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 빠진 제작 현장...K콘텐츠 근간 무너질 수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BS·MBC·SBS PD협회장 기획 좌담]
"넷플릭스 등 OTT, 생태계 파괴 위기감"
"공정한 경쟁 막는 비대칭 규제 위기 키워"
"방송 심의 제도 시대에 부합한지 따져봐야"

지난 5월 29일 한국PD연합회 사무실에서 김재영 PD연합회장과 강윤기 KBS PD협회장, 배정훈 SBS PD협회장이 콘텐츠 업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새 정부가 중점 추진해야 할 정책을 주제로 좌담을 하고 있다. ©김성헌
지난 5월 29일 한국PD연합회 사무실에서 김재영 PD연합회장과 강윤기 KBS PD협회장, 배정훈 SBS PD협회장이 콘텐츠 업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새 정부가 중점 추진해야 할 정책을 주제로 좌담을 하고 있다. ©김성헌

[PD저널 =박수선 기자] K콘텐츠 시장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것과 달리 콘텐츠 산업의 근간을 떠받쳐온 지상파 입지는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글로벌 OTT 의존도 심화, 비대칭 규제 문제가 지속되면서 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 성장 동력 확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뒤따르고 있다.

<PD저널>이 한국PD연합회원 414명에게 응답을 받은 ‘PD들이 새 정부에 바라는 콘텐츠 정책 과제’ 설문조사에서도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관련 기사 PD 10명 중 8명 "콘텐츠 산업 전망 부정적" 위기감 팽배)

(관련 기사 OTT에 쏠린 제작 지원...PD 87% "콘텐츠 정책 불만족")

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MBC PD협회장)과 강윤기 KBS PD협회장, 배정훈 SBS PD협회장이 참여한 좌담을 마련해 콘텐츠 업계의 현주소를 짚고,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을 모색했다. 좌담은 지난 5월 29일 한국PD연합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PD연합회 회원을 대상으로 ‘방송·콘텐츠 산업의 현황’을 물은 결과, 열에 여덟아홉은 경기 상황과 전망이 나쁘다고 답했다. 일선 PD들이 느끼는 경기 체감도는 어떤가.

김재영: 연합회장으로서 많은 PD들을 만나는데, 지상파, 종합편성채널(종편), 독립PD 가릴 것 없이 콘텐츠업계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위기감이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배정훈: 2008년 입사 당시부터 위기를 이야기했지만, 지금의 위기가 달리 느껴지는 건 재정적 상황 때문인 것 같다. 재원 마련이 안 되다 보니 프로그램을 줄이고, 눈에 띌 정도로 제작비를 축소하고 있다. 

강윤기: KBS는 지난해 880억 원 적자를 냈는데, 광고는 말할 것 없고 콘텐츠 판매 수익도 줄었다. 장르나 세대를 불문하고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 ©김성헌
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 ©김성헌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김재영: 김유정 MBC 전문연구위원이 <방송문화> 봄호에 게재한 지상파 방송 매출 비용구조 분석 자료를 보면 10년 만에 지상파 광고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 다매체 시대에 지상파의 입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세적으로 경영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공정한 경쟁을 막는 제도적 불이익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 

배정훈: 지상파·종편 외에도 유튜브, 글로벌 OTT까지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K콘텐츠가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방송사들은 위기에 처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지상파가 받아온 엄격한 규제가 역차별이 아닌가라는 논의는 이뤄지고 있지만,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된 적은 없다. 정권이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논의가 시작되는데, 이번에는 논의에 속도를 높였으면 좋겠다.  

-방송사의 수익성 악화로 제작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제작비 감소 등이 제작 현장에 어떤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는지. 

강윤기: 왜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같은 드라마를 못 만드느냐고 하는데, 제작비가 600억원이 들어간 드라마다. 그런데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KBS의 1년 예산 1조 4000억원 중에서 정규 프로그램 제작비가 1600억원이다. KBS의 많은 채널에서 1600억원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OTT는 600억원을 한 작품에 투자하는 것이다. 제작비 차이로 이미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재영: 방송사도 매출이 줄어드니까 비용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인건비 등 제작에 들어가는 요소들은 가격이 계속 오르는데 제작비는 그대로거나 축소되고 있다. 기존 방송 외에는 프로그램을 론칭하는 게 어렵고, 제작 기회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배정훈: 직접 기획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PD라는 직업을 선택했을텐데, 지금은 기존의 프로그램을 유지·보수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 좋은 콘텐츠 기획은 지상파에 더 이상 오지 않는다. 훌륭한 작가의 대본은 OTT를 돌고 나서 세 번째나 네 번째 선택지로 지상파에 온다. 제작비가 충분한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큰 규모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품을 이제 지상파가 감당하지 못해 나타나는 결과다.  

강윤기 KBS PD협회장. ©김성헌
강윤기 KBS PD협회장. ©김성헌

강윤기:  편성부서에서 프로그램 리노베이션에 얼마나 들어가는지 파악해봤더니 기본적으로 기존 제작비의 2,3배가 들어간다는 결과가 나왔다. 새로운 시도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니까 기존 프로그램만 유지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협찬이 없으면 어떤 프로그램도 제작할 수 없으니까 지역PD들은 협찬 유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지역의 공동화, 사회의 중앙집권화를 제작비 문제가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재영: 그러면서 지상파는 고루하다, 올드하다는 평가가 굳어지고 있다. 방송사가 경영을 잘못해서 생긴 문제라면 한 회사만 힘들어야 하는데, 모든 방송사들이 겪고 있는 문제다.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면서 공통의 어려움에 봉착한 것이다.

-설문조사 응답자 중에 공익 프로그램이 줄면서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지적이 꽤 있었다. 시사·교양PD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재영: MBC와 SBS는 평일 드라마 슬롯이 먼저 없어지기 시작했고, 다큐멘터리도 영향을 받았다. 대형 다큐는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제작을 못하고, 소형 다큐는 상업성이 없으니까 못 만드는 상황이다. 극소수의 탐사 보도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레귤러 다큐멘터리 자리가 없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사라진 지상파’가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배정훈: (SBS는) 지난해부터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를 편성하지 않고 있다. <고래와 나> 이후 창사 특집이 없고, 올해 창사 특집 다큐 계획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SBS 스페셜>의 경우 레귤러 프로그램이었다가 시즌제로 전환됐고, 지금은 팀에 인력을 배치하지 않고 있다. 단계적으로 프로그램이 소멸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회사의 경영 문제가 너무 커서 이야기를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강윤기 : KBS는 <KBS스페셜>, <역사 스페셜>, <환경 스페셜> 3개 체제로 운영되다가 현재는 3개 프로그램을 흡수·통합한 <다큐 인사이트>만 남았다. 긴 호흡으로 즐길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고사 직전에 있는 거다. 

지상파의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가 공론장의 역할을 잘 수행했더라면 최근  몇달 동안 겪었던 민주주의 위기와 유례없는 분열이 이 정도로 심각했을까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대통령부터 유튜브만 봤다고 하지 않나. 계엄 국면에서 조중동 등 보수 언론까지도 부정선거 의혹을 부인했는데, 레거시 미디어들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팩트체크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시사 다큐의 축소는 한 장르의 축소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위기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지상파의 위기는 글로벌 OTT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가속화했다. 지상파 사업자들은 초창기에는 글로벌 OTT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가 최근에는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글로벌 OTT 유통 전략 등과 관련해 내부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하다. 

배정훈: SBS가 넷플릭스와 공급 계약을 맺은 건 심각한 재정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중간 선택지로 이해하고 있다. 계약 이후 제작 현장에 제작비가 더 투입되는 상황은 아니라서 물음표를 가지고 있는 PD들이 내부에 많은 상태다. 

김재영 : MBC는 개별 프로그램별로 공급 계약을 맺는 식으로 전략을 세우고 있다. 내부에서는 넷플릭스가 너무 지배적인 사업자가 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 

강윤기: PD들도 처음엔 넷플릭스에 기회 혹은 현실의 탈출구로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제 (넷플릭스가)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는 걸 느끼고 있는 것 같다. OTT가 더 이상 기회로 느껴지지 않고 생태계 파괴를 넘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새 정부가 미디어 전략을 짤 때 OTT를 포함해 콘텐츠 산업이 어떻게 지속가능할지 의견을 모아 정책을 수립하는 게 필요하다. 

-새 정부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콘텐츠 정책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선 규제 완화 정책부터 말해달라.  

김재영: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왜 성공할 수 있었느냐를 되짚어보면 표현의 수위가 자유로웠던 게 컸다고 본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허락했기 때문에 큰 성공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웨이브에 편성됐다가 시즌2에선 넷플릿스로 간 <약한 영웅>은 적은 제작비로 (지상파도) 만들 수 있는 학원물이다. 소규모로 잘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인데, 폭력성이 지상파에서는 담지 못하는 수준이다. 지상파 방송사도 폭넓게 표현할 수 있다면 좀더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배정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기준은 지상파만 있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오래된 규정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저거 별로인데, 이러면 걸 수 있을 정도로 기준도 모호하다. 방송사들은 이미 자율 규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OTT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등급만 부여받는데, 지상파의 심의 제도가 과연 이 시대에 부합하는지 본질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강윤기:  최근 2~3년 방송심의는 창의력을 키워주기 보다는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됐다. 지상파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방송 심의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배정훈: 광고 규제의 문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OTT도 광고요금제를 도입하면서 광고를 판매하고 있다. 지상파 등 TV 플랫폼의 광고까지 빼앗아 가면 어떻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배정훈 SBS PD협회장. ©김성헌
배정훈 SBS PD협회장. ©김성헌

-콘텐츠 제작 지원 등 진흥 정책과 관련해서는 어떤 요구가 많나. 

김재영: 방송발전기금의 비합리적인 집행이나 언론진흥재단이 방송 협찬을 대행하면서 과도한 수수료를 가져가는 문제 등은 언론학자들도 중요하고 다루고 있는 사안이다. 방송사업자들이 내는 방송발전기금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쓰이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에도 방송발전기금을 징수해서 제작지원 규모를 늘리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가 3년 동안 방송 콘텐츠 현안에 대응을 재대로 못해서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더 큰 것 같다. 새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배정훈 : 시청 습관이 변해가는 흐름과 맞아떨어진 덕분에 넷플릭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됐다. 정책 수립 과정에는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한데,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변한 산업의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전문가가 있을까 의문도 든다. 현장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반영해야 현실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강윤기: 지배구조를 개선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게 결국 창의성 신장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지상파도 시대에 발맞춰 변해야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 꼭 두 가지를 인식했으면 좋겠다. 하나는 지상파 콘텐츠가 한류의 근간이었고, 앞으로도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지상파의 사회통합 기능을 잘 활용하면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공감대 위에서 규제를 풀고 지원책을 강구하는 게 중요하다.

김재영: 지난 3년 동안 콘텐츠 정책에 손놓고 있었기 때문에 방송·영화 시장 모두 고사 위기에 처했다. 홍콩영화가 각광을 받다가 확 꺾인 것처럼 K콘텐츠도 언제든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폭싹 속았수다>에 국민드라마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넷플릭스 비구독 인구가 절반 이상이 된다. 지상파는 그동안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왔다. 콘텐츠산업을 군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체계적으로 정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산업의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