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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01 10:10
  • 수정 2025.10.01 17:02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인장 박힌 스파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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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갈리는 '어쩔수가없다', 첩보물로 해석해보면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PD저널 =홍수정 영화평론가] <어쩔수가없다>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신경이 쓰였던 작품이다. 그 느낌을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개봉 전부터 어수선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또 박찬욱의 작품 중 이례적으로 흥행을 의식한 작품처럼 보인다. 이런 양상은 자기 세계에 침잠하여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때 좋은 작품을 내는 박찬욱의 경향과 그다지 맞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과한 우려는 금물. <어쩔수가없다>는 전에 없던 미학적 시도를 감행하며 박찬욱의 인장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예감은 어느정도 맞아떨어졌다. <어쩔수가 없다>는 인상적이지만 어색한 지점들이 있다. 어수선하다는 인상은 영화를 본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호불호가 나뉘는 시점. 이번 글에서는 먼저 <어쩔수가 없다>의 아쉬운 면을 간략하게 짚겠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드러나는 박찬욱의 인장이 무엇인가에 대해 쓰려고 한다. 지금부터 우리가 이야기할 것은 <어쩔수가없다>가 재미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박찬욱의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대한 응답이다. 아래부터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나온다. 

<어쩔수가없다>가 기대보다 흥미롭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유머와 리듬' 때문이다. 이 영화의 리듬은 약간 루즈하게 느껴진다. 박찬욱의 전작, <헤어질 결심>은 매 장면이 유려하고 찐득찐득하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서늘하게 날카롭다. 그러다 후반부에서 절정을 향해 돌진하는데, 그 가속 과정이 유효한 쾌감을 터뜨린다. <헤어질 결심>의 리듬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반면 <어쩔수가없다>의 많은 장면은 웃음을 위해 연출된다. 그런데 그 유머가 종종 성공하지 못하다 보니 장면이 자체가 썰렁하게 느껴진다. 일상에서 농담이 실패한 순간을 떠올려 보자. 농담이 나온 후의 정적 1초는 다른 때의 1초보다 훨씬 길고 지리하다. 웃음의 자리가 공백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어쩔수가없다>의 블랙코미디를 (그리고 박찬욱의 유머 감각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취향의 영역이기에. 다만 이러한 시도가 종종 미끄러지며, 해당 장면은 의도치 않게 느슨해진다. 예를 들어 만수(이병헌)가 제지업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다가 쓰러지는 모습은 웃음기 없는 제스쳐로 남아 영화에 구멍을 낸다. 

또한 유머와 별개로 영화의 리듬 자체가 달라지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주로 미리(손예진) 장면에서 감지된다. 사실 미리는 박찬욱의 필모그라피에서 동떨어진 인물이다. 그녀는 충동적인 팜므파탈(<헤어질 결심>의 서래, <박쥐>의 태주)도 아니며, 변화를 끌어내는 강인한 해결사(<헤어질 결심>의 정안, <아가씨>의 숙희)도 아니다.

단정하고 친절하지만 의뭉스러운 그녀는 박찬욱 필모에서 이례적이다. 그녀는 자주 고요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그럴 때 카메라도 정안을 잠자코 응시한다. 미리가 남편의 살인을 눈치챈 상태에서, 출근하는 그를 빙그레 웃으며 배웅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때의 절제된 연출은 강렬한 정념을 이끌어내던 기존의 스타일과 다르다. 이런 연출이 문제는 아니지만 박찬욱 고유의 스타일과 합일하지 못하고 영화에 어색하게 삽입되어 있다는 인상을 자아낸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탈컷.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탈컷.  

<어쩔수가없다>를 향한 혹평의 상당수는 영화가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다고 간증한다. 이런 반응은 이해가 되는 것이, 영화 장르가 코미디이며 전작들과 달리 편하게 즐길 만 하다는 홍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수가 없다>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신나게 웃기지도, 편안하게 관람할 만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반짝이는 가치는 다른 데 숨어있다.

박찬욱의 BBC 드라마 <리들 드러머 걸>(2018)부터 시작된 하나의 경향이 있다. 그건 박찬욱이 '첩보물'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리틀 드러머 걸>은 스파이와 연극, 임무와 삶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사랑과 신념의 의미를 탐색하는 명작이다. 사실 기미는 예전부터 있었다. 누군가를 쫓아가며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초기작인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등에서도 나타났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떠오른 것은 <리틀 드러머 걸>이다. 전작인 <헤어질 결심>에서도 해준(박해일)은 수사를 핑계로 서래의 일거수일투족을 시선에 담고, 서래는 해준의 말 하나하나를 반복적으로 듣는다. 그들의 임무와 사랑은 서로를 향한 첩보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말하자면 박찬욱에게 첩보는 세계를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이는 애정, 동정, 복수심 등 다양한 감정과 만난다. 

<어쩔수가없다>도 일종의 첩보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수는 경쟁자를 제거하겠다는 "핑계"로 그들을 따라다니고 지켜본다. 결과와 무관하게 이 과정만큼은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다. 첫 번째 임무에서 만수는 대상과의 거리조절에 실패하여 그에게 동화되고 그의 삶에 들어간다. 죽을 뻔한 경험이 깨달음을 주었을까. 시도가 반복될수록 만수는 필요한 만큼만 접근하고 동요 없이 임무를 수행한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프로페셔널한 스파이로 거듭난다.  

박찬욱이 어째서 스파이에 이토록 큰 애정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그는 스파이의 유려한 움직임 그 자체에 이끌리는 것 같다. <어쩔수가없다>가 가장 친연성을 보이는 작품은 그의 드라마 <동조자>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외로운 스파이. 그럼에도 자기 일을 완수하기 위해 재촉하는 걸음. 어딘가로 향하고 방향을 돌리는 그의 모든 움직임은 스크린 위에서 우아하게 펼쳐진다. <어쩔수가없다>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만수가 산길을 걸으며 범모(이성민)를 따라가는 장면에서 그는 스파이, 맹수, 혹은 무용수 같다. 미지의 세계에 접촉하기 위해 지속하는 걸음. 조심스럽고도 재기발랄한 발놀림. 이것은 박찬욱을 사로잡은 원초적인 운동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만수는 첩보 활동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선보인다. 면접자, 손님, 그리고 동료까지. 그는 매번 다른 얼굴로 접근한다. 이것이 일종의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한 상황에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박찬욱의 스파이들은 매번 임무에 착수한 뒤에, 자기를 그 역할로부터 분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연기는 실제가 되고 과업은 삶을 침범하고 들어온다. 이것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 <리틀 드러머 걸>이다. 어쩌면 박찬욱은 매번 다른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며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러하다면 영화 속 스파이들의 몸짓은 위로가 된다. 우리의 모습도 저다지도 처절하지만 아름다울 테니까 말이다.

<어쩔수가없다>가 어느 정도의 흥행을 거둘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스코어가 나오든 그것으로 영화의 가치를 재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감각적인 미술, 독특한 미장센 등 장점이 많지만, 내가 보는 <어쩔수가없다>의 의미는 박찬욱 표 첩보물의 계보를 잇는다는 데 있다. 아울러 그것이 사랑과 신념을 넘어 분노와 적대심에도 깃들 수 있음을. 이 감정의 근간은 쫓아가고 지켜보는 그 단순한 활동에 있음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우리는 때로 삶의 결정적 순간에 스파이의 임무를 떠맡는다. 당신의 선택지는 단 두 가지다. 도망치거나, 완수하거나. 그리고 여기 힘겨운 고민을 시작한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발랄하고 측은한 스파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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