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 =박수선 기자] 인재 위기에 경종을 울린 KBS <다큐 인사이트-인재전쟁>에 쏟아진 뜨거운 반응은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PD 세 명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305회 이달의 PD상을 수상한 정용재·이이백·신은주 PD는 “<인재전쟁>으로 공론장 역할을 할 수 있어 뿌듯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지난 7월 방송된 <인재 전쟁>은 첨단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중국의 이공계 인재 육성 열기와 한국의 의대 쏠림 현상을 2부작에 담아냈다. 기술 패권 시대에 앞서나가는 중국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고, '의대공화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 암담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인재전쟁> 1부 시청률은 3%대로 그리 높지 않았지만, 방송 이후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구독자 352만명을 보유한 경제 유튜버 슈카 등이 소감평을 올리면서 SNS 등에서 입소문이 퍼졌다. 기대 이상의 호응에 KBS는 예정에 없던 <인재전쟁 긴급토론>을 편성하기도 했다.
입사 7~10년차에 <인재전쟁>을 제작한 PD들도 겪어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1부 ‘공대에 미친 중국’을 연출한 정용재 PD는 서면인터뷰에서 “평소에 TV를 잘 보지 않은 친구들에게 카톡과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받았다”며 “다니는 회사 사장이 1000명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인재전쟁> 다큐를 링크했다, 다큐 내용을 요약한 보고서를 올리라는 업무 지시를 받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시의적절한 어젠다 세팅은 유튜브와 SNS가 득세한 환경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다시 한 번 지상파 PD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수 있는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2부 ‘의대에 미친 한국’편을 공동연출한 신은주 PD는 “입사 최종 면접에서 ‘KBS 역할은 공론장’이라고 답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제작을 하다 보니 프로그램으로 세상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촬영에 협조해준 출연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인재전쟁>은 이공계 홀대가 사회 전반에 퍼진 한국과 다르게 이공계 인재를 우대하는 중국 현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중국 취재 비자 발급부터 애를 먹었다는 정용재 PD는 중국 현지 코디네이터를 통해 섭외 대상자들을 집요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중국 토종 AI 플랫폼 딥시크가 던진 충격을 계기로 중국이 어떻게 짧은 시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 PD는 “'차이나테크' '레드AI'가 붙은 책은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중국 첨단 산업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찾기 어려웠다”며 “말로만, 글로만 떠돌던 이야기를 직접 확인하고,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카메라에 담아와 날 것을 보여준 게 반향의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유명 프로그래머가 돼서 국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중국 학생과 2부에서 나온 “의사가 돼서 롯데월드 보이는 데서 살고 싶다”는 한국 학생의 인터뷰는 한중 인재의 시각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2부를 공동연출한 이이백 PD는 “대한민국에서 의대를 향한 열망, 그로 인한 이공계의 위기의식은 수십년 전부터 있었던 난제였다”면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의대만이 답이라는 사회적 경향성을 바라보고자 했다. 한끗 차이로 의사에 대한 비난이 될 수도 있어 그 부분을 신경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욕심이 완전히 배제된 선택을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선택들이 사회 구조와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 계속 이렇게 가도 괜찮을 걸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신은주 PD는 “끝까지 마음에 두었던 건 이 다큐멘터리를 본 공대 지망생들이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싸우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생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노력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다행히 이재명 정부 들어 전임 정부에서 대폭 삭감한 연구개발 예산을 확대 편성하는 등 이공계 인재 육성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이공계 현실을 지켜본 <인재전쟁> PD들은 이공계 처우 개선과 함께 기초연구 투자 확대, 성과 중심의 평가 시스템 재고, 과학인재 조기 발굴 등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정 PD는 “중국에서 본 것 중에 ‘수월성 교육’이 흥미로웠다. 중국은 공교육 차원에서 어렸을 때부터 ‘조기 발견, 조기 육성’을 원칙으로 인재를 그야말로 찍어내고 있다. 평준화를 지향해온 우리나라에 던지는 시사점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이백 PD는 “수시로 바뀌는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정부가 정한 기조와 정책 방향이 오락가락하면 먼 미래를 보고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분야만큼은 리스크를 줄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밝혔다.
2부작에 담지 못한 이야기는 빠르면 내달 출간되는 책에 담길 예정이다. <인재전쟁>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는 후속편도 기다려진다.
정 PD는 “출간 예정인 책을 통해 글로벌 인재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넓고 열띤 공론장이 열리기를 바란다”며 “후속편에선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연구개발 방식, 북경의 대치동이라고 불리는 마을의 공교육과 사교육 현장 등을 더 심층적으로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