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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불공정 관행 뿌리 뽑으려면? “방송사 결단 필요”

정확한 실태 조사와 법적 장치 마련 한 목소리 구보라 기자l승인2017.08.24 11: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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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가 최소한 3억은 되어야하는데, 지원금(1억 2천만원 가량)을 받았다니 잘 하셨다. 그러면 총 제작비가 2억 6천이 되니까 그에 맞게 지분과 수익을 나누자. 혹시 제작비가 더 필요하다면 더 가져와달라. 우리도 그에 맞춰 조정하겠다’

(부족한 제작비로 작품을 만들던) 박환성 PD가 정부기관으로부터 제작지원을 받게 됐을 때, EBS가 이랬으면 좋았을 거다. 이랬다면 많은 운명들이 달라졌을텐데...비극적인 사태지만 이로부터 더 나아가야한다” (박봉남 독립 PD)

[PD저널=구보라 기자] 다시는 고 박환성 PD와 김광일 PD의 죽음과 같은 비극적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 자리에서 박봉남 독립 PD는 이같이 말했다.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지난 17일에 열린 ‘방송생태계 독립제작환경 진단을 위한 토론회’는 방송사의 독립제작과 불공정 거래 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독립PD뿐만 아니라 학계, 정부부처 담당자, 지상파 PD, 법조계 관계자가 모여 문제를 진단했고 대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모두 “이제는 바뀌어야한다”, “방송사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방송학회는 지난 17일 ‘방송생태계 독립제작환경 진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최선영 이화여대 교수, 조항제 부산대 교수, 최우영 보다 미디어그룹 제작본부장 ⓒPD저널

발제를 맡은 최선영 이화여자대학교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대학원 특임교수(독립PD)는 “외주제작정책이 91년에 생겨났을 때에는 콘텐츠 다양성을 추구하고 지상파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서였다"라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다른 상황이다. 지상파에서 점점 외주제작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애초 취지와 달라진 외주제작 정책 기조를 바꿔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방송업계에서의 방송사-독립제작 계약구조에서 외주제작사, 외주제작사 내 정규직 PD와는 달리 프리랜서로 일하는 비정규직 독립PD도 많이 존재한다고 설명하며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체부와 방통위는 지난 10일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외주제작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문체부-방통위, 외주제작 실태조사 공동 추진 나선다')

최 교수는 먼저 △표준계약서 외 편법적인 협찬 계약서 작성 △부당한 협찬비 관행 △공적 지원금까지 송출료 명목으로 환수 등 ‘계약 및 거래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는 방송사가 저작권과 수익을 모두 소유하지만, 창작자에게도 사용 권리를 부여해 콘텐츠를 2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로 최 교수는 ‘방송사와 제작사 간 적정 제작비 산출 필요’를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하우스 자체 제작비와 외주제작비 비교해 표준제작비 산출근거를 마련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적지원금은 제작 주체인 창작자의 100% 제작비로 책정하고, 수신료 인상 이전 외주제작비에 대한 방송사 구성원들의 인식전환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우영 PD(보다 미디어그룹 제작본부장)는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 공정계약’에 대해 소개하며, 자신이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로 다자간 계약을 맺었던 사례와 고 박환성 PD의 사례를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방송도 양자간 계약에서 다자간 계약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일도 꼭, 엉클 조>(연출: 최우영, 하시내), <공부의 나라>(연출: 최우영, 스티븐 두트)를 연출했다.

최우영 PD는 “크리에이티브 다큐란 고품질 창의적 다큐란 개념을 지니고 있으며, TV 다큐에 비해 주제와 자본으로부터의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 PD에 따르면 크리에이티브 다큐에서는 다양한 곳에서의 투자를 받는 다자간 계약이 주로 이뤄지고 있으며, 투자에 따라 저작권이나 수익이 배분된다.

최우영 PD는 “이미 독립 PD들은 글로벌 스탠다드(세계적인 기준)에서 계약을 진행하고 성과들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제작 문화나 사례들을 모르는 국내방송사와 계약을 진행하면서 이견이 분명히 생긴다. 박환성 PD의 경우도 방송산업에서 이 점이 충돌한 경우”라고 말했다.

먼저 최우영 PD는 자신이 제작한 다큐 <내일도 꼭, 엉클 조 Here Comes Uncle Joe>(연출: 최우영/하시내, 프로듀서: 하시내)를 예를 들었다. <내일도 꼭, 엉클 조>에는 3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었으며, 투자비율을 살펴보면 국내 48%, 해외 52%를 차지했다. 이같은 다자간 계약관계에서 제작자인 PD가 저작권자(Copy right holder)로서 수익의 30%를 배분받았다.

최 PD는 “<내일도 꼭, 엉클 조>를 제작할 때 프로듀서는 28살이었고, 제 나이는 32살이었다. 우리나라 제작 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한국 다큐멘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 할텐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 나이에 이 정도 규모를 만들 수 있는 다큐가 존재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 PD는 “박환성 PD의 <야수의 방주>(King in a kage)는 2013년 프랑스 서니 사이드 오브 더 닥 Sunny Side of the Doc 공식피칭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그 때 자료를 보면 <야수의 방주> 제작비는 25만 유로로 책정됐지만, 박 PD는 당장 필요한 경비들을 자부담으로 진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 박환성 PD는 서니 사이드 오브 더 닥에서 과학&자연 프로젝트 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 감독이었다.

이어 “박 PD는 <다큐프라임>에 공모 지원해서 계약서 조항에 10번 저작권 관련 사항을 보고 다자간 계약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계약했다. 하지만 EBS 계약서에서는 그게 실행될 수 없는 조건들이 나열돼 있었다. 조율할 여지가 없었던 거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유통 경로였을 것”이라며 “방송사는 이런 (다자간) 계약 유통 과정을 경험해본 경험이 없고, 계약서 조항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금기인 한국 외주시장에서 박 PD가 그걸 시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우영 PD는 “해외에서는 한국의 스토리텔링, 다큐가 각광받는다. 잠재력이 크다. 그리고 다큐는 공공성의 책임 영역이 큰 분야다. 제작비를 돈으로만 보지 말고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우리나라에)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며 커미셔닝 제도(제작투자제도) 도입 검토를 제안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개별투자주체(방송사 포함) 투자비용을 줄여 투자위험회피 기법 도입 △기존 CP제도와 커미셔닝 에디터(제작투자담당자) 제도 병행 등을 제안했다.

“박환성 PD의 <야수의 방주>(King in a kage)는 2014년 프랑스 서니 사이드 오브 더 닥 Sunny Side of the Doc 공식피칭 초청작으로 선정됐다"(최우영 PD) ⓒ최우영 PD

이날 토론회에 참석했던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도 “독립PD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건, 안타깝게도 국내 방송사들이 지시하는 계약조건을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며 2009년, KBS가 박봉남 PD에게 저작권을 공유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아이언 크로우즈>는 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됐고 중편 부문 대상을 받았다. 방송사가 저작권 공유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들이 함께 큰 꿈을 꾸면 좋겠다. 방송사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상생할 수 있으면) 방송사들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봉남 PD는 “박환성 PD가 본인 인생에 있어서 야심작으로 만들고 있던 작품이 <야수의 방주>다. 당시 예상된 제작비는 4억이었지만, 그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는 토양이 안 됐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서 아시안 피치(The Aisan Pitch)에도 지원했었다. 결국 차차선(次次善)인 EBS <다큐프라임>에 공모해 편성받고, 기본 제작비(1억 4천만원)를 확보했다. 이후 한국전파진흥협회로부터도 지원을 받고, 해외 파트너십 등도 구축하려다가 우리나라 현실에서 좌절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작비가 줄어드는데도 외주제작사들의 경쟁은 더욱 더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 방송계 현실을 지적했다. 박 PD는 “문제를 해결할 길은 나와있다”며 저작권 문제를 개선하고 협찬비를 간접비로 요구하는 방송사 시스템을 바꿔야한다고 강조했다.

박봉남 PD는 “이를 위해선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고, 법률적이고 제도적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대안은 BBC에서 2003년에 했던 시도다. (방송통신법 Communication Act 개정) 좋은 건 배워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창작자를 존중하고 창작의 물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 번째로 불공정 행위가 이뤄지는 낡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정부차원의 노력들이 필요하고 그 노력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봉남 PD는 “(최우영 PD처럼) 많은 창작자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도전하고 있다. 방송사들이 적극 동참하고 파트너십으로 활동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방송사 관행이 바뀌는 것 없다. 차제에 (방송사에 존재하는) 적폐가 무엇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논의를 해봤으면 좋겠다”

오기현 한국PD연합회장은 “이 자리에서 유일한 지상파 PD로서 상당히 착잡하다”며 “선언적인 얘기가 아닌, 실무차원에서 방송사와 독립제작자 피디 협회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방송사에 근무하는 특수직 프리랜서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기금, 지원정책)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BBC 사례처럼 충분한 수신료를 통해 현실적 제작비 마련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KBS 방송 적폐 청산해야한다. 이후 국민들 동의 하에 시청료를 인상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후 다른 방송사도 이를 따라가는 선순환구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지훈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는 “7년 전 시사프로그램 <W> 제작 관행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논문 찾아보기) 차이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며 “그 때도 독립PD들이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달라고 말했었다. 언론학계가 언론의 자유나, 공영방송 정상화 같은 거시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지녔지만 공영방송 내부의 갑을관계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죄송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방송사와 달리 편성과 제작을 함께하기에 발생하는 외주사와의 갑을 관계, 어려워진 방송사 사정에서 결국 희생되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외주제작사 그리고 우리나라 방송사만의 공채 문화로 인한 엘리트주의와 그로 인해 이뤄진 차별 문화를 묵인하는 구조 등을 방송사의 불공정 관행 원인으로 들었다.

박 교수는 “독립 PD들이 세계 무대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 방송사의 경우, 독립제작사의 노하우를 살리면서 어떻게 상생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외주제작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주무부처 담당자들도 이 자리에서 의견을 밝혔다. 임성환 문화체육관광부 방송영상광고과 과장은 “제작비 현실화와 저작권 배분은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방송사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방송사는 표준제작비 내부 규정이 있지만, 적어도 외주에 주는 제작비는 (자체제작비의) 40~50% 수준이라고 들었다. 물론 그 어느 방송사에서도 공표한 적이 없기에 정확하게는 모른다”며 “(방송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공감한다면) 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계획을 세워서 단계적으로라도 진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종철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반국 편성평가정책과 과장은 “방통위에서 하는 실태조사는 처음이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에 설문조사지를 보냈다”고 밝히며 “이제까지 관련 연구들은 이미 많이 나왔다. 이제는 실행해야한다. 가급적 정부가 해볼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많이 하겠다”고 밝혔다.

▲ 한국독립PD협회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지난 16일 오후 5시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 3층 기자회견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 복원을 위한 공동 행동 선언’을 공표했다. 기자회견석 앞에는 파란 리본이 달린 수 십대의 카메라가 단 한 대의 카메라를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고 박환성 PD가 사용하던 카메라였다. ⓒ한국독립PD협회

독립PD들은 지난 18일에 열린 바른정당 문화격차해소 특별위원회가 주최한 ‘방송제작환경 및 방송예술인 처우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서도 이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먼저 최영기 한국독립PD협회 ‘방불특위’(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방불특위의 마지막 목표가 외주정책 원점에서 재검토와 특별법 제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를 떠나 국회에서 공동 발의를 해야한다”며 문제해결을 위한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를 만들 것도 제안했다.

권용찬 대외협력위원장은 “방통위 내에 독립PD 포함하는 외주제작자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며 “관련부서가 과기정통부, 노동부 등 유관기관들이 있지만 방통위가 그나마 재심의권 심사권이 있어 그나마 강제성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상파 방송사라는 ‘슈퍼 갑’을 이길 자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PD는 창작자다. 그렇기에 저작권을 주장하는 거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늦게 변하는 플랫폼이 방송사”라며 “결론적으로 방송사 외주제작사의 자율적 협의로만은 절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 박환성 PD는 세상을 떠나기 전 EBS가 정부기관의 제작지원금 일부를 간접비 명목으로 귀속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EBS는 "간접비 요구한 적 없다", "박환성 PD는 EBS와의 계약을 위반했다"고 반박했다.

이후 EBS와 박 PD는 여러 차례 공문과 내용증명을 주고받았지만, 갈등의 폭을 줄이지 못했다. 박환성 PD는 지난 7월 4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최소한 방송사가 정부기관 지원금에는 손을 대지 않는 관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PD가 촬영을 위해 떠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방송사 불공정 계약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관련기사: 2017.07.10. 'EBS, 정부 제작지원금 간접비 요구 논란...왜?')

한국독립PD협회는 지난 4일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EBS도 한국독립PD협회,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해당 문제를 논의하며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독립PD협회

구보라 기자  9bora@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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