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 =박수선 기자] “누가 공영방송 이사를 뽑느냐 못지않게 어떤 사람을 이사로 뽑을지도 중요합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는 MBC 경영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해요. 단체들이 각각 이사를 추천하는 구조에서 대표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단체별로 직종·분야를 정해 인사를 추천하는 방식 등 보완책을 최대한 찾아야 합니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은 여당이 8월 4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 방송 3법 개정안과 관련해 “진일보한 법안”이라고 평가하면서 전문성과 대표성을 고르게 반영한 이사회 구성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상암동 방문진 사무실에서 가진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기존 법에는 국회가 공영방송 이사를 임명한다는 조항이 없지만, 실제로 국회에서 추천해왔다”며 “정권을 잡으면 방송에 대한 지배력을 놓지 않으려는 게 일반적인데, 이재명 정부가 초기에 과감하게 법 개정을 추진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해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관행적으로 행사해온 국회의 공영방송 추천 몫을 40%로 제한하고, 이사 추천 주체를 확대한 게 핵심 내용이다. 방문진법안에 따르면 국회 이외에 시청자위원회, MBC 임직원, 방송미디어 학회, 변호사 단체가 방문진 이사 추천 권한을 갖게 된다.
권 이사장은 “경영·회계 전문가뿐만 아니라 노동·인권·지역을 대표하는 인사도 방문진 이사에 포함되어야 한다”며 “MBC 사장 해임 권한이 방문진 이사회에 있다 보니 극단적인 인사들이 오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인사들의 임명을 막는 장치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방송3법에는 사장 선임 시 사장추천위원회 구성,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와 편성위원회 설치 의무화도 포함됐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 과정에 시민 평가를 반영하는 사장추천위원회 제도에는 권 이사장의 지분이 있다. 2018년 KBS 사장을 뽑을 때 처음으로 시민 평가를 반영했는데, 당시 KBS 이사로 있던 권 이사장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환경운동연합 대표 시절에 접했던 탈원전 공론화 위원회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아무리 공정한 선임 절차를 거쳐도 청와대(대통령실)에서 사장을 뽑았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시민이 뽑은 사장이라는 보호막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시민들의 평가를 거쳐 선임된 양승동 전 KBS 사장, 안형준 MBC 사장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 이사장은 인터뷰 전날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 피해자’로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지난 정부에서 부당하게 자리에서 쫓겨난 공영방송 전현직 이사들과 방송 관련 기관장들이 이재명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요구하는 자리였다.
2023년 MBC 장악 시동을 건 방송통신위원회는 MBC 관리감독 소홀 등을 이유로 권 이사장을 해임했다. 권 이사장이 신청한 집행정지 가처분은 3심까지 모두 인용됐고, 해임 처분 취소소송 1심도 승소 판결이 나왔다.
권 이사장은 “3심까지 이긴 해임 처분 집행정지와 1심에서 승소한 해임 취소소송 모두 해임 사유가 하나도 인정되지 않았다. 소송을 지속해봐야 방통위가 질 수밖에 없는데, 기계적으로 항소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이재명 정부가 소송 당사자가 되어서 대립하는 상황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고집을 부릴 사안도 아니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장관이 소송 취하를 결정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권 이사장이 받아낸 해임 집행정지 결정은 방통위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건 값진 판결이었다. 지난해 2인 체제의 방통위가 강행한 방문진 후임 이사 선임도 권 이사장 등 전직 이사들이 신청한 집행정지 가처분으로 제동이 걸렸다.
“방송 장악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부당한 해임’이라는 판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024년 방문진 이사 선임 집행정지는 승소 가능성이 10%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최선을 다해보자고 신청한 거거든요. 승소 판례가 쌓여서 신동호 EBS 사장 임명 집행정지까지 이어진 거라고 봅니다. 확정 판례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런 식의 방송장악을 하기 어렵겠죠.”
방문진 이사 임명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지면서 권 이사장은 3년 임기가 끝난 상태에서 1년 가까이 업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본회의 처리를 앞둔 방문진법 개정안은 법 시행 3개월 이내 방문진 이사회 구성을 명시하고 있어 수개월간 더 직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영 미디어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권태선 이사장은 후임 이사들에게 MBC의 버팀목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MBC를 지켜서 (12·3 내란 사태 국면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주위에서 들으면 보람을 느낍니다. MBC와 방문진을 지키느라 장기적인 미래 전략을 세우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쉽긴 합니다. 사회의 소중한 자산인 MBC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후임 이사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