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 =김지원 EBS PD협회장] 지난 8월 22일 모든 매체의 저녁 뉴스에서 ‘EBS법’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영방송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논평이 이어졌지만 정작 EBS 구성원들은 참담함을 감출 수 없던 날이다. 우리가 느낀 것은 무력감. 세상이 바뀌었지만 EBS를 위한, EBS의 독립성을 위한 변화는 요원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보장. EBS가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염원해 온 일이다. 교육은 그 어떤 곳보다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의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도 동의한다. 대의는 아름답고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늘 의문이 있었다. KBS와 EBS는 왜 다를까.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왜 우리는 방통위가 임명할까.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대표자이지만, 방통위는 정부의 한 행정조직이다. 하나의 행정기관이 공영방송의 사장, 감사, 이사 등 전 임원의 임명 권한을 가지는 것은 과연 옳은가? EBS는 방통위의 하위 기관인가? 공영방송이 행정부의 하위 기관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논리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다.
KBS는 규모도 크고 직원도, 예산도 많은 큰 회사지만, 우리는 작은 회사라서 홀대를 받는 것일까? 비록 우리가 조직의 규모도, 예산도, 직원 수도 다 적지만, 시청자들이 그걸 감안하고 봐주지 않기에 KBS 못지않은, 아니 BBC 못지않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진심으로 노력해왔다. 한전의 대행 수수료 169원보다 적은 70원의 불합리한 배분에도 국민들이 주신 수신료를 소중히 하며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데, 우리는 KBS보다 못한 조직이란 말인가.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이, EBS라는 존재의 사회 기여도가 KBS 보다 못하다는 뜻일까. 스스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우리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이 EBS를 행정기관의 하위조직이라고, “너희는 그런 대우를 받아도 문제없다”고 말하고 있다.
존재론적 문제만이 아니다. 현실은 더욱 씁쓸하다. EBS 역사에 방통위 출신 인사들이 사장, 부사장, 감사로 몇 명이나 왔는지 아는가? EBS는 방통위 퇴직자들의 감투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공영방송을 방통위의 관할 기관인 것처럼 두는 법안은 어떻게 보아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
생각해본다. 역사적인 방송법 개정에 EBS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빠진 이유가 뭘까.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나? EBS의 역사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국민들에게 우리가 부끄러운 것이 있었던 가? 부족한 점은 있겠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왔다.
다큐프라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요 가치를 놓치지 않았고, <문명과 수학>, <빛의 물리학>을 통해 기초학문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학교란 무엇인가>와 <당신의 문해력>은 우리 학교의 문제와 우리 사회 문해력에 대한 심도깊은 통찰과 주요한 아젠다를 던졌다. AI 시대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도 과학을 다루는 정규 방송 프로그램은 지상파 중 <취미는 과학>이 유일하다.
이 시대 최고 석학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위대한 수업> 등 EBS는 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하는 가치, 시민으로서 알아야 하는 지식과 교양, 양심을 국민들과 나누고자 했다. 이것은 오로지 ‘교육방송’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방송을 통해 교육을 행하는 공영방송으로서 단 한 번도 정치적 중립성에 EBS의 가치를 훼손당하지 않고,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알아야 하는 것들에서 외면한 적이 없다.
유아어린이 프로그램을 유의미하게 제작하고 있는 것도 대한민국에서 EBS가 유일하다. 국내의 열악한 애니메이션 투자 시장에서도 애니메이션 업계와 함께 공존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도 EBS뿐이다. 유아어린이 인구가 줄면서 시청률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지만, 유아어린이를 위한 교육적이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사명과 같기에 여전히 열심히 제작하고 있다. 열심히 해도 추락하는 시청률에 PD들은 ‘내 탓이겠거니, 더 잘 만들면 그래도 알아줄 거야’하고 자책해가며 말이다.
코로나19 때는 학교 교육을 지키기 위해 밤샘을 자처하며 온라인 클래스를 열었다. 방송과 인터넷 플랫폼을 가장 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퇴근을 포기한 구성원들이 숱했다. EBS 역사에 가치있는 과로였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밤샘이었다. 과로가 이어졌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최근 방송법 개정을 논의하며 누군가에게 “너희는 교육부 관할에 들어가도 되지 않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공영방송이자 세계 유일의 교육전문방송이라는 가치를 이런 식으로 폄훼하는 말을 들으면 ‘코로나19 때 우리의 노력은 무엇이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숱한 밤들을 세워가며 일한 것은 아니었다.
리박스쿨 첫 보도를 보며 한 기자 후배는 자괴했다. 어느 곳보다 교육에 대한 전문성과 애정을 가지고 EBS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있게 우리 교육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리박스쿨 취재를 EBS가 왜 최초로 하지 못했는지, 누구보다 우리가 먼저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괴로워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 견제와 균형이 있을 때 비판과 정화가 가능하다. 교육공영방송으로서 그 어느 매체보다 교육부와 교육계의 관할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독립성을 가져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있지만, 개정된 방송법은 그렇지 못하다.
기존 EBS 이사회는 전체 9명 중 교육부 추천 1인과 교육단체 추천 1인이었다. 이번 방송법 개정으로 인원이 13명으로 늘고, 그 중 교육계 인사가 4명이 되었다(교육부, 교육감협의회, 교육단체 추천2인). 교육부는 역시나 정부기관이다. 여권의 추천이나 다를 바 없다.
교육단체는 어땠나. 이제까지 교육단체 추천으로 들어온 EBS 이사들의 행적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이다. 최근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교사 수 천 명의 개인정보를 도용하여 모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던 사람이 바로 교원단체의 추천을 받은 전 이사였다. 다른 이사를 폭행하고 이사 재임 중 정당의 비례대표에 지원한 사람도 역시나 그곳의 추천이었다. EBS 이사라는 이름을 달고도 정치적 입장과 의도를 드러내는 것을 오랜 시간 숨기지조차 않는 곳이다. 교육계 추천인이 13명 중에 4명을 차지함으로써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성’을 강조한다는 본래 취지에도 맞지 않다. 다양성은 더 악화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방송법 개정 과정에서 EBS 구성원들은 여러 차례 말해왔다. EBS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기존에 나와 있던 방송법 개정(안) 13개 중 12개는 EBS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었다. 국회 전문위원이 쓴 보고서에도 대통령 임명의 당위성과 교육단체 추천인 증가에 대한 문제가 기재되어 있다. 올 초 불법적인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신동호씨가 사장으로 임명이 되는 고통을 겪고, 간부를 포함한 전 구성원들이 단결하여 저지한 EBS로서는 방송법 개정을 통해 무엇보다도 EBS의 정치적 독립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통과된 방송법은 EBS를 위한 고민이 단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문제점을 잘 아는 구성원들의 목소리 또한 철저히 묵살했다. 혹자는 “EBS는 정치적 문제 없잖아?”라고 했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어야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취지였을까? EBS가 지금의 사회적 신뢰를 가지는 것은 구성원들이 애쓰며 지켜온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문제를 막아내는 사람들의 노고가 보이지 않는다. 신동호씨 사장 임명과 출근 저지가 불과 4개월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법 개정 과정에서 EBS 구성원들의 노력과 프라이드를 조롱하는 말들이 횡행했다.
언론노조와 언론단체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송법 통과에 일부 방송사들만 환영사를 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론노조에는 거대 방송사만 존재하는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EBS와 다른 방송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번 방송법 개정의 문제점은 EBS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SBS와 지역 MBC, 민영방송 등 많은 방송사의 보도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시행이 빠졌다. 여러 언론사에서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이 점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노조와 민언련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방송법이 한국의 거대 방송 몇 곳만을 위한 것이었나?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인정한다. EBS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매체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어떤 정치색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EBS가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력을 키워야 하는 것일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EBS가 아니다.
EBS PD들에게는 ‘EBS스러움’이라는 게 있다. 프로그램을 재밌게 잘 만들어야 하지만 EBS답게 만들어야 한다. 비난하거나 모욕하지 않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엄격하게 지킨다. 자극과 재미를 위한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 ‘왜’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필요한가에 집착한다. 스스로 옥죄는 기준 같은 것들이지만 EBS에 입사해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이 키워지고 내재화된다. 이 점이 족쇄가 되어 더 다르게, 더 재밌게 만들 수 없을까를 더욱 고민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이 ‘EBS스러움’은 버리기 어려운 우리의 가치다. 우리는 교육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사회와 사장 임명 과정의 다양성 보장 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지금 해야 할 것은 반쪽짜리 방송법 개정에 기뻐할 것이 아니라 드러난 문제를 직시하고 빠르게 후속 조치를 하는 것이다. 약 40년 만에 이루어낸 역사적인 방송 거버넌스 변혁의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지 않는가. 방송법 개정을 주도한 이들에게는 이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책임이 있다.
‘EBS 법’이라고 불리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을 맞아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이 법이 조금도 EBS를 배려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다는 지점이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새긴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국민들, 우리의 소중한 시청자뿐이라는 것을. EBS 전 구성원들은 언제나 70원의 소중한 가치를 가슴에 품고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EBS는 정치적 압박에 무너져서도 안 되고, 시청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서도 안 된다. 교육은 그런 것이다. 부당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우리는 이 슬픔을 안고 오늘도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EBS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지지해주는 국민들의 신뢰야말로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이번 ‘EBS 법’이 정작 EBS를 외면하고 있더라도 우리에게는 시청자가 있다. 오늘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