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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03 10:00
  • 수정 2025.11.03 10:01

'미디어 혁신 각축장' NAB쇼..."기술 아닌 신뢰가 미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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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개국 1만 1500명 몰린 'NAB쇼 뉴욕 2025' 현장

지난 10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NAB쇼 현장.  
지난 10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NAB쇼 현장.  

[PD저널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 지난 10월 23일 오후 4시, 뉴욕 맨해튼 웨스트사이드 자비츠 센터. 이틀간의 열띤 일정을 마친 NAB쇼 뉴욕 2025의 전시장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95개국에서 모인 1만 1500명의 참가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부스를 오가며 명함을 나누고, 최신 AI 편집 솔루션 시연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블랙매직(Blackmagic) 디자인 부스 앞, 한 지역 방송국 프로듀서가 실시간 AI 자막 생성 시연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정말 가능해요?" 불과 2년 전만 해도 3명의 인력과 수 시간이 걸리던 작업이 이제 몇 분 만에 완성됐다. 부스 담당자는 능숙하게 설명을 이어갔지만, 그의 눈빛에서도 이 변화의 속도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곳은 세계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의 수도, 뉴욕이다. 하지만 이번 NAB쇼가 보여준 건 화려한 기술 혁신만이 아니었다. AI가 뉴스룸을 점령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가장 신뢰받는 건 '이웃의 얼굴을 아는' 로컬 방송사라는 역설. 그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뉴욕, 세계 미디어의 심장부에서 열린 미래 담론

지난 10월 22~23일 뉴욕 자비츠 센터에서 열린 'NAB쇼 뉴욕 2025'는 AI 혁명의 한복판에서 방송의 본질을 되묻는 자리였다. 미국방송협회(NAB)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단순한 기술 전시회를 넘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저널리즘이 살아남는 법을 모색하는 치열한 토론의 장이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95개국에서 11,500명이 등록했고, 248명의 기자와 미디어 관계자가 취재 인증을 받았다. 참가자의 약 10%가 미국 밖에서 왔고, 62%가 첫 참가자였다는 점은 행사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보여준다.  미국방송협회는 “260개의 전시업체와 스폰서가 참여했으며, 그중 51개는 첫 참가 기업이었다”며 “ 약 39,000평방피트(NBA 농구 코트 7개 크기)의 전시 공간은 말 그대로 미디어 혁신의 각축장이었다”고 행사를 평가했다. 

NAB 글로벌 커넥션스 앤 이벤트 수석부사장 카렌 철카는 보도자료에서 "NAB쇼 뉴욕 2025는 지금 이 순간 미디어를 변화시키고 있는 창의적 힘들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며 "세계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의 수도인 뉴욕시보다 이런 전문성과 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있는 더 나은 배경은 없다"고 강조했다.

저널리즘 미래를 주제로 진행된 세션 현장. 
저널리즘 미래를 주제로 진행된 세션 현장. 

지역방송이 가장 신뢰받는 이유

행사 첫날의 메인 주제는 ‘저널리즘의 미래(The Future of Journalism)’이었다. 가장 주목받은 발언은 패널로 참석한 악시오스(Axios) 미디어 전문기자 사라 피셔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토론에서 "미국인의 압도적 다수는 전국 뉴스나 소셜미디어보다 자신의 지역방송을 훨씬 더 신뢰한다"며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데이터가 이를 명확히 뒷받침하는데, 다른 어떤 유형의 미디어보다 자신의 지역 방송사를 훨씬 더 믿는다"고 말했다. 

피셔는 이어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주류 뉴스'와 '우리 동네 WKTV(뉴욕의 지역방송)' 같은 로컬 방송사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역 뉴스 방송사를 신뢰한다"라고 했다.

해당 발언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AI가 뉴스를 자동 생성하고, 딥페이크가 일상화되며, 허위정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이웃의 얼굴을 아는 기자'가 만든 뉴스를 가장 신뢰한다는 역설적 현실을 보여준다.

패널로 참여한 NAB 회장 커티스 르게이트는 "지역 방송사들은 커뮤니티의 일부이고, 그들의 뉴스룸은 이웃들로 구성돼 있다. 이것이 신뢰의 원천"이라며 "방송과 언론은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왔다. AI가 뉴스룸에 들어와도 '정확성과 투명성'이라는 원칙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I 시대 저널리즘의 딜레마, 효율과 신뢰 사이

'저널리즘의 미래' 세션은 이번 NAB쇼 뉴욕의 가장 핵심적인 프로그램이었다. CNN 수석 미디어 분석가 브라이언 스텔터, 뉴욕타임스 편집 담당 부편집장 패트릭 힐리, 미디어 비평 뉴스레터 '스테이터스(Status)' 창립자 올리버 다시 등 미국 저널리즘계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들이 참여해 AI 시대 저널리즘의 생존 전략을 논의했다.

스텔터는 "AI는 저널리즘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신뢰는 여전히 사람에게서 나온다"며 기술과 인간 저널리스트의 균형을 강조했다. 그는 "AI 도구가 이미 일상에 깊숙이 들어왔지만, 정부나 플랫폼이 스스로 이를 규제하길 기대할 수 없다"며 "결국 사람과 사람의 신뢰, 즉 '인간이 만든 뉴스(human-based journalism)'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AI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누가, 어디서, 무엇을 취재했는가'를 알고 싶어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우리를 믿어달라(trust us)'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단언한 힐리는 "취재 과정과 판단을 공개하는 투명성이 신뢰의 핵심"이라며 뉴욕타임스의 투명성 강화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가 진행한 가자지구 관련 보도나 '노 킹스(No Kings)' 시위 취재를 할 때, 우리는 왜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왜 특정 장면을 다뤘는지를 독자에게 미리 설명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비평 뉴스레터 '스테이터스(Status)' 창립자인 다시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그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에서 신뢰는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됐다"며 "오늘날 가장 위험한 허위정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정치권력과 결탁한 조직적 선전(propaganda)"이라고 지적했다.

패널들은 AI가 생성하는 완벽한 딥페이크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 '조작된 문맥(manipulated context)'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피셔는 "AI 딥페이크보다 훨씬 흔한 형태는 오래된 영상을 새 사건처럼 포장하거나 발언을 왜곡해 전파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진짜 위협"이라고 설명했다.

스텔터는 "구독(subscription)과 팬덤(fandom)은 새로운 신뢰의 형태"라며 "독자가 돈을 내고 선택한 언론에 더 높은 기대를 가지게 될수록, 저널리즘의 책임감도 커진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데이터가 드러낸 대중의 불안

'AI, 새로운 수익과 위험 그리고 정책 대응' 세션에서는 AI 기업의 무단 콘텐츠 활용 문제가 집중 조명됐다.

NAB 회장 커티스 르게이트가 사회를 맡은 이 패널에는 토미 비니언(OnMessage Inc. 부사장), 닉 라지울(Hearst Television 부사장), 존 슐루스(NewsGuild-CWA 회장), 브래드 실버(Advance 부사장 겸 글로벌 AI·IP 공공정책 총괄) 등 정책·산업·노동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석했다.

세션은 OnMessage가 9월 중순 실시한 AI 인식 조사 결과 발표로 시작됐다. 비니언 부사장은 "이번 조사는 미국인의 AI에 대한 불안과 신뢰의 간극을 보여준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어 "응답자의 76%가 AI가 언론 콘텐츠를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도용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으며, 72%는 정부가 AI 개발에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32%는 자신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의 수치는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정치적 의제화로 이어질 수 있는 수준"이라며 "AI 규제와 콘텐츠 보상 문제는 다가올 대선에서 주요 정책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르게이트 회장은 "이 데이터는 언론 산업이 AI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이라며 "방송과 언론은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왔다. AI가 뉴스룸에 들어와도 '정확성과 투명성'이라는 원칙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투명성 없는 AI 활용은 신뢰 훼손"

Advance 부사장 브래드 실버는 AI 시대 언론의 핵심 과제를 '공정한 보상과 데이터 투명성'으로 요약하면서 "AI 모델은 저널리즘이 생산하는 최신 뉴스 데이터를 학습하며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그 데이터의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우리는 AI가 어떤 콘텐츠를 언제, 어떻게 수집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며 "AI 크롤러(bot)의 정체성과 이용 목적을 명시하는 투명성 의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공정 거래의 기본 전제"라고 역설했다.

실버는 "현재 일부 대형 언론사만이 AI 기업과 제한적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 뉴스 조직은 접근조차 어렵다"며 "규제와 인센티브가 결합된 시장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길즈(NewsGuild), 언론 노조 회장 존 슐루스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빅테크는 우리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고 있다. 언론사들은 개별적으로 불투명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공정한 협상력을 잃었다. 집단 교섭이 가능한 제도적 틀(JCPA) 없이는 이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가 뉴스를 활용하는 구조가 투명하지 않으며, 언론사와 AI 기업 간의 '정보 비대칭'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르게이트 회장은 "AI가 검색을 대체하는 시대에는 '콘텐츠 학습 기반 보상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며 "JCPA(저널리즘 경쟁 및 보전법)의 정신을 AI 플랫폼에도 확장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연방의회와 주정부가 함께 나서 AI 시대의 공정 경쟁과 투명한 데이터 이용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패널 토론의 마지막 발언에서 비니언 부사장은 "유권자의 80% 이상이 AI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신뢰 혁신(Trust Innovation)'"이라고 했다. 

르게이트 회장은 이를 받아 "AI 시대에도 언론의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며  "팩트에 기반한 신뢰 저널리즘이야말로 민주사회의 근간이며, NAB는 언론 산업이 AI와 공존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생태계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정책 논의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NAB쇼 뉴욕에서 열린 로컬 TV 전략 세션. 
NAB쇼 뉴욕에서 열린 로컬 TV 전략 세션. 

로컬 방송사의 실전 AI 활용 전략

한편,  E.W. 스크립스(E.W. Scripps), 폭스(FOX Corp.), 허스트 텔레비전(Hearst Television), 넥스타(Nexstar), 싱클레어(Sinclair), 테그나(Tegna) 등 미국 주요 방송 그룹의 경영진이 참여한 세션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뉴스 제작 효율화와 저널리즘 원칙을 유지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허스트 텔레비전 부사장 닉 라지울은 실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AI는 뉴스룸의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 도구이지만, 신뢰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신중히 도입해야 한다"며 "AI를 통해 수십 개의 지방의회 회의록을 자동 분석해 기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이슈를 발굴하고, 이를 토대로 인간 기자가 추가 취재를 이어가는 형태로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동화된 날씨 리포트, AI 기반 스크립트 작성 지원, 데이터 저널리즘 도구 등 이미 많은 지역 방송국에서 AI가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자들이 더 심층적인 조사 보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사례들이 공유됐다.

NAB쇼 뉴욕에서 선보인 틱톡 숍 활성화 프로그램. 
NAB쇼 뉴욕에서 선보인 틱톡 숍 활성화 프로그램. 

260개 전시업체가 제시한 미래 기술

전시장에는 아마기(Amagi), 아마존웹서비스(AWS), 아비드(Avid), B&H, 블랙매직 디자인(Blackmagic Design), 캐논 USA, 카이론(Chyron), 델 테크놀로지스, 에버츠(Evertz), 후지필름 노스 아메리카, 그래스 밸리(Grass Valley), 하이비전(Haivision), 하모닉(Harmonic), 파나소닉 커넥트, 로스 비디오(Ross Video), 소니 일렉트로닉스 등 260개 글로벌 미디어 기술 선두 기업들이 최신 솔루션을 선보였다. 

전시 공간 곳곳에서 AI 기반 제작 및 편집 도구, 워크플로우 자동화, 데이터 기반 스토리텔링 솔루션이 시연됐다. 또한 라이브 쇼핑과 창작자 커머스 활성화 프로그램이 플랫폼 전략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며 참가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후지필름 크리에이터 대여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전시장을 벗어나서도 최신 카메라와 렌즈를 직접 테스트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퍼프 미디어(Puff Media)의 틱톡 숍 활성화 프로그램은 창작자와 브랜드 간의 실시간 협업과 소셜 커머스 판매를 생생하게 시연하며 창작자 경제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그래스 밸리 영업 수석부사장 알렉스 카일리는 "뉴욕은 세계 최대 미디어 시장이다. 여기 있는 청중은 당신이 대화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라며 뉴욕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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