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는 참석해도 국회 업무보고는 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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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방통위원장, ‘의무’는 방기... ‘정권 코드 맞추긴’엔 앞장 ‘논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이하 방통위)가 13일로 예정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위원장 조배숙, 이하 문광위) 업무보고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논란이다.

방통위는 문광위 업무보고를 사흘 앞둔 지난 10일 문광위 위원장과 여야 간사 앞으로 공문을 보내 “현행 국회법상 방통위의 소관 상임위가 불분명하며, 위원장이 인사청문회를 거쳐 3월26일 임명되고 구 방송위원회 직원의 공무원 특별채용 절차와 고위공무원단 심사 등으로 현재까지 조직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마이웨이 ‘밀실행정’ 논란= 방통위의 국회 업무보고 거부는 우선 법률에 명시된 국회의 감시와 감독 권한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방통위의 존립 근거인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방통위 설치법) 제6조 3항은 “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하여 위원회의 소관 사무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할 수 있으며,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출석하여 보고하거나 답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 업무보고는 선택이 아닌 의무 사항으로, 방통위의 활동에 대해 국민의 대의기관이 국회로부터 감시·감독받으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 취임식에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법이 정한 의무인 국회 업무보고는 거부하면서 국무회의에는 연이어 참석하며 권한 이상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방통위가 현재처럼 ‘밀실행정’ 논란에 휩싸여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방통위 설치법 제13조는 ‘회의 공개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회의 공개원칙은 구 정보통신부의 기능을 방통위가 대신하게 된 상황에서 구 방송위원회처럼 민간 독립기구로 남을 경우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행정행위 등에 있어 효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법학자들의 지적에 따라 방통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되,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투명성·책임성 등을 부여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따라서 국가안위 등 불가피한 사항이 아닌 한 모든 회의를 공개하는 게 원칙인 것이다.

그러나 방통위는 지난 4월 이에 역행하는 회의 운영규칙을 만들었고, 최근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 시행령과 지방자치단체에 사업권을 주는 영어FM 등을 비공개 회의를 통해 확정했다.

이처럼 방통위가 법이 정한 회의 공개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 업무보고는 밀실 안에서 이뤄진 행정을 점검할 수 있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기회다. 실제로 이 같은 점에서 통합민주당 측 국회 문광위원들은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밀실행정과 관련한 집중 문제제기를 준비하는 분위기였고, 방통위 역시 이에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방통위의 이번 업무보고 불참 통보는 위원회 행정에 대한 일체의 비판적 감시와 견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평가다.

■의무는 ‘방기’, 정권 코드 맞추기는 ‘열심’= 법이 정한 의무인 국회 업무보고엔 불참하면서 방통위가 상임위원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대통령 업무보고 준비엔 열심인 것도 논란이다.

방통위 관계자에 따르면 최시중 위원장은 6월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 나설 예정이다. 방통위가 대통령 소속 기관이고 정부조직법 제2조에 따른 중앙 행정기관인 만큼 업무보고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방통위 설치법 안에는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예외조항이 있는 만큼 업무보고가 타당하지 않다는 내부 의견도 상당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업무보고가 문제될 부분이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긴 하지만, 방송의 독립성과 관련한 논란이 높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비공개로 대통령과 위원장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어떤 형식이든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는 있을 것이란 얘기다. 이는 방통위의 벤치마킹 모델인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예산·업무보고 등에 있어 행정부가 아닌 국회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더구나 방통위는 법이 정한 의무인 국회 업무보고엔 불참하면서 같은 날(13일) 열리는 국무회의에 위원장 참석을 예정하고 있다. 방통위 설치법 제6조에 따르면 방통위원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필요한 경우’로 한정돼 있다.

그러나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 6일에도 국무회의에 참석한 바 있다. 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최근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에 따른 논란과 관련해 “쇠고기 협상의 경우 언론홍보나 대응이 미흡했다. 방통심의위가 곧 활동을 시작하게 되지만 사후심의가 아닌 사전에 체계적으로 홍보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통위 설치법 제9조가 ‘위원장을 포함한 방통위원은 정치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는 것을 정면으로 위반한 발언이다.

■법이 정한 의무 거부, 탄핵사유= 방통위의 일련의 태도에 대해 언론계는 물론 야당도 크게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최시중 위원장이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위반하고 법이 정한 국회 업무보고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탄핵사유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통합민주당 측 문광위 간사를 맡고 있는 정청래 의원도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의 국회 업무보고 거부와 관련해 “대통령의 정치특보이자 권력 실세가 위원장이라 가능한 일인가. 대의기관인 국회를 이렇게 능멸해도 되냐”고 따져 물었다.

정 의원은 이어 “방통위는 회의 비밀주의, 부위원장의 정치편향적 선임, 미국산 쇠고기 관련 누리꾼 댓글 삭제, KBS 사장 사퇴 압력, 보도종합편성채널사업자에 대한 대기업 진입규제 완화 등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출석 의결을 통해 반드시 출석시켜 이들 의혹과 문제를 집중 파헤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 측 문광위 간사를 맡고 있는 장윤석 의원은 “일단 위원장은 아니더라도 방통위 관계자가 내일(13일) 회의에 출석하긴 할 테니 정확한 상황과 이유를 들어보고 타당성 유무를 살핀 뒤 어떻게 할지를 정해야 하지 않겠냐”며 당장의 판단을 유보했다.

한편, 여야가 18대 원구성과 관련해 방통위 소관 상임위를 문광위와 운영위원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방통위는 지난 6일과 9일 소관 상임위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는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문광위 업무보고 불참 통보의 이유로 ‘소관 상임위 미정’을 내세운 것은 군색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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