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드라마, 中 답습해선 성공 어려워...다양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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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② 숏폼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이정섭 전 KBS PD

중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숏폼 드라마에 콘텐츠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숏폼 콘텐츠가 드라마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한국 숏폼 드라마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성공 가능성을 다각도로 분석해봤다.   

ⓛ 숏폼드라마 성공 가능성 분석   

②숏폼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이정섭 전 KBS PD 인터뷰

숏폼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이정섭  PD. ©펄스픽
숏폼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이정섭  PD. ©펄스픽

[PD저널 =박수선 기자]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콘텐츠업계에서 숏폼 드라마가 급부상하고 있다. 숏폼 드라마 시장에 자본이 모이면서 영화·드라마 전문 인력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KBS에서 <제빵왕 김탁구>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의 드라마를 연출한 이정섭 PD도 숏폼 드라마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 14일 숏폼 콘텐츠 플랫폼 ‘펄스픽’ 론칭 행사가 끝난 뒤 만난 이정섭 PD는 중국에서 숏폼 드라마의 인기를 체감하고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이 PD는 “지난해 방문한 중국에서 숏폼 드라마로 대세가 넘어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사람들이 일하다가 멈춰 서서 숏폼 드라마를 보는데,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KBS 자회사 몬스터유니온에 몸담았던 이 PD는  지난해 초 드라마 제작자로 새출발에 나섰다. 그는 지난해 3월 스튜디오 달감을 차린 뒤 펄스픽과 손잡고 연달아 숏폼 드라마 네 편을 제작했다. 

‘시성비 시대’에 뜬 숏폼 드라마는 기존 드라마와 문법이 전혀 다르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한 세로형 드라마로, 통상 편당 2분 내외, 총 50부작으로 만든다. 보통 5~6일(촬영 회차)에 한편씩 제작하고, 투입되는 제작비는 1억 1천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베테랑 연출자인 이 PD에게도 이런 제작 방식은 낯설었다. 

그는 “보통 드라마는 설정을 하고 빌드업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숏폼 드라마는 일단 따귀부터 때리고 시작한다”고 숏폼 드라마의 특징을 설명했다.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하는 숏폼 드라마는 연기자들이 시청자와 직접 눈을 맞추면서 연기하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연기자들도 굉장히 텐션이 높아서 과잉 연기를 하는 게 숏폼 드라마에서는 어울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숏폼 드라마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 시장에선 안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숏폼 드라마는 웹툰, 웹소설과 유사한 유료 모델을 차용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이용자의 지갑을 열만한 콘텐츠가 마땅치 않다는 평가다.

“현재 나오고 있는 숏폼 콘텐츠의 결과물들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공한 숏폼 드라마가 나오면 이용자 인식이 달라질 것이고, 드라마의 퀄리티도 올라가겠죠.”

이 PD는 중국 숏폼 드라마와는 다른 길을 택해야 한국 숏폼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한국의 시청자는 중국 시청자와 다릅니다. 한국의 숏폼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거나 재탕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숏폼 장르를 하나로 규정하지 말고, 다양한 드라마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만들어야 숏폼 드라마가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이정섭 PD가 제작과 연출을 맡은 숏폼 드라마 '싱글남녀'와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랑' 
이정섭 PD가 제작과 연출을 맡은 숏폼 드라마 '싱글남녀'와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랑' 

-숏폼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숏폼 드라마는 생소하다. 지상파 출신으로 숏폼 드라마를 연출·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드라마 제작 편수가 10분의 1로 줄어들 정도로 업계가 힘들다. 올해 상황은 더욱 안 좋다. 작년 초에 미니시리즈를 마치고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갔다 온 뒤에 생각이 좀 바뀌었다. 스스로 기획을 하고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선택하고 연출 업무를 맡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작업이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펄스픽 대표와 DNC 미디어 대표와 중국을 방문했는데, 숏폼이 대세가 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본과 사람이 숏폼으로 넘어갔고,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도 멈춰 서서 숏폼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기획하고 있는 작품들을 펄스픽 쪽에 제안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배우들도 캐스팅이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의외로 현장에 1년 만에 나온다고 좋아했다.”

-지난해 제작 스튜디오를 차렸는데, 숏폼 드라마를 전문으로 하는 제작사를 목표로 한 것인지.

“준비하는 미니시리즈가 (방송사 등 플랫폼에) 편성될 때까지만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숏폼 드라마를 제작했는데, 미니시리즈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숏폼 드라마는 100분 동안 위기와 절정이 계속 반복된다. 보는 이용자 입장에서도 재미있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도 재미있다. 조연출 포함 모든 스태프가 기존 미니시리즈를 만들던 친구들인데, 준비 중인 미니시리즈 대본 회의를 하면 ‘왜 이렇게 싱겁지’ 라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해 9월부터 숏폼 드라마를 네 편을 연속 제작했는데, 기성 드라마와 숏폼 드라마의 문법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미니시리즈는 뭔가 터트리기 위해서는 설정을 하고 빌드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숏폼 드라마는 일던 따귀부터 때리고 시작한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1인칭 주관적인 시점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카메라 앵글도 주관적인 시점을 많이 이용한다. 연기자들도 시청자들과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보면서 연기를 한다는 생각에 텐션이 굉장히 높다.”

-처음 적응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처음엔 힘들었다. <싱글남녀> 작품을 함께한 정혜성 배우는 웹드라마를 출연 경험이 많은데, 처음에는 과잉된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연기 스타일이 숏폼 드라마에는 어울렸다. 텐션이 높은 연기와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계속 전달해주는 게 맞는다는 걸 배우들에게 배웠고, 네 작품 정도하니까 숏폼의 특성을 좀 알겠다.” 

-숏폼 드라마는 제작 기간 등도 굉장히 짧고 속도전으로 제작되는 걸로 알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숏폼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10월 초에 <싱글남녀>를 찍고, 10월 말에 박하선 이동건 주연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을 촬영했다. 미니시리즈는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을 거친다. 반면 숏폼 드라마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 뭉쳐 단기간에 촬영하니까 결정 과정이 슬림해지는 장점이 있다.” 

-인물 촬영 중심이다 보니 제작진도 단출하게 구성되지 않나. 

  “다른 숏폼 드라마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연출과 카메라 감독, FD 3명만 움직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예전에 함께 작업했던 미니시리즈 스태프들과 계속 호흡을 맞추고 있다. 대신 규모는 소폭 줄었다. 보통 미니시리즈 카메라팀과 조명팀을 7명씩 꾸렸다면 이제는 5명씩 배치하는 정도다. ”

-숏폼 드라마가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질적 수준에 대해선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숏폼 드라마 제작비는 미니시리즈와 비교하면 굉장히 적다. (인물 중심의) 세로형 드라마 이기 때문에 인력과 경비가 줄어드는 측면이 있다. 제작비가 열악한 상황에서 숏폼 드라마 시장이 형성되기까지는 투자 마인드가 필요하다. 성공하는 숏폼 드라마가 나오면 인식도 달라질 것이고, 손님도 찾아들 것이다. 넷플릭스도 <킹덤> 드라마 전후로 굉장히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제작비가 상승하면 전반적인 작품의 질도 올라간다. 이런 식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데, 그동안은 개척자들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숏폼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중국 대표 숏폼 플랫폼인 ‘릴숏’ 대표는 숏폼 드라마를 인스턴트 식품에 비유했다. 단기간에 기획, 제작하고 소비한다는 뜻이다. 현 시점의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라는 의미도 있다. 실제 국내 숏폼 드라마도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재벌2세 이야기나 막장 드라마 쪽으로 양산되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과 중국 시청자는 다르다. 막장 드라마가 한국 이용자들에게 통한다면 막장 드라마로 유명한 연속극이 문을 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숏폼 드라마는 중국 시장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거나 재탕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숏폼 장르를 하나로 규정하지 말고, 다양한 드라마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만들어야 숏폼 드라마가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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