는 목소리가 담겨있다. 환호, 좌절 등 가장 가까이 있는 시민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게 제보 영상의 본질 같기도 하다."
-제작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없나.
“처음에는 제보의 명과 암을 다루고 싶었다. 제보 영상이 항상 옳을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김인정 기자가 쓴 책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인상 깊게 읽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구조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는 구절이 특히 그랬다. 누구나 카메라를 드는 시대에 미디어가 지켜야 하는 윤리가 시청자, 시민들로 확장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24시간 보도전문채널에선 다큐멘터리를 길게 내보낼 수 없다. <당신의 제보> 분량이 광고 빼고 27분이다. 짧은 시간에 제보의 암까지 살릴 수 없어 선택과 집중을 했다.”
-참사의 영상을 가치 판단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도치 않게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걱정도 했을 것 같다.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 제보 영상을 사실 다루지 않으려고 했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 영상을 단순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30년 뉴스채널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대형 참사를 언급 안하는 게 더 이상하다는 담당 부장의 의견도 타당해 받아들였다. 대신 제보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디오나 간략하게 언급하는 식으로 담았다.”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제작이 처음인데, 연출하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지점이 있다면.
“아카이브 영상물을 만드는 제작자들은 ‘내가 뭔가 덜 본 게 있지 않을까, 놓친 게 있지 않을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잡은 줄기를 믿고 집중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1년 내내 보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
-연출 방법론에선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수백 수천 개의 이질적인 영상이 하나의 덩어리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중심적으로 고민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한 모드로 끌고 가지 않으면 단편적인 영상 붙임으로 인식될 것 같았다. 다양한 영상을 묶어주는 데는 연출이 심플할수록 좋다고 봤다. 그래픽은 볼드하고 컬러감이 있는 게 좋았다. 음악은 6070년대 재즈를 많이 썼다. 기계음이 없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들을 주로 골랐다.”
<당신의 제보>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제보가 뉴스를 만든다. 그러니까 시청자 없이는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뉴스가 존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방송사 기자·PD들이 각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겠지만, 제작자로서 위치성에 대해 잊고 있을 때가 있다. 나아가 뉴스를 다루는 회사의 미래가 시청자와 관계 설정을 어떻게 가져가는지에 달려 있다는 생각도 했다.”
-누구나 채널을 가질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제보의 필요성과 의미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시청자들도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제보 영상이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제보 영상의 진위를 확인하고, 보도 가치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1인 미디어와 구별되는 방송사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시청자들이 믿고 제보를 할 만한 신뢰가 있느냐, 많은 매체 중에서 선택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은 계속해야 한다. 결국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선 본질로 돌아가 신뢰를 잘 쌓아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처음으로 연출한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로 이달의 PD상을 수상했다. 또 다른 아카이브 다큐 구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카이브 다큐는 계속 해보고 싶다. <돌발영상>을 제작하면서도 재미와 한계를 느꼈다. 기존 영상에서 뭔가를 발견해서 만드는 건 재미있는데, 매일 하다보니까 큰 흐름을 놓치는 것 같아 아쉬웠다. <돌발영상> 5년치 영상을 쭉 본적이 있는데, 국회 정치를 보는 통시적인 시각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이번엔 제보 영상으로 YTN 30년 역사를 정리했는데, 뉴스 자체에 초점을 맞춘 아카이브 다큐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회를 소재로 한 아카이브 다큐 영상도 만들고 싶다. 언론과 정치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도 아카이브 다큐로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