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교양제작국을 해체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마련하자 MBC 안팎에서는 “공영방송 포기 선언”이라는 비판과 함께 후폭풍이 거세다. MBC 경영진이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 강화”와 “수익성 중심의 조직 재편”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MBC 내부에서는 경영진이 시사교양 장르를 죽이기 위해
“에어 포켓 안으로 바로 들어가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지는 확인해 봐아죠. 그게 기자가 할 일이 아닙니까.”영화 에서 세월호 참사를 팽목항 현장에서 기록한 이상호 기자는 수삭작업에 ‘다이빙 벨’ 투입을 끈질기게 주장한 이유를 이렇게 답한다. ‘다이빌벨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50여년의 세월을 싸워 온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마지막까지도 ‘언론인’이었다.가 지난 9월 27일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특집 뉴스 제작을 위해 성 전 위원장과 가진 짧은 인터뷰는 성 전 위원장이 언론에 남긴 마지막 육성 인터뷰가 됐다.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50여년의 세월을 싸워 온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의 타계했다는 소식에 언론계에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은 지난 8일 오후 7시께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2세.성 전 위원장은 지난 1968년 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던 중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은 칠순의 여자 어부의 이야기다. 남편 대신 평생 뱃일을 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온 윤우숙 할머니의 삶이 순천만의 사계 위에 펼쳐진다. 2012년 아리랑국제방송를 통해 방송된 동명 다큐멘터리를 영화한 작품이다. 이홍기 독립 PD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이 PD는 지난 25일 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단원고 2학년 3반 소연 아빠는 양쪽 손, 여섯 개의 손가락이 잘려져 있었다. 그는 저녁쯤에 혼자 술을 마시고는 울음을 터트리곤 했는데, 나중에 말문을 트고 보니 사연이 기가 막혔다. 19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의 프레스 공장에 다녔는데 그때 오른쪽 손가락 3개를 잃었다. 고생하며 돈 벌어서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결혼도 못 하고 서른을 넘겼고, 그즈음에 왼쪽
며칠 전 JTBC 뉴스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한 의사가 김영오씨의 상태에 대해 말하면서 울먹이는 장면이 TV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몸 상태는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는데요. 어제(8월 20일) 오전에 박영선 의원이랑 대화하는 과정에서 언성을 좀 높이는 일이 있었고, 어제 낮에는 청와대 대통령 면담신청서
독립PD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감독 최우영·하시내, 제작 보다미디어그룹)가 미국 PBS네트워크를 통해 오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흘간 미국 전역에 방송된다.는 안동 임동면 15개 마을에 생필품 등을 배달하는 방물장수 조병기 씨와 마을 어른들의 일상을 3년간 담은 휴먼 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벌이는 단식에 언론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독립영화감독이기도 한 진모영 독립PD도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에 돌입했다.진모영 독립PD는 세월호 침몰 사고 126일째를 맞는 지난 19일부터 오는 29일까지 10일 간 작업 현장에서 진행하는 원거리 단식
순천만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이 북미 관객들과 만난다.영화 을 제작한 리키필름은 오는 21일 개막하는 38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Documentaries of the World 부문에 이 공식 초청됐다고 밝혔다.독립 PD 출신으로 이 영화의 연출과 제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24일로 100일째 맞았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세월호 참사 100일 특집을 다양한 각도로 짚어보는 기획 기사들을 선보였다. 이 각 언론이 내보낸 기획 기사들의 특징을 소개한다.
24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 사이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었지만, 유가족의 시계는 사고 당일인 4월 16일에 멈춰있다. 사망자 294명. 실종자 10명.(22일 기준) 유가족 순례단은 세월호 진상 규명과 실종자의 조속 귀환을 염원하며 땡볕 아래 750㎞ 도보 순례를 하고, 또 다른 유가족 20여 명은 답보 상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