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과거가 정치적 중립에 대한 우려를 사실로 증명하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1988년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재직하며 김용갑 전 총무처 장관의 국회해산권 주장을 지지하고 문화공보부(문공부)에 언론계 내부 동향을 보고하는 등 권언유착 행태를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언론·시민단체가 일찍부터 제기해온 ‘무자격론’이 힘을 받고 있다.

■국회해산 지지 표명 등 권언유착 의혹== 한국기자협회가 발행하는 기자협회보 1988년 8월26일자 1면에 게재된 ‘최시중 정치부장 권력유착 행적 파문, 동아 기자들 진위해명 요구’ 기사에 따르면 최 내정자는 그해 8월13일 김용갑 당시 총무처 장관을 만나 “김 장관의 소신에 찬 발언을 전폭 지지한다”면서 “적극 밀어줄테니 의연히 행동하라”고 격려했다.
김 장관이 그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좌경세력에 대처하기 위해 88 올림픽 이후 국회 해산권을 대통령이 갖도록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발언한 직후였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같은 해 8월15일자 신문 3면에서 ‘김 총무처에게 들어본 발언 진의’라는 제목으로 김 장관의 인터뷰를 싣고 그의 입장을 상세히 전했다.
이에 대해 당시 기자협회보는 “동아 기자들은 올림픽 휴쟁 정국에 강경기류를 몰고 온 김 장관의 ‘개헌’ 발언에 대한 최 부장의 지지의사 표명이 비록 개인적인 생각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견해를 바탕으로 신문 제작을 하게 되면 보도의 공정성에 크게 어긋남은 물론, 정치부장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될 경솔한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자협회보는 또 해당 기사에서 최 부장이 김 장관의 국회해산 발언 지지 표명 닷새 뒤인 그해 8월18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골프 회동으로 물의를 빚었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동아일보 노동조합은 사장에게 비공개 질의서를 발송, 최 부장의 권언유착 행적에 대한 진위를 밝혀 달라 요구했고, 최 부장은 당시 전 전 대통령과의 골프회동을 고급 정보 수집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해달라고 설명하면서 국회 해산 발언 지지 표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기자협회보는 그러나 “편집국 소장 기자들이 최 부장의 행적에 대해 문제 삼을 움직임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공부 언론동향보고 의혹= 같은 해 12월23일자 기자협회보는 1면에 ‘언론인 개별접촉 보고서 전문’을 게재했다. 이 보고서는 문공부 홍보정책실이 언론사별로 접촉대상자를 선정, 보도협조 요청 사항을 알려주고 사내동정을 입수해 작성한 것으로, 이 안에는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었던 최 내정자가 두 차례 등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 내정자는 1988년 3월31일 낮 ‘향진’이란 이름의 음식점에서 문공부의 이 모 정책관을 만났는데, 이 정책관은 “새마을 사건관련 보도의 객관성 회복을 위한 자제 노력과 선거관련 기사의 문제점 지적 성향 배제, 소장기자 순화노력 제고” 등을 요구했다.
최 내정자는 또 같은 해 4월29일 서 모 정책관을 ‘공간’이란 고급음식점에서 만났다. 서 정책관은 이 자리에서 ‘여소야대의 국회와 정부의 국정운영에 언론 역할을 어떻게 보는지’, ‘언론이 보는 민정당과 정부 입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최 내정자는 “민정당은 야당 행사, 3김당은 여당행세를 할 것이다. 3당이 합의해서 밀어 붙일 안건은 첫째 광주사태 진상조사,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와 친인척비리조사를 위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기선을 잡을 것”이란 답변을 전했다.
최 내정자는 또 이 자리에서 “동아일보 등 언론은 이 두 건의 국정조사권 발동을 지지하고 철저조사를 주장하고 나올 게 명약관화하다. 전 전 대통령 처남 이창석 비리에 관해 제보가 많다. 사회부에서 하나씩 터트릴 것이다” 등의 자사 내부 동향도 보고했다.
■일반인도 방송전문가도 모두 ‘최시중 불가’= 이뿐만이 아니다. KBS <뉴스9>는 지난 5일 최 내정자가 한국갤럽의 회장으로 있었던 97년 대선 당시 공표가 금지된 여론조사 결과를 주한미국대사 측에 불법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와 서울신문은 각각 지난 6일과 7일 최 내정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최 내정자 아들 최 모씨의 상습적인 세금 체납 사실 등을 전했다.
최 내정자는 방통위원장으로 지명된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중립 논란에 대해 “지금까지 중립성과 객관성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언론인과 여론조사인이라는 두 개의 직업을 가졌고, 그런 의식을 생활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면서 “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패막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최 내정자의 기자간담회 발언처럼 방통위원장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한다. 기자 역시 권력과의 선 긋기를 기본으로 요구받는다. 그러나 기자시절부터 여러 차례 권언유착의 당사자로 지목됐으며 정치에 발을 담근 뒤엔 “대통령이 어려울 때 전천후 요격기처럼 투입되는 역할을 하겠다”(1월30일, 기자간담회)고 말한 최 내정자에게 있어 ‘권력과의 거리두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실례로 KBS <미디어포커스>가 지난 4~5일 사이 한국방송학회 소속 회원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최 내정자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반대 응답자들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저해’(56.2%), ‘전문성 부족’(42.4%)을 이유로 꼽았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 내정자의 권력유착 의혹과 부동산 투기 등 도덕성 관련 논란이 언론에 의해 제기된 직후인 지난 8일 MBC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5%가 최 내정자의 사퇴를 말했다.
■방통위원장의 최우선 조건은 ‘정치적 중립’= 방통위원장으로의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 고위공직자로서의 도덕성까지 모두 논란이 되자 최 내정자는 지난 9일 “20여년 전의 일이라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문공부 담당직원이 대학동기여서 사적으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허물없이 했을 수 있다” 등의 해명이 담긴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언론․시민단체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마디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냐”는 것이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는 10일 “최 내정자의 언론관․직업윤리가 어느 수준인지 그대로 드러났고, 방통위원장으로 부적격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도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는 작금의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정치적 중립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로 다시 지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